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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그리고 오늘의 증언을 듣는 일: 말들을 부러트리기 부러진 말의 조각을 줍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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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그리고 오늘의 증언을 듣는 일: 말들을 부러트리기 부러진 말의 조각을 줍기

alice11 2018. 4. 3. 10:10
http://jeju43peace.or.kr/bbs/link.php?bo_table=4_4_1_1&wr_id=1856&no=1&page=7

*기념일에도 기억하지 않으니 기념일이라고 또 다시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한국 전쟁 기억과 기념-민간인 학살-식민 경험과 역사적 파시즘

시기를 거스르며 고민하면서 과연 현재-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장 고민이었다. 아무리 연구를 하고 자료를 많이 보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도

'듣는자-현재'라는 나의 위치는 오히려 명백한 한계점으로 다가왔다.

오래 무엇이라 언어를 갖지 못했던 그 느낌은 4.3 증언 자료, 문서, 동영상, 자막과 번역을 동반한 자료들의 복잡한 언어들 속에서 더 확실하게 복잡해졌다.

자막이 없이는 들을 수 없는 말들, 그러나 자막은 그저 번역되고 말의 표면만을 전달하는 말일 뿐. 그러나 어쩌면 듣는자-현재의 자리에서는 저 기억과 경험의 말들을 그런 식으로밖에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낙차와 거리, 도저히 좁혀질 수 없는 간극을 어찌할 수 있을까.

기억과 경험, 해석의 문제를 언어-화할때 언제나 말들이 부러지는 이유다.

*기억과 기념의 관계를 연구하는 게 내 일이기도 해서, 기념관들을 자주 들어가보곤 했다. 요즘은 기념에 대한 다른 이념을 구성할 수 있는 이론을 공부하느라, 기존 기념관을 자주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4.3 기념관은 어떤 다른 기념관보다 이념과 철학을 고민한 곳이기도 한데, 90년대말에서 2000년대 만들어진 기념관들 중.

항상 궁금한 건, 자료, 특히 증언 아카이빙이 왜 일괄로 모아지지 않나 하는....지금도 4.3재단 홈페이지와 4.3 아카이브 홈페이지는 연동되지 않는다.

4.3 재단 증언 동영상 자료는 증언 구술 채록 자료 중 일부를 공개한 것. 구술 채록을 표준어로 수정해서 편찬하는 문제가 내부적으로도 이견과 갈등이 많았다고 하는 이야기를 이미 2000년대 심포지엄에서 들었는데. 동영상 일부를 아카이빙 해둔 것도 그 때문이라고도 들었다.

<여성 수난>이라는 분류가 따로 있어서, 항상 고민이다.

역사를 수난사-여성 수난사로 구축하는 데 적극적이었던 것은 국가주의적 역사 기술이어서

학살 경험과 기억, 기념 서사에서는 이런 수난사-여성 수난사를 반복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비판적 의견을 꽤 오래 제기했고,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여성수난이라는 개념이 국가주의 서사의 한 종류로 받아들여지고 수용된 지 꽤 오래 되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막상 실제 기념 작업에서는 이런 연구사적 비판이 작동하기 어려운 지점도 있다. 물론 기념 작업도 주로 연구자들이 주축이 되기는 하지만.

****사실 오늘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학술공동체 내 미투 운동의 전개과정에서, 또 하나의 공동체가 문을 닫았다.

여러 주체들이 모여 말과 고민, 책임을 나누는 자리를 준비하던 터라 더욱 고민이다.



문단 내 성폭력 고발 해시태그 운동 당시 페미라이터가 문을 닫을 때도 망연자실이랄까. 페미라이터를 닫지 말고 만나서 함께 좌담회던 무엇이던 해보자고 했으나, 닫힌 문을 열 수도, 말을 나눌 창구도 열리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이런 방식은 트위터 계정 폭파랑 하나도 다르지 않은 게 아닐까 싶었으나, 그래도 , 그러니까 말을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붙들려 있는게, 많은 이들에게는 그저 불편한 일이기도 하다는 걸 여러 기회에 느끼게도 되었다.

왜 이렇게 해야 할까. 나는 무엇을 이해하고 이해할 수 없는가, 어떤 생각의 맹점이 있는 것인지, 자문에 자문을 거듭했고

멀리서 sns의 말들 속에 답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sns에서는 점점 더 <고굽척>이라고 하는 기이한 매너와 담론들만 넘쳐났고 그런 몇번의 과정을 거쳐서 담론 실천에 대해 고민은 더 깊어졌다. sns에 이전처럼 자주 대화를 걸지 않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 제주 4.3 항쟁의 기억, 경험, 증언 서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지난 일을 기념일 의례가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들리지 않고, 겹겹의 지배적 서사 장치들 틈으로만 얼핏 보이는

그 말들을 겨우 듣기 위해

듣기라도 하기 위해

들어도 결국 도달할 수 없는
거기에

나란히는 못되어도
등뒤에서라도
구부정한 등에서
볼 수 없는 얼굴을
표정을
말을

읽고
듣고자 하는
불가능한 시도

그렇게 부러진 말의 조각을 줍는 일
틈없는 말들을 부러트리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