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뺴앗긴 날들의 기억-가와사키 도라지회의 기억: 안해룡, 박정남 감독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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뺴앗긴 날들의 기억-가와사키 도라지회의 기억: 안해룡, 박정남 감독

alice11 2016. 8. 1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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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KBS는 '광복절 특집' 다큐로 안해룡, 박정남 감독의 <빼앗긴 날들의 기억-가와사키 도라지회의 기록>를 제작 방영했고, MBC는 오구마 에이지와 김효순의 작업을 토대로 <아버지와 나>를 방영했다. 


위에는 트레일러. 본방 못보신 분들은 곧 기회되는 데로 보시면 좋겠네요^^








먼저 다큐멘터리 <아버지와 나: 시베리아 1945년>은 시베리아에 억류되었다가 종전 후 귀국한 일본인의 삶을 아버지의 인생을 매개로 기록한 오구마 에이지의 <<아버지와 나>>가 모티프가 되었지만, 이 연장에서 시베리아에 억류되었다 돌아온 조선인들의 삶을 살펴보고 있다. 

김효순의 <<조국이 버린 사람들>>이 전체의 기조를 이룬다. 


"일본에서도, 소련에서도, 한국에서도 모두 버려진 사람들, 그리고 버려진 사람들만의 동료 의식"


두 다큐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논의를 할 기회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자이니치'가 이번 이른바 한국의 '광복 기념' 특집극의 한축에 자리 잡게 된 것에는 이와 관련해서 오랜 세월 연구와 활동을 통해 자이니치의 역사, 현실을 기록하고 전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니, 비록 '광복절 기념'이라는, 옛날 '공영방송'에서 만든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나 판단은 다양할 수 있겠으나, 현장에서 오래 기록하고 연구하고 실천해온 사람들의 역사를 새삼 소중하게 여기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그저 기념용으로 소모하는 게 아니라. 


<빼앗긴 날들의 기억:가와사키 도라지회의 기록>에 대한 메모.


***안해룡,  박정남 감독의 <가와사키 도라지회>는 자이니치 공동체를 이끌어온 주체로서 여성 1세대를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여성 노동, 연대, 공동체 꾸리기의 역사가 반 헤이트 스피치 운동으로 이어지는 궤적을 살펴볼 수 있다. 분량이 너무 짧아서 전달할 수 있는 내용이 너무 압축적인 게 아쉽다. 



*가와사키, 도라지회를 주축으로 한 자이니치 여성 1세대의 삶을 조세이 탄광의 형성과 전시동원 체제, 조선인 강제 동원과 여성 노동의 교차점 속에서 그려낸 점에 초점을 두고 보았다. 

여기서 그려지는 여성 노동의 주요 형태가 두 가지인데, 강제 동원된 남성 노동을 대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투여된 여성 노동의 경우(탄광 노동자인 남편을 대신하거나 보조하는 형태로 투입되는 경우), 그리고 이 연장에서 '육체 노동'과 막노동에 여성 노동이 투입될 수밖에 없던 상황들. 

김방자 할머니의 경우.


두번째로는 현재 '야키니쿠'로 상징되는 자이니치 경제 활동의 원천으로 여성 노동과 자이니치 운동의 역사적 결합 형태가 흥미롭게 드러난다. 

김도례 할머니의 경우.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고 하지만, 자이니치의 경제 활동 자체가 제한되고 규제된 상황에서 이케가미 촌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암시장 경제' 즉 '야매' 장사 뿐. 


70년대 철강을 중심으로 한 군수 산업 단지가 된 이케가미에 대규모 노동자가 필요했고, 전국에서 모집된 노동자를 위한 대규모 숙소가 사쿠라모토초에 건설됨. 여기에 자이니치 노동자들이 대거 모여 살게 된 연원이 있다. (오사카의 가마가사키와 유사하다.)해서 이른바 전시 동원 체제 시기부터 이케가미에 살고 있는 재일조선인은 소수이고, 대부분인 1세대 여성들이다. 


