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그리고 2017년
며칠 답사 인솔을 하고 겨우 돌아와 몸살져 누워있다.
몸살져서 틀어둔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눈물이 쏟아졌다.
"저도 2017년에서 살아보고 싶습니다."
1930년대의 유령이 말한다.
실패한 독립투사 영웅담과 전생 서사에 '타락한 문단'이라는 이 시대 3대 트랜드를 결합한 드라마.
가끔 시간될 때 들여다본 건, 문단 관련한 여러 논의를 꽤 드라마에 반영하려한 느낌이 들어서인데.
드라마는 아무 감흥이 없는데.
문득, 그는 1930년에서 2017년으로 환생해도 오욕의 삶을 살아야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골치덩어리들>에서 <풍기문란자들>까지, 일제시기에서 현재까지 백여년의 시간을 오가며
이들의 목소리나 경험을 담은 자료를 찾아 오래 헤매었고.
신문지 조각이나, 통제 자료의 문제집단으로만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 만날 수 있었다.
조사 기록도 거의 개인의 프라이버시 때문에 공개되지 않아서,
그런데 문득 그 자료를 만나서, 자료를 읽으며 좀 복잡하고 기이한 느낌이었다.
목소리가 담긴 자료를 발견했다는 기쁨은 잠시.
그 목소리를 듣고 읽는 것이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주었다.
자료를 만나면 이런 느낌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뭔가 감당할 수 없는 어떤 무게에 압도당한 느낌이다.
통제 자료를 주로 보는 입장이라 그런지
그런 자료에 감정 이입하거나 거기 담긴 인생, 삶, 그런 걸 떠올려보려 노력해온 연구자로서의 습관 때문일까?
그 자료를 읽으며 뭐라 말하기 힘든, 가슴이 답답하고 미어지는 그런 감정이 들었다.
이렇게 모욕당하고, 자기모멸을 곱씹어야 했을 그이에게, 그의 인생에 대해
그리고 변하지 않는 어떤 것들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것에 대해서도.
홀로 앉아 자료를 찾으며
무수한 세월을 보냈고,
선거 전후에도 관련 자료를 찾으려 한 시도 쉬지 않았지만
그저 큰소리로 조롱을 퍼부어대는 것만도 못한 일들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자기연민에 눈물을 흘린 건 아니지만.
마음이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