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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섬의 geography

외국어를 듣는 시간

alice11 2018. 11. 19. 23:30

11월 17일 심포에서 본의아니게 통역을 하게 되었다.


일어 통역이 "완벽했다"고 해주셔서, 오 쫌 감회가 새롭다.


거의 20년 가까이 일어 선생님이셨던 타지마 센세를 통역으로 모신건 이러저러 이유와 사정이 있었다.


일본에 있을 때나, 뭐 왔다갔다 할 때도 매번 열심을 부렸지만


항상, 일본어가 전공도 아니고, 유학생도 아니고, 그러니 그저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되지라고 마음을 먹긴 했으나


내가 하는 일어가 어떤 정도인지는 사실은 잘 알 수가 없었고.....


길고 험난한 일정을 마치고, 간만에 드럼 피아노 학원을 다녀와서


졸다가 깨다가 하면서 텔레비전을 켜두었는데


<최고의 이혼>을 잠시 보았다.


부산에 내려와서


한 학기에 24시간, 18시간 강의를 하며


밤 12시에 집에 들어와 겨우겨우 몸을 추스리던 때에도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다며


공부는 할 수 없어서, 일어 방송과 드라마를 보며 나름 버텼다고 할까.


물론 그전부터 일어 공부를 시작하면서 리스닝 공부를 위해서 집에서는 무조건 외국어 방송만 본 지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다.


그게 부산 생활에서는 어떤 생존 전략이 된 것도 같다.


취직이 안되서, 매번 떨어지는 날들의 괴로움을 버티느라, 방학마다 일본에 갔던 때 그런 생존 전략을 만들게 되었다.


아주 잠시, 외국어 속에서 살면서,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시간을 갖는 것.


그래서 지금, 이곳의 괴로움을 잊기 위해, 그리고 공부에 대한 불안을 잠식하기 위해, 일본어 드라마 방송 영화를 열심히 <들었다.>


그렇구나, 아마 내게는 그저 듣는 일. 


그래서일까. 한국어로 번역된 일본어 드라마를 보면, 뭔가 기묘한 느낌.


일본 드라마는 어쩌면 내게 그저 듣는 일이라, 지금, 이곳의 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이었던터라.


한국 버전으로 다시 만들어진 일본 드라마를 보는 건 생경하다.


그런 버전에 대해 여러 평이 나오는 걸 보면 그 낙차가 잘 좁혀지지 않는다.


<마더>때도 그랬고, <최고의 이혼>에 대해서도 페미니즘 차원에서 여러 비평이 나오던데.


사실 그런 실감이 잘 생기지 않는다. 


일본의 여러 상황에 대해서도 아주 오래 공부하고 조사도 했지만,


항상, 그건 내 전공이 아니고, 내가 잘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그런 거리감을 유지하려고, 일부러 노력했던 것 같다. 


모든 것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하려는 욕망을 버리고 싶었기도 하고.


하여간, 그런 시간이 내게는 필요했고, 필요한 것 같다.


지금, 이곳에 대해서도, 이제는 나보다는 더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들이 더 많고,


나는 계속 말을 줄여야겠다, 줄이고 싶다는 생각이 많다. 그 이유는 좀더 많은 말이 필요하겠지만.


외국어를 듣는 시간을 더 많이 갖고



그와 같이, 음악을 몸으로 익히는 시간에 더 많이 침잠하고 싶다.


그러려 한다.


블로그에 가끔 음악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외국어를 듣는 시간에 대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