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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버리고 간 세상에 남은 것들 본문

살갗:가족 로망스

당신이 버리고 간 세상에 남은 것들

alice11 2016. 8. 15. 00:25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그리는 가족 이야기는 마치 반복해서 꾸는 꿈 같다. <걸어도 걸어도>,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아무도 모른다> 계열의 작품을 보면서, 이런 반복이 같은 주제와 표현 방식을 맴도는 작가적 태만 같기도 하고, 집착 같기도 하고, 판단을 유보하면서 보아왔다.  단편 소설 같은 영화라고 생각해서, 일본이나 한국의 문예영화 전통에 서 있다는 생각 정도로 따라가며 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오다기리 조를 화면에 이끌어내는 그의 방식에 상당히 흥미를 갖게 되어서 따라가며 보기 시작했다. 드라마나 영화 어디서나 나오기만 하면 무언가 '퀴어'한 느낌을 주어서 스스로 주연을 맡기를 꺼려한다는 오다기리 조. 흥미롭게도 고레에다 작품에서 오다기리조는 너무나 평범한 가족의 일원으로 녹아 있다. 


첫 장편인 <환상의 빛>(1999)과 최근 작품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를 보며 뭔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아니 실은 <걸어도 걸어도>(2009)를 보고 뭔가 쓰고 싶었지만, 작년에는 가족의 죽음에 대해 무엇을 쓸 수 있는 마음 상태가 전혀 되지 못했다. 지금도 불안하지만. 


<환상의 빛>에 대해 공식 사이트에서는 다음과 같은 정보가 제공된다. 


"<환상의 빛>은 익히 알려진 대로 일본 순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미야모토 테루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아내가 죽은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를 담은 서간 문학으로 마음에 깊은 울림을 전해주는 소설이다. 하지만 이외에도 또 하나의 모티브가 존재한다. 다큐멘터리 연출가였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보건복지부 고위관리의 자살을 파헤친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1991)를 찍으며, 홀로 남겨진 미망인으로부터 <환상의 빛>의 영감을 얻고 죽음과 상실의 테마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남편과 사랑 한가운데서 살고 있다고 믿고 있던 여자에게 남편의 자살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질문 만을 남겨 놓는다. 첫 작품인 <환상의 빛>에 대한 정보를 보면 원작 소설이나 다큐멘터리 취재 경험이 그 바탕에 있다고 한다. 이후 그의 작품 곳곳에 나타났던 모티프는 무엇일까? 단지 이 반복일까?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보다보면, 영화 속에 어떤 시선, 장면으로 감독 개인이 나타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환상의 빛>에서 바닷가 마을로 다시 시집을 간 유미코가 집 청소를 하는 장면에서 계단을 정성스레 닦는 그녀의 모습은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앵글로 길고 오래 보여지는데, 이 장면은 마치, 다 자란 후 기억 속에 원형처럼 남아있는 유년 시절의 엄마의 모습과 집에 대한 추억을 인화한 것 같다. 영화 속 어린 아들은 영화 내내 그저 어린 아들이지만, 기이하게도 <환상의 빛>은 바로 그 어린 아들의 회고담이라는 느낌을 준다. 내 독해가 이상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그의 영화를 보다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걸어도 걸어도>에서 더운 여름, 느린 걸음으로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는 노부부의 모습은 기억 속에 남은 마지막 부모의 모습처럼 인화되고, 그 모습을 뒤로 하고 차를 타고 오며, 내년부터는 명절에도 매일 오지는 말자며 '자기 가족을 지키려'는 아들의 모습은 마치 부모가 돌아가신 이후, 매번 꿈에서 계단을 올라가던 부모의 모습을 반복해서 만나며, 그때의 자신을 자책하는 아들의 모습처럼 보인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그녀들은 <아무도 모른다>의 아이들이기도 하다.


***또한가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이 계열의 작품들에서 '당신들'은 모두 자살이던 가출, 실종 등의 형태로 영화 속 인물들이 존재하는 세계를 버리고 화면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그의 인물들은 이렇게 가장 친밀하고 가까운 이들이 이유를 알 수 없이 사라져버리고 난 후의 세계에 내던져 있다. 그래서 이들은 절망이라던가 슬픔이라던가 비관 같은 어떤 특정한 파토스를 보여주지 않는, 기이한 아파지apathy 상태에 빠져 있다. 파토스는 자살하거나 가출하거나 떠나버린 이들의 몫이라, 남겨진 이들에게는 그런 파토스를 반복할 세계나 관계가 남아있지 않다. 인물들은 떠나간 이들이 연출한 파토스를 준비 없이 관람하고, 그 파토스에 반응하거나 감염될 여지도 없이, 그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 같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의 기묘한 정서는 이런 이유와 관련이 깊다고 보인다.


그들은 모두, 영화 내내, 아니 인생 내내 그렇게 질문하면서 제자리를 맴돈다. 


"왜?"


"당신은 왜 나를 남겨두고 자살한 거지?"

"당신은 왜 나를 남겨두고 사라져버린 거지?"


인물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마치 그 질문을 묻는 일 뿐이라는 듯. 당신이 버리고 간 세상에 남은 이들은 그저 반복해서 꿈을 꾸고, 꿈에서 당신을 만나 잠시 시간 감각을 상실하고, 남겨진 세계를 살아간다. 열심히랄 것도 없고 비관적이랄 것도 없는 그런 방식으로. 비관도 열심도, 이미 떠나버린 이들의 몫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