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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몰운대 일기/여기가 아니었더라면 (13)
alicewonderland
장소가 체화된다는 것, 극장과 일드 태어나서 줄곧 서울에 살았고 20살에서 41살까지 20여년을 줄곧 하루의 반경이 신촌 근처를 벗어난 적이 크게 없었다. 1980년대에도 아마 전국에서 가장 극장이 많은 곳이었을 터. 극장에 가는 일은 그저 일상의 자연스러운 리듬 중 하나였다. 학교 가기 전에 극장에 가기도 하고 공강 시간에 극장 가기, 연구실 생활할 때는 저녁 먹고 극장 가기, 퇴근하고 심야보기 등 하루에 극장을 몇 번 가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연구자로 살기 시작하고는 여러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위해서 신촌을 나가는 걸 제외하고는 줄곧 연구실 언저리에서 생활을 했다. 하긴 그래서 대학원 후배들이 나를 놀리며 붙여준 별명이 "여고괴담"이었다. 언제부터 교실에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항상 있고 언제나 있..

이정임 작가의 , ,곳간 2022 이정임 작가 작품에 대해 언젠가 꼭 글을 쓰고 싶었는데. 미루다 미루다 못쓸 것 같아. 새 작품이 나온 김에 몇 자 메모를 남겨봅니다. 나는 지역출신이 아니여서 지역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더많이 갖게된다. 이미 내가 소유한 상징자본이 그 기회 지분에 물론 얹힌다. 그렇지만 이 기회는 또 내가 이주자여도 부산에 대해 말할 권리를 소리높여 외치며 싸워온 결과 쟁취한 것이다. 이주자의 말할 권리를 싸우며 여기 살 권리 여기 사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권리를 싸운 여정이기도 했다. 일터의 관계는 처음이나 십여년이 지난 지금이나 한국 어디나 매일반일 대학과 그 언저리 관계일 뿐이다. 여기서 지역성은 "우리가 남이가"의 평균 이상과 이하를 넘나든다. 그 '우리' 역시 대학의 노예적 ..
"서울 출신들은 '우리'랑은 다르지." 겹겹의 이곳 출신인 선생은 학생들에게 '우리 선생'의 경계를 노골적으로 강조하곤 했다. 나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우리 선생'이 아니고, 내가 하는 일은 '우리 일'이 아니다. 꽤 길게 '우리'의 벽과 싸우고 나도 그 안으로 들어가 보려 했지만 사실 그건 내 선의나 열심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선생으로서 나는 어떤 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 과연 내 자리는 있나라는 번민은 지금도 나를 과로사 직전으로 몰아가며 나를 스스로 몰아치는 회초리다. 그렇게 아마 영원히 '우리 선생'도 '우리 일 하는 사람'도 되지 못하겠지만 그와는 다른 뾰족한 내 자리도 매겨지고 있는 것 같다. 젠더어펙트 연구자 선생님. 뾰족하게 내 정체가 널리 알려져서 알 수 없는 힘겨움도 있지만 아주 작..
이틀 간의 국제 심포지엄을 마치고 라디오 들으면서 커피 한잔 하는 오후. 1. 한국, 대만, 일본 혹은 트랜스내셔널을 넘어선 새로운 젠더어펙트 연구 연결성 좀 긴 지속성 속에서 공동 연구를 하고 싶어서 첸페이전 선생님과는 계속 여러 자리를 만들고 있다. 나이토 치즈코 선생님과는 좌담부터 카시cassi로 이어지는 정말 긴 연구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는 한 달에 한번 모임을 하면서 공동연구 기획을 하고 있다. 특별한 제안을 드린 건 아니고 매번 두 분 선생님이 지금 하고 계신 연구를 청해 듣는 자리인데 항상 뭔가 우리 연구팀의 주제와 맞닿아 있어서 신기하다. 이번에는 특히 과거와 어떤 연결성이 없는 듯한 현재의 상황들을 역사와 신체적 연결성 속에서 해석하고 교육하는 연구를 제시해주셔서 공부하는 재미에 ..
꽤 여러번 참가했던 AAS. AAS에 대해 생각하면 몇가지 소회가 떠오른다. 너무 돈이 많이 들어서 온통 돈 생각 뿐이었던 기억, 다른 학교에서는 참가만 해도 지원해준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좌절감. 어디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렸던 학회는 좀 흥미로운 관찰의 기회이기도 했다. 장소성은 망각되고 메리어트만 기억에 남은! 역시 돈이 없어서 그 화려한 5성급 호텔 룸을 몇명이 쪼개 쓰면서 5성급 호텔 침실을 써보지도 못한 채 구석마다 처박혀서 발표 준비를 하던 연구자들 풍경도 그 중 하나. 왜인지 자꾸 울리는 화재경보로 자꾸 호텔 바깥으로 대피하던 풍경. 무엇보다 메리어트 세미나 룸에서 아시아에 대해 발표하는 메인 스피커는 거의 전부 미국의 백인 남성 지식인이고 아시아에서 온 학자들도, ..