최소한의 식량도 없는 생활에서 김도례 할머니는 야매로 쌀을 팔거나 막걸리를 담아 가와사키 술집에 내다파는 일로 생계를 꾸렸고, 이후 도축장에서 버리는 내장을 싸게 사다가 손질해 파는 야키니쿠집을 시작했다. 야키니쿠는 그 당시 노동자들의 '타치' 즉 선술집의 주요 메뉴이기도 했다. 현재 김도례 할머니는 <사쿠라엔>이라는 야키니쿠 집을 하고 있다.


**일본의 혐한 세력은 자이니치에게 '야키니쿠집 하면서 돈도 많이 벌면서 차별받는 것처럼 징징댄다'고 한다. 반대로 한국에서 자이니치는 '민족 수난사'의 슬픈 주체로 소환되거나, 간첩단 사건처럼 종북 몰이의 도구로 사용되거나, 아니면, 성공한 민족자본가로 호출된다. 이런 식의 유형화된 재현과 전유를 넘어서 자이니치의 삶과 역사에 다가가는 일은 사실 요원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이니치의 삶과 역사, 정치적 주체화를 연구하고 기록하는 작업에 오래 헌신해온 이들이 있어, 길이 또 그리 멀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세이큐사의 사무국장 미우라 도모히코의 말.


"굉장히 힘든 차별의 역사를 증언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 삶 속에서 가장 앞에 선 사람들은 여성들이었습니다."


김방자 할머니의 말


"내가 이 나이에 이래 뵈도 전과가 많아(웃음). 아이 업고 돼지 우리에 갇히기도 했다니까."


고된 막노동을 하고 집에 돌아와 김치 한 조각도 없이 밥을 먹어야 했던 때


"모두 저녁은 어떻게 먹고 있을까?"

혼자 생각하며 한국 음식을 만들어 장사를 시작했다. 지금도 음식을 나누는 일로 세이큐샤 활동가들과 함께 한다. 


탄광에서 일했던 김방자 할머니는 1942년 조세이 탄광 사고에 대해 기억하고 있다. 2010년 큐슈 탄광 노동자 무덤을 방문하고 이름조차 없이 내버려진 무연고 탄광 노동자의 무덤을 보고 분노했다고 한다. 야마구치에는 조세이 탄광 사고 위령비가 세워졌다. 


김도례 할머니의 말.


"염생이가 물똥싸는 거 봤능교?"

(나는 노래를 못한다^^)

"나이가 많아도 고생자랑은 끝도 없다"

할머니가 야키니쿠 일을 시작할 때 남편은 내장을 모두 손질하고 자르고 하는 노동 강도의 어마어마함에 기필코 말리려 했다고 한다. 그는

"야키니쿠는 여자를 병들게 하는 일"이라고 반대했다고 한다. 


1세대 자이니치 여성들의 말과 삶을 기록하는 세이큐샤의 공동 학습자분들, 일본인 학자들, 그들의 오랜 세월에 걸친 실천과 함께 함의 역사도 소중하게 기록된 다큐이다. 


무엇보다 오랜 세월 이 작업을 해온 안해룡 감독, 박정남 감독의 수고가 빛난다. 



*****

교토에 있으면서 헤이트 스피치 연구를 하려면 자이니치의 삶과 저항의 역사, 그리고 반헤이트 스피치 운동과 자이니치의 정치화에 대해 연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분야에 대해 거의 연구를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 감히 뛰어들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공부에 매진했다. 히가시쿠조 마당에 참가한 1년은 그런 공부하는 자세를 가다듬어주었다. 


