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성적자기결정권, 다양한 가족형태 인정, 성소수자(동성애) 등의 내용을 표준안에 포함할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다양한 의견이 대립하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어서 중장기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성적 자기 결정권, 다양한 가족 형태 인정, 성소수자(동성애)에 대해 "의견 대립이 있고" "사회적으로 합의한 필요한 사항"이라는 논평이다.
별게 아닌 것 같지만, 바로 이런 지점이 한국 사회에서 존재를 규정하는 파시즘적 인식의 근원이고, 구체적으로는 풍속 통제 이념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보여주는 지점이다.
1. 이 논평은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과 삶의 형태, 성적 정체성이 '주어진 것', '부정될 수 없는 기본 권리'가 아니고, '의견'과 '사회적 합의'의 대상이라고 규정한다.
1-1. 성적 지향, 성정체성 등 인간이 선택하는 게 아니라 타고난 속성인 것에 의해 차별될 수 없음은 '인권선언'에 담겨 있는, 인간의 기본권이다. 이 논평은 '속성에 따른 차별은 인권침해'라는 인권 선언에 담긴 기본권을 부정한다.
2.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과 삶의 형태, 성적 정체성을 '의견 대립'과 '사회적 합의'에 의해 결정되는 사항이라는 인식은 국가 기관에서 공식화된 태도로는 세계 어디서도 찾기 어려운 태도이다. 그 이유는 뒤의 법에 대한 논의에서 밝힌다. 흥미로운 건 이 집단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법과 규정'의 문제라고 생각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정부 관계자의 '망언'이 유달리 많은 건 파시즘 유산과 관련된다. 일본에서는 이런 망언도 혐오발화 범주에 포함되었다. 이런 점에서 교육부의 논평은 '망언'이다.)
2-1. 학교 성교육은 학생 인권 조례와 마찬가지로 학생의 교화와 보도(일본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다)/생활 지도의 규정과 이념에 따른다.
2-2. 학생 생활 지도의 규정은 일제 시기에 만들어진 '학생보도', 즉 학생 풍기단속에서 비롯되었고, 이는 풍속 통제의 이념을 근간으로 한다.
2-3. 풍속 통제의 이념은 '선량한 풍속을 침해하는 행위를 통제한다'는 기본 이념과 이의 자의적 무한 적용을 원리로 한다. 이 규정을 바탕으로 특정한 행위, 정체성, 지향, 태도, 취미, 생활 방식, 삶의 방식 등을 법적으로 통제하고 하위 제도 단위에서는 규정으로 단속, 규율, 지도했다.
2-4. '선량한 풍속'이 무엇이냐? 그것은 당시의 '사회통념'에 의해 결정된다.
'선량한 풍속을 침해하는 행위란 무엇이냐? 그것은 '사회통념'에 의해 결정된다.
풍속 통제가 파시즘인 한 이유다. 사회통념, 즉 당시의 '사회적 합의'에 의해 누구던 인권, 시민권, 주권을 박탈당할 수 있다.
2-5. 30년대말, 떠돌이 노동자는 풍속 통제의 주요 대상이 되었는데, 떠돌아다닌다는 삶의 방식 자체가 풍속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학생들의 하이킹과 교외 나들이가 통제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해방 후 미군정이 만든 심야통행금지도 이의 연장이다.
여기서 떠돌아다닌다는 삶의 형태는 '당시 사회 통념상 부적절한 것'이기에 통제되었는데. 떠돌아다니는 것은 통제가 어렵고, 주소지 관리와 단속이 어려우며, 노동자의 경우, 노동 재생산(이런 단속 지침도 있다. 떠돌이 노동자의 경우 일터에서 일을 가르쳐놓으면 그만두거나 해서 생산성이 떨어진다. 당시는 계절제 노동자라고도 불렀다. )
2-6. 가족 형태가 의견 대립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라는 위의 논평은 위에 보았듯, 풍속 통제가 오랜동안 '삶의 형태에 대한 결정과 선택'을 기본권도 자유도 아닌, 사회적 합의와 의견대립에 때라 법적으로 통제하고, 선택권을 박탈할 수 있는 사안으로 본 역사적 과정을 반복한다.
3. 즉 이렇게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과 삶의 형태, 성적 정체성이 '주어진 것', '부정될 수 없는 기본 권리'가 아니고, '의견'과 '사회적 합의'의 대상이라고 규정하는 방식은 일제 시기 만들어진 풍속 통제의 이념을 정확하게 그 근간으로 한다.
3-1. 이 풍속 통제의 이념은 독일의 파시즘 법을 토대로했고, 일본에서 만들어진 파시즘 법을 그대로 적용했고, 패전후 독일과 일본에서는 대표적 파시즘 법제로 간주되어 폐기되었으나 한국에서는 원형 그대로 존재한다.
3-2. 이 논평은 전형적이다.
히틀러는 아리아인이나, 유태인 등 인종적 특성이 주어진 것, 타고난 것이 아니라, "의견 대립이 있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대상"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아리아인은 위대한 인종, 보존되어야 할 인종이 되었고, 유태인은 독일을 위협하는 오염의 원천인 인종이 되었다.
유태인종이, 자연스럽게 죽지 않고, 불태워지고, 가스실에서 처분되는 것이 '최종해결'로 간주된 것은 그야말로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과 삶의 형태, 성적 정체성"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의견 대립이 있는 문제로 보는 것이 어떤 귀결점에 이르는지를 잘 보여준다.
3-3. 성적 정체성이 속성이 아니라 의견 대립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대상으로 간주되고
삶의 형태(다양한 가족형태)가 기본권이나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법적 통제와 박탈의 대상이 되고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의견 대립과 사회적 합의에 따라 법적 통제와 박탈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면, 언제든, 그 신체를 또다시 노예화하고, 수용소에 감금하고, 가스실에서 불태울 수 있다는 뜻이다.
교육부의 논평은 바로 그런 뜻이다. 이건 단지 '성소수자'라는 예외적 대상에 대한 논평이 아니다. 바로 성소수자를 의견대립과 사회적 합의에 의해 존재 자체가 인정되거나 부인될 수 있는 예외적 대상으로 만드는 그 논리에 의해, 당신과 우리들, 모두는 언제나 그 존재 자체가 의견 대립과 사회적 합의에 의해 처분될 '예외적 존재'의 자리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