세계가 사라진 자리의 어떤 피로: 오염된 아비의 머리를 자르는 무의미한 행위의 무한 반복 이번 학기는 월요일 오전 수업 피드백을 일요일부터 해야해서 일요일이 업무 시작일이 되어버렸네요. 다들 지치는 날들 어떠신지. ----- 텍스트 분석이 직업인 사람들은 '주말에 영화 한편', '쉬는 김에 본 영화' 이런 리듬이 거의 어렵다. 물론 그렇게 하는 분들도 계셔서 존경! 무엇이든 보는 건 분석 강박에서 놓여나기가 어려워서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영화나 드라마를 제때 보는 일이 거의 없다. 항상 미루고 미루고 하다가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봐야해서 보게되는 식. 그런데도 직업병이라 쉴 때도 뭔가 보고 싶다^^;; 그래서 시작한 게 일드. 일단 일어 공부라는 알리바이가 있어서 오로지 어학 공부용으로만 본다, 일드로는..
* 사라 아메드는 소수자의 부대낌은 이른바 일반적인 감정 체계 혹은 이름이 부여된 정동 체계에도 들어갈 수 없고, 또 소수자의 질 다른 정동적 부대낌은 매번 이미 이름이 부여된 정동과 감정으로 환수되어 버린다고 했다. 그래서 소수자의 다름 이름은 정동 소외자, 혹은 정동 이방인이다. *'위안부 문제'로 탐라가 들끓던 당시 내 글에 대해 '원한이 담겨있다'며 '이제는 원한 없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논평을 본 적이 있다. 논평의 함의를 아주 모르지는 않지만, 담론 투쟁과 존재를 건 투쟁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고, 알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긴 역사를 '원한'이라는 손쉬운 이름으로 환원하고 또 쉽게 '세대론'을 대안으로 내세우는 게 '운동'의 이름으로 쉽게 이야기되는 게 씁쓸했다. *부산 관문 공항, 혹은 ..
몇 년 전 우연히 휘트니 휴스턴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신이 내린 목소리, 반짝이는 별과 같은 존재가 파괴되어가는 그 과정을 보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다. 무엇보다 찬란하던 목소리가 파괴되어 되돌이킬 수 없게 되는 과정을 보며 참으로 생각이 많아졌다. 공부와 글쓰기는 재능이 아니라, 수련과 노동의 지루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는데, 길고 긴 노동과 수련 끝에 어떤 반짝임을 얻게 되곤 한다. 그 반짝임의 순간은 자기 자신이 알기는 어렵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 보인다. 연구자 자신도 그 순간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반짝이는 순간이라는 걸 알 수 있다면 더 좋을까? 때로는 자기 자신이 반짝인다고 과시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믿음이 더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공부와 글쓰기의 반짝임은 오래 가지 않고, 반짝임의 순..
서울 공립고등학교 프랑스어 독일어 교사분이 이제 몇 분 안계시고 다 퇴직하셔서 프랑스어랑 독일어 수업이 이제 마지막이라고 하는 기사를 보았다. 그 이전에 이미 대학에서 프랑스어문학, 독일어문학과가 '구조조정'된 것도 이미 십 년이 넘은 것 같다. 그때 불문과 동창 친구가 '불문과가 이렇게 될 줄 진짜 몰랐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에게 "넌 그 옛날에 혹시 선견지명이 있었던 거야?"라고 진지하게 묻기도 했다. 선견지명 같은 건 전혀 없었고, 모든 게 이렇게 강제적 퇴출로 이뤄지는 것이 문제이기도 하고. 당시 대학 불문과 독문과 구조조정은 또 고등학교에서 제 2외국어 교육 방식이 이미 일본어 중국어로 바뀌어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고등학교 때 제2 외국어를 독어로 했는데 불문과를 간 건 그때 ..
세미나 후기를 겸하여 어제는 젠더어펙트연구소 세미나에서는 랑시에르의 을 읽었습니다. 젠더어펙트 스쿨 새로운 시즌 시작 전 숨고르기를 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프콤 시절 저희는 대안연구모임 구축을 꿈꾸었고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에 대해 랑시에르의 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시간과 말의 나눔은 우리의 꿈과 1980년대 랑시에르의 꿈과 1880년대 조세프 자코토의 꿈이 마주치는 미증유의 순간들이기도 했습니다. *타자의 말로만, 타자의 말들의 번역으로만 언어의 자리에 오르는 개인적으로는 프랑스에서 네덜란드로 망명하여 알지도 못하는 네덜란드어를 가르쳐야 했던 자코토와 자신의 자리를 오가며 흥미로운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당시 저는 부산에서의 저리 자리 혹은 저를 둘러싼 감각이 꼭 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