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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wonderland
역사를 셈하기 본문
아주 오래 한국 보수주의에는 '애국주의 전통'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물론 이러한 애국에 대한 부채감과 위기감이 역사적으로 이승만, 박정희의 분열적 카리스마를 규정했다. 미국에서 온 국부(이승만), 만주 군인 출신 민족주의자 같은.
최근의 역사 수정주의는 흥미로운 차별성을 보인다. 이들은 상당히 명백하게 현재의 대한민국을 '단절적'이고 분리적으로 정립하려는 일련의 지향성을 보인다. 역사적으로 보수주의가 자신의 역사적 원천을 거의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아주 대조적이다. 이승만, 박정희의 분열적 카리스마는 대미 종속과 단군 시조설에 기반한 단일민족 신화를 강화하는 분열적 정체성에서도 잘 드라난다.
그러나 최근의 역사수정주의는 명백하게 1945년 이후의 국가를 자신의 원천으로 삼는다. 이는 한편으로 분단 체제에서 기존의 보수주의가 분열을 통해 위장하고 감추고 싶어한 정착민 식민국가로서의 자기정체성을 현재의 역사수정주의가 거리낌 없이 표명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https://v.daum.net/v/20240515205507781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41282.html
이는 지방의 역사에 대한 관점으로도 이어진다. 부산에서 흥미롭게 느낀 건 부산의 공식적인 문화유산이 거의 피란수도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부산에서 피란수도는 현재의 서울과 지역의 위계를 역전한 최초이자 최후의 경험이라는 점에서 위의 대한민국 역사 '정통성'에 대한 역사수정주의와는 다른 맥락도 지닌다. 그러나 거의 피란수도 정체성에 강박적으로 집중하는 문화유산 논의는 한편으로 부산의 역사, 그리고 미래에 대한 관점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한편 이와 달리 부산의 주요 문화 유산으로 왜관에 주목하는 논의도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근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부산의 역사를 현재 부산의 원천에 놓는다는 점에서 피란수도 중심의 문화유산 논의와 구별된다. 그러나 왜관은 일본과 부산의 관계성에 중심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의 인접지역, 러시아, 중국, 동남아시아와의 관계성을 배제한다.
방학 때 시간을 내어서 보려고 미뤄둔 양승훈 선생님의 <<울산 디스토피아>> 관련해서 울산에서 비판하는 1시간 넘는 방송을 꾸렸다. 세부적인 논의는 책을 보고 이어갈 예정. 개인적으로 선정적인 제목, 지방소멸 담론이 지방을 포르노그래피로 대상화하는 방식을 반복하는 제목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울산의 역사를 60년짜리 도시라고 한 지점이 논쟁이 되었는데 (물론 논쟁만 보았음, 책을 보고 다시 정리할 예정) 최근의 일련의 역사를 셈하는 흐름에 두고 보면 흥미로운 연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
(알라딘 책 소개에 따르면 울산의 역사를 일본의 군사도시화에서부터 찾은 기존 연구를 이어받고 있다. 울산을 만주의 반복이라고 했던 모 연구자의 논의도 생각남. 이런 논의는 정착민 식민주의 비판의 관점과 달리, 한국의 모든 것의 원천이 일본에서 기원하고 있다는 논의와 경계가 모호하기도 하다.)
울산은 60년짜리 도시일까?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보면 그렇다. 그러나 바로 이런 관점이 오늘날 지방소멸담론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이 소멸의 패러다임은 지난 60년간을 '번영'으로 볼때만 가능하다. 유토피아가 있어야 디스토피아가 있을텐데. 산업단지 유토피아는 과연 누구의 것이었나? 이를 중심으로 지역의 역사를 유토피아에서 디스토피아로라고 그려내는 게 정당할까? 이건 지방소멸 담론의 시간 인식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방소멸 담론은 사실상 지방의 역사에 대한 발본적 재해석과 재설정을 통해서만 넘어설 수 있다.
이건 대한민국의 현재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정착민 식민주의 관점에서 지방소멸 담론을 비판하고, 다른 미래가 도래하도록 하는 이론적 실천이 필요한 이유.
정착민 식민주의의 감성구조 관련한 논문 최종 수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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