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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wonderland
"내가 잃지 못하는 것-"** 못 잃어"의 용례를 따라 본문
블로그에 "지방대 교수의 하루" 폴더가 있다. 지방대학에 재직하는 교수도 여러 유형이 있고, 서울에서 학위를 받고 지방대로 오는 교수도 여러 유형이 있다. 지방대 교수로서의 삶에 대해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여러가지로 검열이 많이 된다. 자기검열을 포함.
며칠 전 페북 탐라에 "지방대 교수로서의 삶에 대한 만족도가 대체로 떨어진다"는 페친 선생님 글을 보고. 짧게라도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너무 바빠서 오늘예야 잠시 간략한 글을 남기고. 이후에도 이러저러 글을 써보고 싶다.
1. 만족도
저의 경우로 말하자면, 만족도가 낮을 이유가 무엇일까, 싶다. "정규직 교수" 자리가 하늘에 별따기인데 "지방대"이기 때문에 만족도가 떨어지나?
아니면 정규직인 것은 만족하지만, 그외에 나머지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사실 이런 글을 남기지 않았던 건, 교수면서 만족 운운을 이야기하는 게 말이 되나 싶어서인데....
2. 개인적 경험: 취업 과정 편
정규직 되기까지 60번 넘게 원서를 냈다. 이런 말도 요즘은 '빈정상하는' 말인게, 그때만해도 그 정도 취업 시장이 있었다고 놀랄 수 있기 때문이다. 별로 먼 시절도 아닌데 그때는 교수되는 게 '취업 시장' 같은 게 아니어서, 신문에 난 공고(와, 이것도 이미 옛날말) 보고 원서내는 건 저한테 해주셨던 어떤 선생님 표현을 빌면 "한국에서 취직 포기했다는 선언"이던 시절.
뭐 대단한 도전 정신이 아니라, 아무도 내정해주지 않는 상황이라, 그냥 원서를 내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모두 떨어졌고, 3번 이상 원서를 내서 심사에 올라간 대학도 여럿. 그 이후 3회 이상 지원 금지 조항도 생겼다.^^
그래서 정규직이라면 지구 어디라도 간다는 심정이었음.....
3.지방대가 왜?
당시 서울 연구자들 분위기는, 예를 들면 수유를 만든 과정을 기록한 고미숙 샘의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에서는 "지방대 가서 연구를 못하게 될 게 뻔하여, 그러느니 서울에서 대안 연구공간을 만들기로 했다."고 되어 있다.
사실 그때도 여러 면에서 고미숙 샘과는 방향이 다르긴 했지만, 하여간 나는 그때도 "지방대가 왜?"라는 생각이었고,
4. 지역을 모른다는 젠더 연구자로서의 자괴감
지역에 오게 되면서 가장 기뻤던 것은 그간 젠더 연구자로서 항상 "지역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다"는 점, "서울 지역 대학 출신자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는 점"이 스스로 부대끼는 일이었기 때문에 드디어 지역에 대해 연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박사논문을 한국 전쟁 경험 특히 민간인 학살을 연구한 자로서, 지역의 경험을 모르는 게 내내 연구자로서 스스로의 연구의 빈 지점이라 느꼇다. 4.3을 글로만 아는, 글로도 잘 모르는 그런 주제에 뭔 젠더 연구를 하냐는 자괴감이 항상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 부산에 올 때도, 그리고 지금도, 지방대에서의 삶은 연구자로서 아주 큰 기회이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5. 직장 생활의 애환
물론 직장 생활은 다 힘들다. 가끔 어떤 이들이 내가 뭔가 명랑 교사처럼 "부산에서 행복하게 지낸다"라는 식으로 말할 때,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을 속으로 경멸하곤 했다. 여기가 뭐 만화나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천진난만한 시골 동네"라고 생각하는 그런 태도.
직장 생활은 다 비슷하지 않나? 직장 생활에서 힘들어도 그게 지방대라서 라고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물론 내가 외지인이거나 '외부자'로 간주되어 생기는 일 같은 것도 있지만 직장 생활의 본질은 아니다. 연구소가 엎어지고 이런 일은 그런 애환 중의 하나이고. 대학의 규모, 악독한 인간의 존재 같은 것들이고, 그런 악독한 인간은 어디나 있더라구요.
6. 서울을 못 잃는 사람들
지방대에 와서 새롭게 알게 된 건, 정말로 서울을 못 잃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진정. 그것도 매우 다양함.
심포지엄에 멀쩡하게 발표 펑크 내는 것도 '지방대'와서 처음 보았다. 너무 많이 그런 짓을 하고, 또 아무렇지 않게 그러는 것. 먹튀도 많다.
아래 댓글에 있는 칼럼을 한겨레 첫 칼럼으로 썼는데. 아는, 모르는 교수들로부터 엄청 욕을 먹었다. 개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부정하느냐며.....
지금도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그때는 모르던 일을 알게 된 것도 있다.
학교 선배 교수님들이 해주신 말인데. 지방대에는 이혼한 교수가 많고, 대부분 서울과 지방으로 떨어져서 생활하다가 그런 경우가 많아서, 그런 선배들을 보고 절대 떨어져 살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고 한다. 즉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경우도 많다는 점.
7. 그러니까 나의 경우는 서울을 못 잃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고, 젠더 연구자로서 지방대는 어쩌면 최상의 조건이기도 했다.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는 분들은 아마 지방대 교수님들)
8. 서울과 지방: 국립대와 사립대
아마 대학 사정을 아는 분들이라면 결국 중요한 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건널 수 없는 차이와 격차 문제인데.
그런 점에서 정규직의 경우, 서울과 지방의 차이도 중요하지만, 실은 국립대와 사립대의 차이가 크고. 사립대의 경우 대학의 규모의 차이가 크다. 서울의 소규모 사립대보다는 지방의 중대형 사립대가 여러모로 사정이 좋은 편이다.
비정규직이어도 서울에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연구자가 의외로 많다는 점이 개인적으로는 좀 신기하고, 아직도 잘 모르겠긴 하다. 아마 비정규직으로서 지방에 '내려가면', 서울에 정규직으로 '돌아가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9. 이 모든 이야기도 짜증
이 모든 이야기는 서울과 지방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 이야기이다.
지방대 학위자는 서울을 선택할 수 없고. 일정 레벨 이상 대학 졸업자만이 선택이라는 게 존재한다. 서울대 졸업자는 서울이고 지방이고 국립대고 사립대고 모두 선택할 수 있다.
지방대도 나름의 위계가 강하다. 예를 들면 부산대는 경상권 모든 대학을 선택할 수 있고 출강 범위도 넓다. 부산은 큰 지역이라서 동아대도 출강 가능한 범위가 상대적으로 넓은 편이다. 이런 위계가 지방대 안에서도 촘촘하다.
10. 그런 점에서 지방대에서 자대 출신을 교수로 많이 뽑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대 아니면 선택지가 없으니까. 그러나 오히려 많은 선택지를 갖고 있는 대학에 온통 자대 출신을 교수로 채용하는 건 한심한 한국 대학의 현실인것이고.
(엄청 욕먹겠으나) 이른바 '모교 부임'한 연구자치고 연구자로서 오래 살아남은 경우를 보지 못했다. 연구자로서는 불행한 일인데. 그걸 부러워하는 게 일반적인 것은, 역시 또 저마다 "잃지 못하는 것들"의 목록이 다르다는 뜻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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