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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wonderland
사회진화론 혹은 사회정화론의 재림: 2025년 3월 본문
1. 정희진 선생님 칼럼은 나올 때마다 온갖 이유로 반응이 일파만파라, 이 반응의 배열들을 따라가는 걸 오래 해왔다. 따로 선생님 칼럼을 거의 공유하지 않는 건, 반응의 배열을 살피는 위치를 일부러 만들어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2. 이번 칼럼에 대해서는, 그간의 반응 배열과 확연한 차이를 보여서 매우 흥미롭다. 일단 한결같이 정희진 선생님을 '논리적으로' 조롱하던 A는 이번 글에 대해 "모처럼 들을만한 이야기를 쓰셨네"라고 논평했다면, 항상 존경과 헌사를 보내던 B는 "다른 사람이 쓴 글 아냐"라고 평하기도 했다.
3. 무엇보다 비상계엄 이후 이 탐라에서 나름 '극우 비판 담론'을 이끌던 지식인들의 반응을 따라 읽어보았다.
'공존'이라는 개념으로 이야기하려는 함의와 별도로, 공존이라는 개념에 이미 들러붙어버린 역사적 경험들이 이 글을 다소 손쉬운, 안이한 논의처럼 보이게 하는 점은 아쉽다.
정희진 선생님이 글 말미에 쓰신 것처럼 "다른 말"이 필요한 국면이고, 그 말을 기다리는 일이야말로, 전쟁상태를 가까스로 넘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일지 모른다.
파시즘을 쓸모없는 폭력이라고 할 때 대표적인 사례로 언어의 폭력적 변용을 이야기한다. 언어가 의미, 상징, 가치, 소통의 매개가 아닌, 순수한 폭력을 실어 나르는(채찍처럼)이 되어버리는 상태.
이런 언어의 폭력적 변용을, 극우를 경계하고, 정희진 선생님의 안이한 공존론을 비판하는 천정환 선생님 글을 보며, 머리를 갸우뚱하면서 생각하게 되었고 질문을 멈출 수가 없다.
4. "극우가 암이고, 병든 신체에 맞춤 처방을 해야 한다": 사회진화론과 사회정화론의 재림
천정환 선생님의 '염려'나 '우려'를 어느 정도 이해는 하는데, 최근 선생님의 방향도 뭔가 이전에 내가 알던 방향성에서 상당히 급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글 자체가 상당히 극단화되고 있다. 발표는 어떠신지 모르겠는데, 이런 글을 쓰신다면 발표는 더욱 파토스로 가득할 것 같기는 하다.
긴박함, 걱정, 불안, 나이브함이 이상한 화해론을 조장할 것에 대한 염려 등 다 충분히 감안해도, 사실 아래와 같은 논의는, 어쩌다가 이런 논리를 펴시게 되었고, 지식인들은 어쩌다가 이런 논리에 열광하고 있는 것인지, 이게 뭔가 현재 '극우 비판' 논의를 주도하는 분들의 집단적인 동의 구조 같은 게 생기고 있는 것인지 질문의 연속이다.
이게 뭐지?
의문이 끊이지 않아서, 사실 매일의 과로로 너무 피곤하여 오늘 세미나도 참가하지 못한 처지에 몸을 이끌고 글을 적고 있다.
천정환 선생님 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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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는 죽여도 돼’는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실제 가능한 일이 되는가? 우리가 이야기하는 극우는, 택시 안에서 중년 여자 손님에게 중국 음모론을 입으로 이야기하는 그런 수준의 극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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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마침.
뒤에서 정희진 선생님 논의를 "자유주의적인 모호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라고 규정하시는 데, 이미 그 전에 이런 식으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정희진 선생님을 "중년 여자 손님"이라고 묘사한 방식도 상당히 성차별적이다. 이미 이렇게 논자가 성차별적 조롱의 대상이 되고, 상황은 '그런 수준'이 되었다.
천정환 선생님이 그간 그래도 페미니즘이나 소수자성에 대해 '포용적 태도'를 취하려고 노력하셨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의 논조는 너무 노골적이다. 이건 그냥 서막이다.
