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계절이면 창고에서 (모형 기차의)기관차를 만든다. 종종 기관차를 타고 내 정원을 돌아본다. 숲 속을 지나갈 때면 행복을 느낀다. 그저 그 뿐이다.” 일본에 그렇게나 많다는 철덕(鐵德ㆍ기차 마니아) 중 하나다. 원래는 공학박사로 국립나고야대 조교수였는데 서른 후반쯤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집필동기에 ‘문학적 야심’ 따윈 단 0.1%도 없다. 행복한 ‘철덕질’을 하려니 조교수 수입만으론 부족해서다. 강렬한 인정욕구, 그로 인한 애정결핍이 없으면 자유를 얻는다.
‘작가의 수지’는 그 결과물이다. 저자 모리 히로시는 이공계 출신답게 수학적 트릭 같은걸 작품 속에 잘 녹여넣어 ‘이공계 미스터리’ 작가라 불린다. ‘철덕질’을 위해 소설가가 됐고 그게 아니라면 소설 같은 건 안 쓰고 싶다고 하는 사람이니 “소설은 거의 읽지 않는다” “그나마 읽는 것도 번역본” “소설 이외의 책, 가령 논픽션이라면 거의 다 읽는다”고 당당히 밝힌다. 좀 고상한 말로 ‘문단의 동종교배’에서 자유롭다, 라고 ‘우리 식 해석’을 가져다 붙이면서 ‘너희들도 분위기는 비슷한가 보네’라며 읽을 곳은 이외에도 여럿이다.
자유로운 히로시는 그래서, 이 책에서 1996년 데뷔 이후 20여 년간에 걸친 자신의 수지를, 그러니까 지출과 수입 내역을 상세히 설명한다. “시간당 최대 6,000자를 키보드로 두드릴 수 있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신문연재, 장편소설 등의 경우 시간당 수입이 얼마인지 계산했다. 10% 안팎에서 결정되는 인세, 그림책ㆍ만화ㆍ드라마 제작 등 2차 저작물에 따른 수익 구조도 설명해뒀다. 이 수익에는 ‘모든 것이 F가 된다’를 비롯, 대표작 10권이 한스미디어를 통해 지난 연말 한국에 소개된 것도 포함되리라.
그래서 1996년 데뷔 이후 책으로만 번 돈은 15억엔이다. 우리 돈으로 단순 환산하면 153억원 정도. 강연료 등 부가수입까지 합치면 200억원대. 그러니 연봉 10억원이다. 헉! 놀랄 필요는 없다. 허물어졌다 하나 아직 일본 독서시장은 탄탄하다. TVㆍ영화 등 2차 판권 시장도 엄청나게 발달해있다. 동시에 히로시의 작업은 ‘깊은 문학적 감수성과 비의적 수사로 열린 결말을 지향’하는 게 아니라 “머릿 속 영상을 글로 옮기는”, 그래서 다시 영상으로 만들기에도 좋은 쪽이다.
일본에서도 이 책이 나왔을 때 작가들 사이에서 논란이 됐었다는 이유를 알만하다. 또 논란이 뻔히 보이는데도, 히로시가 책 서두에서 이 책은 ‘자랑’이 아니라 ‘보고’일 뿐이라 거듭 강조하면서 써낸 이유도 짐작할 만하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히로시의 결론은 이거다. “소설가라는 직업은 유망하다고는 말하지 못해도 의외로 장래성이 있는 분야다. 이는 오로지 인건비가 들지 않아 불황에 강하다는 점, 자본과 설비가 필요 없다는 점, 그리고 비교적 단시간에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등의 유리한 조건 때문이다.” 요즘 말로 ‘웃프다’. 물론 한마디 더 붙여뒀다. “하지만 그 유리한 조건 때문에 지망자도 많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이거다. “자신의 감을 믿을 것. 늘 자유로울 것.” 글쟁이들이여,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