저마다의 싸움터에 대해
<저마다의 싸움터에 대해>
탐라의 많은 분들이 이번 선거 결과에 회의적이고, 더민주 일변도의 선거 결과에도 많은 문제제기를 한다. 또 녹색당, 정의당, 민중당 등 소수 정당의 입지가 없는 한국 정치 현실에 대한 비판, 남성 일변도의 정치권의 문제 등도 많은 분들이 지적해주신다.
어쩌면 이런 부분은 실상 그리 어렵지 않게 동의할 수 있는 일반론이자 현실 정치와 대결하는 대안 정치가 마주하는 '공통'의 문제라고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지역마다, 또 자신이 서 있는 자리마다 고유하고 특이한 싸움과 대립의 선들이 있다.
부울경의 많은 이들이 밤을 꼬박 새우며 '자한당' 아웃에 환호하는 이유이다. 지난 십여년간 자한당과 그 추종 세력은 자신들의 한 줌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부울경 지역의 경제적, 문화적 인프라와 재생산 기반을 온전히 무너트렸다.
부산국제영화제나 대학 구조조정이 잘 보여주듯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그런 게 아니라, 일부러, 지역의 기반을 무너트린 사례는 너무나 많다. 부울경은 이미 바닥까지 이르렀고, 이들의 싹을 뽑지 않는 한, 정말 미래가 아닌 현재도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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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소감.
딱, 2007년 2월말에 부산에 왔는데, 2007년 12월 대선으로 이명박이 집권, 부산에서 이명박근혜 정권을 온전히 살았다. 2007년 선거때 내가 살던 동네에서 이명박 포함 보수 지지율이 80%가 넘게 나와서, 한동안 동네에 나가질 못했다. 무서워서.
그랬다. 처음 부산에 왔을 때 "2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었고, '극혐'인 '그들'을 80% 가까이 지지하는 "이상한 사람들"은 "무서웠다."
'적들에게 포위되어 있다'는 느낌, 고립감과 환멸을 오가는 일도 많았다.
그러나 좀더 지나서는 바로 이런 생각.
"이 사람들은 이상해, 무서워"라던가, "2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 따위야말로, 지역을 문명화의 정도에 따라, 문명화/개화-반개화-야만으로 나누어 인지한 후쿠자와 유키치나 이광수랑 한 치도 다르지 않은 식민주의, 혹은 오리엔탈리즘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지 생각은 아니고, 엄청 싸우고 야단 맞으며 겨우 도달한 어떤 자기 반성이라고 하겠다.
부산에서, 기존의 권력 관계를 넘어선 새로운 관계와 재생산 기반을 만든다는 '대안 정치'의 실천은 그러니까, 실은 나 자신과도 싸워야만 하는 일이었다.
일터에서는 언제나 2007년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회고만이 소문처럼 무성했고, 어제의 용사들은 너무 늙고, 낡아버렸고. 오늘의 일꾼들은 용사가 되기에는 가혹한 구조조정 아래 다 소진되어 버렸다.
그래도, 그래서 페미니스트로서, 대안적인 재생산 기반을 만들기 위해 오래 싸워온 실천가로서 내가 대면하고 마주하는 전선은 남성 정치의 과잉 대표성이나, 소수 정당의 필요성을 포함하면서도 이와는 다른 국면을 내포한다.
아마 다른 모든 이들 역시 그러하리라.
그래서 저마다, 누군가 마주하는 싸움의 터와 국면을 손쉽게 재단하고 일반화하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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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앙심'을 품어본 적이 없는 데, 원한의 일종인 앙심, 두고보자 이런 정동이 자신을 망치는 가장 큰 원인이라 생각해서다.
그런데 일생 단 한번 앙심을 품고, 그 앙심으로 일생 최대의 평정심으로 버티고 싸워왔는데
부산에 와서 피땀으로 일군 연구소를 없애버렸을 때이다. 아프콤과 함께 문화콘텐츠 연구소는 정말 피땀으로 일군 터전인데. 한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몇년을 기다리고 버티며, 이제 새로 젠더 어펙트 연구소를 만들어보려 한다. 어찌 될지 모르지만, 문콘은 기록으로도 존재하지 않는 연구소가 되어서 실적도 흔적도 복구할 수 없다니. 바닥에서, 맨 땅에서 다시 시작한다.
충혈된 토끼 눈을 하고, 아침 일찍 일터에 나온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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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해보는 기사.
"권명아 동아대 교수는 이번 사태의 쟁점을 국가의 통제나 검열 프레임을 넘어 일관성 없는 ‘국가 주도의 구조조정’이라는 관점으로 확대했다. 2013년 일종의 대학 구조조정인 지방대 특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부산 동남권 대학에 영화·해운·항만을 육성하도록 지원해놓고 정부와 지자체가 정작 영화제를 망가뜨리고 있는 모순을 지적했다. 관의 일관성 없는 태도가 지역 기반을 와해시키고 있다는 의미다. 권 교수는 부산시가 부산국제영화제 기간과 겹치는 시기인 10월1일부터 23일까지 개최한 ‘원아시아 페스티벌’을 그 예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