천정환 선생님 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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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목격하고 또 같이 앓고 있는 ‘극우화’는 총체적인 것이고 다층적이고 심각한 것이다. 그것은 깊은 뿌리를 가진 사회적 모순이자 독성 높은 병 같은 것이다. 이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방치하지 않고 ‘대안’을 마련하다면 이 상태를 병처럼 진단하고 환자에게 맞는 다각적인 맞춤 처방을 해야 한다. 단호함과 유연함이 같이 필요하겠다.
극악한 것과 순한 것을 분리하고 썩은 환부는 과감히 도려내는 수술과 보존적 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 당연히 환자의 전체적인 체력과 면역력을 배가해야 하고 주변 환경도 개선시켜야 한다. (중략)
그래서 오래된 이 극우라는 암을 ‘관해’시켜야 한다. ‘민주주의의 민주화’가 필요하다. 자유주의적인 모호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인용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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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당면한 극우화가 "독성 높은 병" "암세포" 같은 것이고, 대안은 "이 상태를 병처럼 진단하고 환자에게 맞는 다각적인 맞춤 처방을 해야 한다.", "썩은 환부는 과감히 도려내는 수술과 보존적 치료가 병행되어야 하고", "환자의 체력 면역력"을 키워야 하며, "극우라는 암을 관해시켜야 한다."
이런 인식은 19세기 초반이나, 원조 파시스트들의 논의에 등장하는 사회 유기체론 혹은 사회진화론이며 이것이 박정희 체제와 최근까지도 이어지는 그 지긋지긋한 사회정화론의 '논리'이다.
정희진 선생이 극우나 증오범죄를 근절해야 하지만, 존재 자체를 근절하겠다는 발상으로 나아가서는 안된다고 하는 논의를 내 나름으로 혹은 증오정치에 대응해온 페미니스트들이 그간 해온 논의를 바탕으로 이야기해보자.
증오정치는 어떻게 특정 존재를 절멸할 수 있었나? 그들을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 비인간, 동물, 사물, 병균, 건강한 신체를 오염시키는 바이러스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이들을 제거하면서 비로소 안전을 느끼는 증오정치의 자기보존논리와 이를 통한 정당화는 바로 이런 사회진화론에 의해 반복된다.
사회는 유기체가 아니다. 사회가 유기체이고, 극우라는 암 때문에 병들었고, 처방전이 필요하다. 그러면 처방하고 진단하고, 수술을 하는 이들은 유기체의 '머리'에 해당하는 특정 지배 집단이 된다.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거나, 더 나아가 사회를 정화해야 한다는 논리는 바로 유기체의 '머리' 혹은 유기체를 바깥에서 진단할 독점적 권리를 지닌 자=파시스트 지배자, 정화 주체에게 맡겨진다.
----비약이라고 생각하시면, 같은 논리를 담은 아래 글도 소개드린다.
자료는 무한대로 많으니, 파시즘 역사의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만나실 수 있다.
---- <전시동원 체제 중국적인 것> 차이나 어펙트 관련한 논문에도 인용했던, 김경재의 글인데.
이는 당시 일본의 전시동원 정책에서 '공산당을 암종"으로 보고, 그 온상인 상해도 암종으로 보고,
이 암종이 자라는 몸 자체를 스파이(적에게 침투된 몸)로 간주해서 암종만 도려낼 수 없다면,
그 몸, 온상 자체를 절멸시켜야 한다는 파시즘의 논리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니까 말이다.
사회라는 유기체에 생긴 암이 극우라고 하셨는데,
이런 사유 회로에서 결국 암을 도려낼 수 없을 때 그 유기체 자체를 정화해야 한다는 자연스러운 논리적 귀결이 도출된다.
정상세포와 비정상 암 세포를 구별하고 도려내는 기술자는 누구인가?
너무나 파시스트적인 발언이다.