나도 예외는 아니겠지만, 한국 학자들이 자이니치에 대해 보여주는 태도는 '민족주의' 운운의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잘난 척을 하거나, "나도 당신들과 같아요"라며 서발턴 경쟁을 하면서, 자기도 같은 서발턴으로 인정해주기를 강요하고, 안되면 좌절하고, 좌절한 후 배신하고 자이니치의 배타성과 '민족주의'를 비난하는 식의 거의 유사한 경로를 밟아가는 것 같았다. 아니 나름 '민족주의 비판'에 몰두한다는 사람들이 그런 경로를 밟아간다. 이와 관련해서는 십 년 전의 어떤 현장이 거듭 소환되기도 한다. 


이런 반복과 전형을 벗어나기 위해서도, 잘난 척이나 탈민족주의 장광설을 늘어놓는 일은 이제 그만할 필요가 있다. 자이니치의 저항의 역사를 '민족주의'로 소급하고 전유하려는 것은 오히려 한국인의 욕망이다. 존재하지 않는 이름으로(자이니치) 자신의 삶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투쟁하는 것은 모든 소수자의 운명이다. 그것을 낯익은 '민족'의 이름으로 전유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한갓된 다수자의 투정일 뿐이다. 





아래는 <아버지와 나-시베리아 1945년>에 대한 기사.

http://enews.imbc.com/News/RetrieveNewsInfo/188845?XAREA=pcmain_intv




MBC 광복절 특집 다큐멘터리 <아버지와 나 - 시베리아, 1945년> 한국인 생존자들의 증언이 전해진다

기사입력 : 2016-08-12 14:29


                    MBC 광복절 특집 다큐멘터리 <아버지와 나 - 시베리아, 1945년> 한국인 생존자들의 증언이 전해진다 이미지-1

누군가에게는 생소할 ‘시베리아 억류자’들의 이야기가 MBC 광복절 특집 다큐멘터리 <아버지와 나 - 시베리아, 1945년>을 통해 전해진다. 

시베리아 억류 피해 할아버지들 50여명이 모여 1991년 겨울, ‘북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라는 뜻의 ‘삭풍회’를 조직했다. 청년 때 끌려가 어느새 백발이 되어 버린 할아버지들의 40여 년만의 재회였다. 삭풍회는 끈질긴 노력 끝에 2003년 도쿄지법에 미불임금 3억 엔 지급을 요구하는 소장제출을 시작으로 일본정부를 향한 보상청구를 시작했지만, 1965년 한일협정으로 청구권이 말소됐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한편, 일본인 오구마 겐지(小熊謙二)씨 역시 1944년 강제 징병된 이후 관동군을 거쳐 시베리아에 억류된 포로다. 그의 삶 역시 한국의 억류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구마 겐지는 싸움을 시작했고 그의 아들 오구마 에이지(小熊英二). 게이오대 교수는 그 싸움을 기록했다. 아들 오구마 에이지는 시베리아 포로였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 세상에 알렸고 ‘살아서 돌아온 남자’(한국어판 : ‘일본 양심의 탄생’)는 권위 있는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 상’을 수상했다. 그는 지난 봄, 자신처럼 시베리아 포로였던 아버지의 삶을 기억하고 세상에 알리려는 한국인 문용식을 알게 되었다. 
오구마 에이지와 문용식은 국적이 다르고 사는 방식도 다르지만 같은 경험을 한 아버지를 두고 있고 각자의 방식으로 아버지의 참혹했던 기억들이 잊히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시베리아 억류로부터 71년이 흘렀다. 포로 한 사람 한 사람의 한이 서린 이 아픈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될 숙제로 건네받았다. MBC 광복절 특집 다큐멘터리 <아버지와 나 시베리아, 1945년>에서 억류 피해 생존 할아버지들의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되짚어 보고, 그 한의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그 아들들을 만나본다. 

아버지 세대의 아픔과 두 아들에 이어진 특별한 만남이 시베리아 억류자 문제 해결의 시작과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이제 열 명도 채 남지 않은 시베리아 억류 피해 한국인 생존자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MBC 광복절 특집 다큐멘터리 <아버지와 나 - 시베리아, 1945년>은 오는 15일(월) 오전 11시 50분에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