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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wonderland
<생명은 어떻게 시간이 되는가> 본문
1. 결국 "주 당 최대 69시간 합법화"가 예고되었다. 11시간 연속 근무 후 휴가권 등의 요구는 "근로시간 저축제도"라는 제도로 귀착되었다.
노동 문제에 문외한이지만, 이 사안이 "노동자의 안전권과 생명권"의 핵심이라는 것을 모를 수는 없다.
OECD 국가가 제도화한 기본적인 노동 시간 제한이나 노동자 안전권과 생명권조차 법과 제도로 보장하지 않는 이런 흐름을 그저 "신자유주의"나 "유연화"의 일반적 귀결이라 하기 어렵다.
2.
노동, 젠더, 인종 등 한국 사회의 차별적 정책과 제도의 특징을 "신자유주의"로 규정하는 것에 항상 어떤 아쉬움을 느낀다. 물론 이런 연구도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이른바 신자유주의 유연화로 규정되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이 어떤 역사적 특질을 반복하고 또 갱신하는가는 충분하게 논의되지 못한다.
"노동자의 안전권과 생명권" 나아가 '거주자들의 안전권과 생명권'에 대한 논의는 단지 신자유주의 유연화의 문제만은 아니다.
3. 이번 젠더어펙트 연구회 세미나 도서는 <<해피크라시>>, 물론 행복의 정동 정치에 관해서는 이미 사라 아메드의 <<행복의 약속>>이라는 넘을 수 없는 연구 결과가 있다. 사라 아메드는 행복의 정동 정치를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차별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식민주의의 현재와 '미래'라는 맥락에서 규명하고 있다.
<<해피크라시>>는 소박한 논의이고 특히 신자유주의 통치성과 정동 정치에 대해서는 새로울 게 없다. 이 책을 발제 하면서 주목한 지점은 따로 있었다. 이 책에서 "유연화된 자본주의 체제"는 "전후 자본주의 체제"와의 연속과 단절이라는 측면에서 규정된다.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연속, 개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연속은 이런 연구의 기본 전제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더 구체적인 연구 주제가 이어지고 있는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이런 전제에서 이 책에서는 '단절'의 측면도 강조한다. 그 단절의 가장 큰 특징은 "전후 자본주의 체제"의 주요한 특징인 "노동자의 안전권"과 이를 기초로 한 "노동자 개인의 행복"을 노동자 주체성의 핵심으로 삼는 "노동 관리"와 "인사 관리" 정책과 이를 지탱하던 지식 패러다임을 '뒤집어버린' 점이다.
4. 한국의 신자유주의 정동 정치와 '행복'을 규명하면서 <해피크라시>의 방법론을 도입하려면, 이런 유연화의 역사의 한국적 형식에 대한 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역사적 차이에 대한 규명이 없다보니, 그저 신자유주의 유연화와 통치성에 대한 동어반복이 한국사회 분석을 채워버린다.
5. 한국의 신자유주의 이전의 자본주의는 그런 점에서 미국과 유럽의 '전후 자본주의 체제'와 공통 특성을 지니고 있나?
안전권과 노동자의 행복, 노무 관리와 기업의 이념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춰봐도 그 어디서도 한국과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한국의 노동 유연화는 역사적으로 어떤 시간대를 살고 있나?
6. 이른바 전후 자본주의 체제 그 이전의 자본주의는 제국주의와 강제노역의 시대였다. 제국주의의 강제노역은 파시즘을 통한 신체소멸의 정치로 이어진다.
2023년 한국의 노동 정책은 이러한 강제 노역 시대의 패러다임에서 과연 어느 정도 시간을 이행했나?
7.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에 대한 정부안 발표와 이에 대한 논의에서 "전후 민주주의 국가 일본을 인정한 것"이라거나, 오늘 담화에서 "일본은 제국주의 침략국가가 아니라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이다." 등의 논의가 흥미로웠다.
강제동원 문제는 관련한 법정 싸움을 오래 해오신 분들이 계시고 관련 논점은 또 다른 중요한 결이 있다. 이런 주요 논점에 대해 뭔가 새로운 대안이나 관점을 제안하려고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당연하지만. 그럴만큼 연구와 실천을 해오지 않았다.
역사적 파시즘과 젠더정치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해오던 연구와 실천의 맥락에서 그저 간략한 노트에 불과하다.
8. 전후 민주주의 국가 일본이나 보편적 가치라는 게 '외교적 어휘'로 작동할 수 있다. 위안부 문제도 강제동원 문제도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역사 문제이니 외교적 해결은 안된다거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문제는 외교적 해결의 근간이 되는 인식이겠다.
또 역사적 문제라는 것은 단지 '청산 될 과거'의 문제가 아니다.
강제노역이라고 하는 역사적 시간성은 지구상의 어떤 다른 나라들에서는 '과거'로 '청산'되었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하고 강고한 현재이다. 나아가 '미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어 도착한다.
9. 강제동원의 시대는 끝났나?
파시즘 연구자들에게는 참으로 오래된 연구사를 떠올리는 문제가 이른바 '전후 일본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이기도 하다.
전전과 전후를 단절적으로 사고하는 패러다임이 현재의 파시즘 정치를 정당화하고 과거를 역사가 아닌 단절하고 청산할 하나의 시간 단위로 재구성했다.
이른바 전후 민주주의 일본이 가혹한 노동 관리 사회였고, 그 귀결점이 '과로자살 사회'였다는 건 새롭지 않다.
10. 일본군 위안부 동원과 관련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증오정치의 시간들. 이건 여성문제여야 한다, 아니 역사 문제다, 아니 국뽕이 문제여, 아니 시민단체가 문제여, 너도나도 위안부 문제 전문가가 되어 증오정치의 열기가 가속되었던 그 시간들, 결국 나는 손을 놓았다.
결의도 선택도 아닌, 어쩔 수 없는 혹은 자기방어였을지 모르겠다.
또다른 증오의 난장판에 어떤 말도 보탤 필요를 느끼지는 않지만.
아마도 손을 놓은 마음의 파동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이다.
11. 가혹한 살인적 장기 노동 시간을 합법화하면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근로시간 저축'제도라는게 그런 점에서 참으로 전형적이지만 연구거리이기도 하다.
강제 노역의 시간은 어떻게 저축되는가? 혹은 저축될 수 있는가?
그러니까 생명은 저축이 되는가?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그런 발명을 가능하게 하는가?
생명을 시간으로 환원하여 저축할 수 있다는 발상은
생명권과 안전권에 대한 요구(강제동원에서 노동 안전궈까지)를 시간 단위로 분할해서, 과거에 할당하고, 미래를 위해 청산/화해/치유할 수 있다는 방식과
전혀 분리되지 않는 연속적인 생명정치 혹은 죽음의 정치이다.
생명을 시간으로 분리해서 할당하고 조정하는 생명정치와 정동 정치는 그렇게 삶을 과거로 혹은 미래도 도착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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