정희진 선생님의 어떤 논리가 이런 파시스트적인 반향을 불러낸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정희진 선생의 논의를 대상으로, '모호한 자유주의적 정치적 올바름'(페미니즘과 소수자 정치를 이렇게 규정하는 게 얼마나 차별적인지 새삼 강조하고 싶지 않다.) 을 주장하는 '그들'과 '우리'를 구별하면서 다른 진지를 구축하는 논리 자체가 이런 파시스트 논리를 정당화하는 기반이 되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알던 천정환 선생님이라면, 이런 논리를 펴는 게 기이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왜 그런 자기검열이나 "자유주의적이고 모호한 정치적 올바름"과 다른 "대안"이 이런 사회유기체론으로 귀결되는 데 어떤 꺼림칙함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일까?
제가 정희진 선생님을 대신해서 논의를 해석하는 게 아니라, 이 논의로 촉발된 어떤 '극우 비판의 대안'에 대해 저도 하나의 반응을 남겨둡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천정환 선생님은 오래 존경하고, 흔치 않은 동료로 믿고 의지하는 연구자이시기에. 이런 비판이 탐라의 여러분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 천정환 선생님도 다소 당황스러우실 수 있겠으나,
저도 이 글을 읽고 당황스러운 마음이 되어, 질문을 남기는 차원에서도, 진정 궁금하기도 하여 글을 남깁니다.
이런 시대라서 더욱더.
아래는 참고자료-----
김경재, 「戰時下의 上海」, 新上海호텔 金璟載, 삼천리, 12 (3), 1940.03.01.
蔣介石이라 重慶에 앉어서 英, 米, 佛의 약간의 도움이 있다기로니 재정적 파탄을 막는 길이 없을 것이요 그 우에 中國 공산당이란 것이 있어 上海 일대에 蔣介石 지반을 빼앗을려고 佛祖界를 비롯하야 共同租界에도 다수한 사람이 잠입해서 지반 획득에 분주하다고 함니다.
國共合作이라고하나 그는 표면적 사실에 끈치고 이면에서는 일층 대립이 격화하고 있으니 지금의 정세로 보아서 공산당이 활약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조건이 좋습니다.
租界란 금후 신생 中國에 있어 용인하지 못할 암종이외다. 현재의 정세로만 보아도 上海에서 그 좁다란 蘇州河 하나를 경계로 하고 저편에 가면 排日의 언동이 잇슴니다. (중략)
옛날의 中國으로서는 능히 참었다 하드라도 오날의 신생의 中國으로써는 나의 몸을 파서 먹는 좀을 그대로 언제까지나 둘 수는 없을 것이외다.
[정희진의 낯선 사이]내전과 공존
지난달 말 윤동주 시인 80주기를 맞아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의 일행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새벽에 공항 가는 택시를 탔는데, 기사분이 느닷없이 된소리로 “쭝국 가냐”고 물었다. 아니라
v.daum.net
= 빨갱이는 죽여도 돼
: 극우적 광기와 폭력성은 어디서 오는가? 어떻게 대처할 건가? =
1.
3월 22일 ‘지식문화기획집단 사람하다’에서 또 극우에 대한 발표(강의?)를 하게 됐다. 지난 2월 11일 발표를 좀 심화한 내용인데, 한편으로는 다소 산발적으로 취재ㆍ분석되고 있는 논의를 나름대로 종합해보고 또 거기에 내가 보고 들은 것과 학술언어를 가져와서 심도를 가해보는 정도다. ‘남태령’만큼 ‘극우화’의 제반 측면에 대한 백서와 아카이빙이 필요한 듯하다.
2.
헌재가 있는 안국역 근처의 직장을 다니는 사람으로서, 출퇴근 때마다 헌재 앞에 모여 있는 극우 집회 시위자들의 다양한 난동과 패악질을 라이브로 보고 듣는다. MBC, JTBC 등의 언론에서도 이에 대해 보도하지만 라이브의 ‘바이브’는 사뭇 다르다.
이 집회는 토요일에 열리는 동원 군중의 극우 집회와 다른 또다른 ‘찐’이다. 대략 60대 이상의 장노년들이다. 무단 횡단, 쓰레기 배출, 가끔 방뇨...
