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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먼 곳의 동료와의 마주침의 쾌락 본문

젠더어펙트연구회세미나

낯선, 먼 곳의 동료와의 마주침의 쾌락

alice11 2024. 9. 29. 00:06
이틀간의 학술대회를 잘 마치고, 저녁 먹고 꿀잠 자고 일어난 시간^^
대구 퀴퍼 소식도 궁금하고, 캐런 바라드 강연 소식이 궁금해서 페북을 살펴봅니다. 대구 퀴퍼는 무사히, 즐겁게 마치셨군요. 바라드 강연 후기는 아직은 못찾았네요~~ 기대해봅니다.
저도 자고 일어난 김에 학술대회 후기를 남겨봅니다.
이틀간 줌으로 진행하는 학술대회는 항상 느끼지만 긴장감이 높고, 나름 설명하기 힘든 쾌락이 있는 것 같습니다. 즐거움이나 보람, 그런 것만은 아닌 그 정동이 무엇일까...마치는 시간을 앞두고 "뭘까..." 곰곰 생각하다가, 잠이 들어서.....
깨고 나서 문득 뭔가 떠오른 말이 있었습니다.
책을 보거나 원고를 쓰거나, 일상적인 일을 할 때도 뭔가를 듣는 걸 좋아합니다. 음악 듣는 걸 좋아하는 그만큼, 외국어를 듣는 걸 좋아하는데, 어떤 언어를 듣는 게 특이한 쾌락이 있다는 생각을 오래 하곤 했습니다. 그게 어떤 쾌락인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심포지엄도 그런 약간 유사한 쾌락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줌이라는 새로운 미디어와 테크놀로지로 인해, 온전히 화면과 소리에 집중하고, 집중할 수 있는 환경과 무관하지 않은 것도 같습니다. 저희는 오래 줌으로 세미나나 여러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 각자 어디 있던 물리적 거리를 넘어 만날 수 있어서, 꽤나 유용합니다.
젠더어펙트 연구소를 하면서는 더욱더,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 분야도 다르고, 연구 경력과 이력도 서로 이질적인 다양한 연구자분들을 만나왔습니다. 때로는 서로 잘 아는, 오래 함께 한 연구자들끼리 이어온 함께 하는 공부의 분위기가 부러울 때도 있습니다만, 익숙한 연구자들의 연구를 만나는 일은 또 다른 감각인 것 같습니다.
오래 알던 익숙한 학문 공동체와도 멀리 떨어져서, 매번 새로 길을 찾아야 하는 새로운 이론을 공부하고, 또 길을 만들어가는 데에는
이렇게 전혀 일면식도 없는, 그러나, 이 낯선 길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서서 고민하고, 헤매고, 자문하고, 또 가끔은 홀로 뭔가를 발견하고 '나 이거 기뻐해도 되는 건가'하면서 성취감도 아닌, 인정받았다는 안심도 아닌, 그런 알 수 없는 기분으로 낯선 길에 서 있는
그런 일면식도 없는 연구자들과 만나, 서로가 낯선 길에서 해온 질문을 서로에게 발견하고, 설명할 수 없었던 기분을 다른 이에게서 발견하면서 비로서 표현할 언어를 찾게 되는, 그런 쾌락.
지금 여기서 만나, 서로에게 낯선 길에서 홀로 떠도는 것 같던 어떤 기분을 같이 나눌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또 각자의 연구 현장으로 돌아가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지라도. 익숙한 동료와는 다른, 그런 서로 멀리 떨어져서 홀로 빛나는 반짝이는 동료들이 거기 있다는 그런 감각.
젠더어펙트 연구를 하면서, 그런 기운을 담은 연구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이런 만남 자체가 뭔가 다른, 그런 변화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런 연구를 듣고 있느라면, 줌 화면 앞에 있으면서도 문득 어딘지 모르는 그런 현장 속의 길 위에 서있는, 그 현장을 바라보며 낯선 현장에 부대끼고, 밀어내는 힘들에 때로 주춤하고, 사람들 속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그러다 어느날 정말 문득, 발 밑의 흙 한줌의 감촉에 '여기에 있다'는 혹은 여기가 현장이야를 감각하는 그런 연구자의 현장과 현장에서의 부대낌의 모습이 펼쳐집니다.
그런 펼쳐짐은 젠더어펙트 연구를 하면서 처음 마주한,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때로는 연구자의 글에 담긴 어떤 정동들이 신기한 경험을 촉발하기도 하고 더 자주는 일면식도 없는 낯선 연구자의 세계에 걸어들어가는 그 마주침의 신비가 이런 펼쳐짐을 촉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가, 대학도 지식장도, 운동도 쇠퇴했다는 진단이 팽배한 시대에도, 그런 기운을 나누며, 느끼며, 꽤 긴 여정을 이어온 것 같습니다.
그 기운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그 기운은 어떤 점에서는 듣기에서 오는 것이지 않을까, 긴 심포지엄을 마치며 들었던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