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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wonderland

군인과 음부의 공화국 본문

혐오발화아카이브/남근 토템 시대

군인과 음부의 공화국

alice11 2016. 11. 28. 17:02

11월 15일 보충

며칠 동안 댓글로 의견 주신 분들과 논의하면서 남겨둔 논평 중 몇가지를 보충해서 올려둡니다. 댓글이나 질문에 대한 답변 형식이고 아래 있지만, 보시기 편하시라고 여기 그래도 올려둡니다. 
<왜 지금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에 대한 질문과 <공화국을 군인과 음부에서 찾는 것이 어떤 이론적, 역사적 원천이 있는가에 대해서요. 저 비유가 '익숙한 비유'라고 한 것은 '적에 대한 살처분'을 통해 역설적으로 국가의 이념을 연구하는 전쟁론, 노예화에 대한 페미니즘 연구, 파시즘 연구, 물론 푸코의 생명정치에 대한 연구까지 비판했던 '국가관'의 전형이기 때문입니다.)보완해둡니다.

*남근 토템의 복귀에 대해:공론장의 관성
언론에서 이렇게 '시국에 대한 원로 한 말씀'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큰 문제라는 생각을 했어요. 거의 '애국', '가부장성' '예언자적인 남성 지도자'의 목소리를 다시 불러들이는 방식이, 시대의 방향이기도 하고, 이런 공론장의 오래된 관성이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박대통령이 '원로' 만나는 게 우스꽝스러운 반복이듯이, 언론의 이런 관성도 그런 부분이 있고, 더나아가. 연재나 기고를 계속 보면서 (여타 자료들도 포함해서요) '여왕' '꼭두각시' '주술정국'이라는 집단서사는 동시에 이 시대를 '브루주아(근대남성주체) 혁명'의 시대라는 믿음이나 의식을 의식, 무의식에서 확고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프랑스 혁명이나 87을 말하는 것도 그런 점에서 '원론'이 아니라, '근대남성주체 혁명'으로의 '복귀' 혹은 '반동'의 서사로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할 이야기는 많지만 일단은 여기까지요^^

*학살의 사상? 전쟁과 학살의 경계를 구별한 ‘최소 민주주의’조차 붕괴시키는 미소지니
사실 굳이 계보를 찾아줄 필요는 없지만 국가의 근간에 대한 저런 이념은 전쟁론 노예제 파시즘 사상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갖고있죠. 전쟁에서 승전국이 적을 처분할 때 연령을 불문하고 남자는 예비병사로 간주해 살해하고 여성은 강간하고 강간해서 살해하고 영원히 강간하기 위해 성노예로 삼고 이렇게 하는 게 적국의 국가성 자체를 파괴하는 것으로 여겨 승전의 쾌락으로 삼고 국가성을 강화하는 방식이죠 이른바 근대 민주주의란 이런 방식과 다른 포로 제도 민간인 보호라는 민주적-전쟁??을 한다는 차이를 보이지요 전쟁과 학살을 어쨋든 구별하는 이유겠죠. 그러나 학살과 전쟁의 경계를 무화시킨 파시즘 전체주의는 그런 의미에서 근대에 내재한 노예제 노예화의 사상을 전면화 지배화 한 것이라 할 수 있겠죠. 천황제 박정희로 이어지는 사상의 계보이기도 하죠.

저글에 공화국을 위해 악취 나는 음부를 도려내야 한다는 강조 비유 반복이 이어지는건 그런 점에서 일관된 사상이죠. 자궁적출 음부에 대한 잔인한 공격 여성의 성기를 잔인하게 도려내는 학살형식에 대해 파시즘 연구자나 학살 연구자들도 그것을 사상의 문제로 비판하기를 주저할 정도로 끔찍한 대면하기 두려운 어두운 심연인데 그것이 일관된 사상 그것도 다수가 동의하는 일관된 사상이란걸 보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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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을 어제 밤부터 오늘까지 몇 차례 다시 읽고 또 읽었다. 오독한 것이기를 다소 절망적인 마음조차 갖게 되는 재독의 시간이었다. 해서 오늘 다른 분들의 논평이 좀 나오기를 기다려보았는데 '격문', '프랑스 혁명과 공화국' 등 추천을 하시는 글 말고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다들 고민하는 문제지만 민중총궐기의 해방적 감격은 또한 그 이후 어떤 정치, 사회를 만들것인가 하는 고민을 남겨두고 있다. 언론에서도 이를 위해 이런 연재를 하고 있는 것이고 기획 취지나 의도는 백프로 동의한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국민의 95%가 대통령을 비판하고, 종편이 나서서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비판 그 자체'는 별다른 차별성도 없는 동어반복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니까 문제는 대안, 혹은 대안적 상상력일 것이다. 아래 글에 나오는 '비판'은 그런 점에서 국민 95%가 하는 이야기의 동어반복이고.