그리고 광기 어린 몸짓과 (고성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에 매우 부족한) 괴성과 악다구니, 그리고 그것과 조응하는 “빨갱이는 죽여도 돼” “중국 공산당 OUT” “유혈 혁명” 운운하는 문자가 적힌 손팻말과, 헌재 재판관들을 인신공격하는 조야한 그림들, 그걸 걸치거나 쉼없이 외치고 흔들어대는 광기 어린 눈빛과 패션을 대하면 누구 말대로 ‘지옥’인가 싶다.(시각ㆍ청각 외에도 박찬일 요리사가 지적했던 바 후각도 있다. 이에 대해선‘혐오’의 소지가 있어서 생략...)
.
거기서 우선 우리의 모어와 감성이 가장 크게 학대당한다. 실로 인근 재동초등학교 학생들과 10대들의 정서가 걱정이 되고, 북촌 한옥마을을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괜히 미안해진다. (종로경찰서장과 서울경찰청장의 책임방기가 심각하다.)
저같은 광기 어린 열정과 폭력성, 후안무치는 흥미로운 현상이며 그 자체로 규명돼야 할 대상이다. 그들의 가진 문화적 요소(즉, 음모론, 역사상, 세계관 등)를 조합하고 거기다가 그들 극우의 핵심 부대가 ‘이 세상’ 규범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뭉친 자들이며, 뭔가 자기들이 이루거나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윤석열 정권)을 강탈당했다 억울해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더하면 좀 이해(?)가 된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전광훈 등이 쉼 없이 극단적 폭력, 즉 감옥 가는 일과 죽는 일을 선동한 결과겠다. 그들은 합리성ㆍ상식ㆍ규범 따위를 다 넘어 있다. 전광훈은 유튜브에서 말한다, '순교는 크리스쳔 인생 최고의 축복'이라고. 신도들이 외친다 '아멘'.
3.
탄핵이 선고되면 과연 어떻게 될까? 2017년 3월 박근혜 탄핵 선고날, 안국역 주변에서는 4명의 태극기부대 노인들이 죽었다. 그리고 지난 3개월 사이 두 명의 노인이 분신 자살했다. 이번 탄핵선고일에도 집단적 난동과 자해 정도는 쉬 예상할 수 있다.
나는, 극우들이 헌재나 국회의사당 점거나 침탈을 어떤 수준에서 시도할지, 보도되고 있는 것처럼 진짜 화염병이나 기타 공격 무기로 공권력에 도전할지, 누가 그것을 실행할지 궁금하다.
그것은 한국사회의 문명의 성격 그리고 우리가 보고 있는 극우화의 심도를 보여줄 것이다. 극우 개신교도들에 의한 ‘빨갱이 사냥’이 가능했던 시대와 지금은 무엇이 같고 다른가?
‘빨갱이는 죽여도 돼’는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실제 가능한 일이 되는가? 우리가 이야기하는 극우는, 택시 안에서 중년 여자 손님에게 중국 음모론을 입으로 이야기하는 그런 수준의 극우가 아니다.
우리가 목격하고 또 같이 앓고 있는 ‘극우화’는 총체적인 것이고 다층적이고 심각한 것이다. 그것은 깊은 뿌리를 가진 사회적 모순이자 독성 높은 병 같은 것이다. 이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방치하지 않고 ‘대안’을 마련하다면 이 상태를 병처럼 진단하고 환자에게 맞는 다각적인 맞춤 처방을 해야 한다. 단호함과 유연함이 같이 필요하겠다.
극악한 것과 순한 것을 분리하고 썩은 환부는 과감히 도려내는 수술과 보존적 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 당연히 환자의 전체적인 체력과 면역력을 배가해야 하고 주변 환경도 개선시켜야 한다.
(그런데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폭력과 ‘순교’를 선동한 전광훈도 기실 두 번 구속됐을 뿐이다. 그러나 한번은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을 기각해줬고, 한번은 집행유예를 받았다. 통진당 사건과 비교해보라.)
그래서 오래된 이 극우라는 암을 ‘관해’시켜야 한다. ‘민주주의의 민주화’가 필요하다. 자유주의적인 모호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가진 수단이 있는지?
정확하고 엄격한 법적 제재, 설득, 계도, 배제 등등 그 모든 것이다. 이것이 빨갱이가 죽지 않고 죽이지도 않는 '공존'의 실제 상황이자, 이는 극우와 트럼피즘이 장악해버린 미국과 유럽의 상황이 일러주는 교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