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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치즈코, 페미니즘 처세술과 이론의 경계

alice11 2017. 1. 29. 13:04

한국에 최근 페미니즘 관련해서 우에노 치즈코 책이 출판 붐이다. 


우에노 치즈코의 책이 지닌 의미가 없지 않지만,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일상적인 정치 투쟁에 대한 논의가 일종의 '페미니즘 처세술'로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일본에서는 페미니즘은 분류에서 사라지고 '처세/자기계발' 항목으로 흡수되었다. 


물론 이러한 연구는 없지만, 이것은 내가 일본에 자료조사를 다니며 십여년의 변천 과정을 직접 조사한 결과이기도 하다.


준쿠도와 기노쿠니야 등 대형 서점에 90년대말에는 페미니즘으로 분류된 영역이 처세와 자기계발로 통합되었다. 여기에는 여러 현상이 복합되었지만, 좀 고민해야 한다. 


여성혐오에 대해서도 주로 우에노치즈코 논의가 소개되는 것에 대해 비판을 하고 싶었으나, 시점이 시점인지라, 위안부 담론과 관련한 입장으로 매도해버릴 게 뻔해서 말을 오히려 삼가게 되었다. 


**일상에서 대면하는 여러 일들에 대항하는 매뉴얼을 필요로 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것과 페미니즘이 처세술의 대응물이 되는 것은 또 다른 점이다. 그러나 이 둘 사이의 경계는 나누기 참으로 어렵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데모가 역사적으로 드물게 활성화된 요몇년 '데모하는 법' 같은 책이 많이 나오고, '혐오발화에 대처하는 법' 등 일상적 지침서가 일반화된 일본의 출판 문화와 한국의 차이 또한 생각해볼 문제다. 


또 일본의 경우, 인문학이 위축된 것은 한국과 마찬가지이지만, 독서시장의 규모나 지속성은 한국과는 좀 다르다고도 생각된다. 


즉 데모, 혐오발화, 여성혐오 등 매우 정치적이고 당대적인 이슈에 대해서도 일상적 지침서와 학문적 심화 연구서가 동시에 진행되는 풍토가 좀 다른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위안부 연구도 일본은 전문 연구가 심화된 동시에 일상적 지침서 Q&A 시리즈도 지속적으로 발간된다. 근데 이것은 소수의 연구자가, 지속적인 네트워크를 토대로 오랜 세월 함께 작업을 해온 결과이기도 하다.


혐오발화도 마찬가지다. 헌신적인 당사자 조직과 연구자와 네트워크의 존재가 이를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현재 페미니즘 붐을 주도하는 것은 이런 당사자 조직이나, 연구 네트워크가 아니라, 출판 시장이다. 이게 무너졌다고도 하지만, 이 위태로운 출판 시장의 지반과 지속적인 연구 네트워크의 부재가 결합해서


임시 가설물 같은 페미니즘 출판이 붐을 이루게 된다. 우에노 치즈코 책은 독서 시장에서도 반응이 좋은 모양이다. 그러다보니 치즈코의 페미니즘 처세나 이런 에세이와 유사한 형태의 저술을 한국 저자에게 의뢰하는 책도 증가하는 경향이다. 


어떤 출판 관계자는 한국에는 페미니즘 이슈를 감당할 필자가 별로 없다고 하던데, 과연 그런가? 한편으로는 페미니즘, 젠더연구자들이 학계에서 다 말살된 그간의 역사를 보면 맞는 말이지만, 동시에 기존의 젠더 연구자들과 페미니즘 연구자들의 전문적 연구나 저술은 출판 시장의 입맛에 맞지 않아, 사장된 경우도 많다. 



물론 이것은 페미니즘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전문 연구서를 기피하는 풍토 말이다. 페미니즘 목록을 아카이브한 아름드리 위키 항목엔 조한 선생 이름도 없다. 이 목록의 이데올로기는 연구대상인데, 또하나의 문화는 출판사로만 나오고 조한혜정 선생 책은 단 한권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우에노 치즈코를 비롯한 일본 책과 미국 및 영어권 책, 그리고 이를 번역 출판하는 특정 그룹의 책이 중심이 되어 있다. 



슬픈 지적 식민지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