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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한 모성의 '자매애'적 가족: 미싱, 죽여주는 여자, 비밀은 없다 본문

살갗:가족 로망스

강인한 모성의 '자매애'적 가족: 미싱, 죽여주는 여자, 비밀은 없다

alice11 2017. 1. 1. 13:26

요즘 한국 영화 경향을 분석하다 보면 꼭 만나게 되는 현상


특정 시기 작품들이 너무 유사하다는 점, 즉 유사한 아이디어 컨셉, 캐릭터 등이 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나왔다가 사라지는 경향이 너무 크다. 아이디어 카피나 외국 작품의 시그니처 이미지 카피도 아무런 문제없이 이뤄진다.  


(일본 영화 <갈증>의 이미지와 미장센을 카피한 비밀은 없다,  곡성, 

'이시카와 히로시, 2013년 영화, 일본에서 페미니즘 독립영화로 꽤 평가된, <Petal Dance, 꽃잎 춤>에 나온 주요 모티프인 하늘에 나는 비행기를 손으로 네모 프레임을 만들어서 찍어두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주요 모티프와 미장센을 카피한 걷기왕)



**아래 기사에도 나와있지만, 이런 카피를 처벌해야한다 이런 논의를 넘어서 영향 관계나 작가적 양심 문제도 있겠으나,


일단 한 작품을 '정치적 실천'과 관련된 작품으로 평가하고 자리매김할 때는 이 지점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아이디어 카피 영화가 대표적 페미니즘 영화로 평가된다는 건 너무 아이러니가 아닐까? 신경숙의 교훈은 한국 문학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근데 한국 영화의 카피 수준은 너무 광범위해서, 거의 이런 정도는 문제도 되지 않는 것 같다. 


특정 컨셉 영화가 제작중이면, 유사 컨셉 영화를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기도 한다. 


뭐 대단한 표절 문제제기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경향 때문에, 어떤 점에서 한국 영화 경향을 통해서 시대의 흐름이나 경향을 분석하는 데 이런 '카피의 만연'이 궁극적인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새해 맞이 기념으로 <미싱>을 보았는데 작품은 나쁘지 않았는데


엄지원의 캐릭터와 연기 방식조차 <비밀은 없다>의 손예진의 캐릭터와 연기 방식, 서사 스타일의 연장에 있어서, 좀 의아했다. 


갑자기 아이가 사라지고, 엄마는 정신을 잃고 히스테리에 사로잡히는데, 모성적 강인함과 '여성적 히스테리'라는 전형적인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고정 관념을 동원해 만든 캐릭터가 여성주의 캐릭터로 평가되는 것 또한 동어반복이다. 


게다가 이런 모성적 강인함과 여성적 히스테리가 결합된 캐릭터가 '소수자 여성'(십대/이주자)과 '만나' '불가능한 자매애적 공동체를 꿈꾼다'. 두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너무나 닮아 있다. 



비밀은 없다는 딸의 무덤에서 엄마 손예진과 딸의 친구가 만나 '불가능한 화해'를 꿈꾸는 장면이고

미싱에서는 바다 깊은 곳(딸/엄마의 무덤)에서 엄지원이 조선족 이주자인 여성 소수자,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 거절당하는, 즉 '불가능한 공동체의 꿈"을 꾸는 장소이다. 


그 장소가 무덤=자궁=물=재생(흙과 꽃)의 원초적인 '여성이미지'(원형이미지)로 가득 찬 것은 우연도 아니다.

(김기덕의 많은 영화에서 여성은 바로 이런 원형성에 못박혀 있다.)


여성을 이런 원형 이미지에 가두는 것이, 바로 전형적인 '원초적 여성 억압'인데. 


이런 여성에 대한 원형 이미지와 스테레오타입화된 서사를 넘어서지 못한 작품이 2016년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영화로 꼽히는 게 문제다. 


한국 영화의 '가난함'이 이들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로 상찬하는 근거가 될 수도 없다. 



1990년대 이른바 여성문학과 페미니즘, 여성주의 문화 전성시대에 이렇게 한계가 많은 작품들을 여성주의라고 고평하고, 그 작품의 상업적 붐과 팬덤화로 페미니즘을 강화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페미니즘 비평을 불가능하게 하고, 특정 작가와 작품에 대한 '팬덤 비평' 주례사 비평만 무성하게 했다. 당시 여성적 작품이라고 상찬된 신경숙, 은희경, 공지영 등 무수한 여성 작가 작품에 대해 내가 비평적 거리를 두고 비판을 지속한 것은 이런 맥락 때문이었다. 


그렇게 비판을 계속해서, 문단 내에서나 당시 여성비평가 그룹에 '포함'되지 않고, 결국 한국 문학 장을 떠나게 되었지만, 페미니즘 비평과 젠더 연구의 비판적 엄밀함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고, 이론과 역사를 향해 정진한 계기도 되었다. 


개인적 과거를 회고하려는 것은 아니고, 1990년대 페미니즘 붐 시기의 비평가들의 움직임과 판단과 입장, 그리고 그 귀결점이 동일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 페미니즘 전성 시대의 비평과 비평가의 입장과 판단을 고민하는 데도 하나의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당대의 반여성적 경향성에 반대한다는 차원에서, 여성작가의 작품을 과도하게 고평하거나, 페미니즘 이론과 실천의 '준거' 혹은 '거점'으로 삼으려는 전략은 역사적으로 한번 실패한 전략이기도 하다. 아니 페미니즘 운동은 실패했지만, 비평가 개인에게는 '문화권력'을 남겨준 것이니 실패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http://www.mimint.co.kr/article/board_view.asp?strBoardID=news&bbstype=S1N13&bidx=1017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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