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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예술인 배제를 말한다: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alice11 2020. 4. 1. 14:40

[성명서] ‘1/n’을 넘어서 존중을 담은 대책을 요구한다
- 코로나19 시대, 예술인 배제를 말한다 -

- 예술인을 배제하는 코로나19 대책의 한계 명확... ‘피해증명이 어려운 예술인’의 조건을 고려해야
- 프리랜서라는 노동특수성을 고려한 정책 부재, 지지부진한 ‘예술인 고용보험 도입/권익보장법’ 공백 여실히 드러나
- 창작준비금 등 예술인에게 직접 지원하는 기존 정책의 확대를 통한 지원방안 마련 시급

도대체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암흑이다. 정부가 강조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실상 사회적인 것을 속성으로 하는 예술인들을 질식시키고 있다. 온라인 환경의 재발견을 말하며 많은 것들이 원격화되고 있지만 원초적인 접촉을 전제로 하는 예술은 원격화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탓이다. 그래서 문화예술은 위기의 시대에 가장 빠르게 연기되고, 취소되며 폐쇄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구성원인 이상 초유의 위기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할 방법이 없다. 누군가는 재택근무로 지내고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손해를 증명하며 지금을 감당할 돈을 손에 넣는다. 문제는 이렇게 공평한 위기의 상황에서 그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무기의 불평등’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월부터 거의 주마다 내놓는 지원책은 수십조원의 수준을 넘어섰다. 이 때를 틈타 대기업들의 총수들은 40개에 달하는 법률을 고쳐달라며 어이없는 민원을 마치 청구서처럼 내놓았다. 전국의 공공자금 대출 창구는 자영업자들의 긴 줄로 장사진을 치고 있고 하루 아침에 고용센터에서 실업급여를 신청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보면 ‘비오는 날 우산장수’ 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막상 자신의 손해를 증명할 수 없어 어디로 가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문화예술인들이다.

계약서가 존재하지 않거나 구두로 섭외된 공연이 취소될 경우, 한참 새롭게 시작할 프로젝트에서 영상이나 음향을 담당하기로 했다가 아예 프로젝트가 중단된 경우, 책을 내고자 했는데 중단되거나 오랫동안 준비한 행사의 참여가 무기한 연기된 경우를 생각해보자. 각각 사업자인 극단은, 텅텅빈 극장은, 일거리가 없는 기획사나 사무실들은, 원래 하기로 한 행사들을 줄줄이 취소한 공공기관들은 찾아갈 곳이 있다. 또 이들을 지원해줄 다양한 정책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렇게 취소되고 연기되고 사라진 일들 가운데서 실제로 예술노동을 해야만 했던 예술인들은 증명의 방법이 없다.

그래서 예술인들은 어떤 지원 정책에서도 박탈당한 예술노동의 기회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 고작 예술인생활안정자금 융자사업 정도인데, 3월에 실시한 대출은 이미 30억원 한도를 넘어 43억에 이르렀다고 한다. 지원금도 아닌 융자금에 그렇게 예술인들이 몰렸다. 그 마저도 다 지원받지도 못했다. 여기에 어렵게 준비한 공연을 포기 못한 예술인에게 ‘300만원의 구상금을 청구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서울시와 같은 지방정부도 있다. 서울시가 진행하는 문화예술인 피해조사는 끝났지만 그래서 도대체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인지에 대한 대책조차 내놓지 못하면서, 멈추지 않는 공연에 대해 무시무시한 협박을 내놓는다.

우리는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 조차 ‘지워진 예술노동의 자리’를 요구한다. 특별한 대책이나 지원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증명하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에 또 다시 배제되는 예술인을 보이는 존재로 인정하는 요구다. 재난기본소득과 같이 뿌려지는 돈의 1/n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했고, 하고자 했으며, 또 앞으로 할 것이었던 활동에 대한 대책을 요구한다.

적어도 현재의 상황에서 다음과 같은 조치들이 좀 더 빠르고 명확하게 시행되기를 촉구한다.

1. 현재 예술인복지제도 중 가장 구체적인 현금성 지원정책인 예술인복지재단의 ‘창작준비금’ 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알다시피 해당 사업은 잇단 예술인들의 죽음 끝에 만들어진 긴급생활자금지원 사업으로 도입된 제도다. 지금이야 말로 해당 사업 목적에 부합하는 시기다. 따라서 현행 연간 12,000명에 불과한 지원 규모를 직업으로서 예술인을 증명한 활동증명 예술인의 절반 규모까지 긴급 확대할 필요가 있다(2019년 말 기준 68,286명).

2. 해당 정책의 시행 방법은 선지급 사후확인의 방식으로 진행해야 한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지원이 되지 않으면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최소한의 피해소명 만으로도 우선 지원하고 이후 해당 내용을 추가적으로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만약 확인되지 못한다면 해당 지원금은 융자대출로 전환하면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빠르게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3. 현재 각 지방정부, 문화재단 별로 시행되는 지원사업은 천차만별이다. 무엇보다 예술인들에게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 상황에서 우후죽순 생색내기용의 정책들이 쏟아진다. 적어도 한국문화예술위원-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주도하여 공통의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한 예술인지원사업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제공할 필요가 있다.

4. 현장의 대응은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가장 많은 예술인들이 사실상 프리랜서라는 특수한 노동조건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협단체 중심의 의견수렴에 머무는 건 무능력한 일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도대체 누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밝히고 무능한 거버넌스 구조를 혁신하라.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는 만약 현재 준비 중인 예술인고용보험이 예정대로 2019년 시행됐고, 정부와 집권여당의 무능력으로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제정되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적어도 최소한의 예술인이라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또한 예술인에 대한 피해보상을 당연한 권리로서 보장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빈곤이 선택이 아니듯이, 예술인이라는 직업은 형벌이 아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이미 경기활성화라는 이름으로 기업들이 가져간, 다양한 조세지원으로 부담을 줄인 이들이 챙겨간 것의 조그만 일부분일 뿐이다. 예술인은 다른 여타의 직업이나 활동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하는 이름이다. 또한 당연하게도 사회적 몫을 주장하고 이를 찾아올 권리가 있는 존재들이다. 그러니, 우리의 생존을 위한 몫을 달라. [끝]

2020년 4월 1일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