더욱 문제는 바로, 대안에 대한 상상력, 이른바 '공화국'을 말하는 상상력과 이념적 기반이다. 백만보를 양보해서, '그저 비유' 혹은 '오래된 비유라서 그렇다'고 해도, 이런 공화국의 상상은 정말 문제다.

페미니즘 젠더 연구가 수십년동안 '어머니 공화국'의 이념을 비판해왔고, 모르지 않으실터, 지금, 이 시점에서 그 역사가 삭제되고 전혀 개의치 않고 공화국은 "청결한 음부", 공공성에서 "청결한 음부가 중요하다." 라거나, 현재의 문제를 "악취가 나는" 음부의 비유를 드는 것은, 정말 문제다.

그리스 이래 여성의 신체를 '악취의 장소'로 상상한 미소지니의 원천이 오늘, 여기서, 내일의 공화국을 상상하는 이념과 상징의 장소로 당당하게 호출될 수 있다는 이 '공론장'의 현실이 절망적이다.

공화국에 대한 정치사적 논의의 역사 또한 풍부한데, 왜 이 시점에서 "군인과 음부"의 두 상징을 근간으로 한 공공성과 공화국의 이념이 다시 불러들여져야 하는가?

공화국의 공공성을 죽음을 불사하는 군인(남성성)과 청결한 음부를 통해 신체를 국가에 '헌납'하고 청결한 국가/공동체의 재생산을 위한 신체로 동원되는 이런 '국가 상상'이야말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무수한 국가 폭력, 파시즘, 전체주의의 상상력이었다.

이런 폭력적인 공화국의 상상을, 지금 여기서 다시 불러들일 수 있는 그 힘이 무엇일까? 이것이야말로 '주술적 초혼'이다. 차별선동, 혹은 증오정치가 폭력의 역사를 여기로 불러들이는 '초혼적 제의'의 성격을 갖는다던 버틀러의 말을 새삼 환기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문제제기가 그저 광장의 감격과 '애국시민'의 열정에 까탈을 부리는 '페미'들의 날선 투정으로 치부되고, 그저 불편함으로 회자될 현실이 더 절망적이다. 한겨레 필자가 한겨레를 자꾸 비판하냐고 물으신다면, 그게 한겨레 다운 일이라고 대답드리고 싶다. 블로그에서도 한겨레나 경향, 오마이 등 이른바 '진보'매체 비판을 많이 했다. 아마 해당 매체 분들은 불편한 마음일 것 같다. 관계자 개인분들의 노고를 폄하하려고 이런 비판을 하는 게 아니다.

우리에게 '대안'이 필요한 시대이니, 그 '대안'이 역사의 희극적 반복이나 비극적 악순환이 되지 않으려면, 이런 비판과 방향 전환, '근본적 단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의 논평을 기다려본다.

"공화국의 최후 골간인 공공성은 애초 군인과 음부를 뜻했다. 그것이 없다면 인간과 국가 생명은 죽기 때문이다. 공공성이 공화국의 최후 생명선인 까닭이다.

군인은 가장 춥고 먼 변방을 지키지만 그들이 무너지면 ‘나라’는 즉각 위험해진다. 음부는 우리 몸의 가장 깊고 어두운 곳이지만, 거기에 중대 질병이 돋으면 ‘온몸’이 아프고 끝내 생명 생산과 세계 지속이 불가능하다. 음부가 ‘핵’이라는 뜻을 갖는 연유다.

음부는 아무도 못보는 가장 사적인 곳이지만 가장 깨끗하지 않으면 공공성의 최고 표상인 세계도 멸망한다. 건강한 음부가 중요한 이유다.

국가의 핵인 권부도 마찬가지다. 권부가 썩으면 나라는 결코 유지되지 못한다.

권부는 군대처럼 희생적이고 음부처럼 청결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는 건강하며 지속될 수 있다.

그곳이 썩으면 국가는 죽는다. 지금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대통령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지금의 국민항쟁이 나라 다시 살리기인 이유다. 지금 대한민국 권부는 악취로 코를 댈 수조차 없다. 국가가 살려면 깔끔히 도려내야 한다. 권부에서 악취가 진동하는데 국민과 군인과 공무원들에게 청렴하라고 할 수 있는가? 권부가 헌법을 파괴하고 국법을 능멸했는데 군인과 관료와 교사와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할 수 있는가? 말도 안된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769959.html#csidx3d76b7b7f52066c9ce06995387dfc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