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작은 가게에서 어른이 되는 중입니다
-조금 일찍 세상에 나와 일하며 성장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
박진숙 지음/사계절·1만3000원최근 오토바이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17살 청소년이 교통사고로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벌어졌다.(
<한겨레> 2017년 12월19일치 1면 참조) 지난해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 등 이러한 ‘청소년 노동 잔혹극’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그 속엔 “청(소)년들에게 학교는 배움의 장소가 아니고, 일터는 이들을 다루기 쉬운 값싼 노동력으로만 보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이 있다. 가정형편 때문이든 본인의 선택에 의해서든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청(소)년들이 걸어야 하는 길은 더욱 잔혹하다. 이들이 좋은 일터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끝내 저임금의 ‘돈벌이’에만 머물러야 하는 이 현실을 도대체 어찌해야 하는가.
<우리는 작은 가게에서 어른이 되는 중입니다>는 ‘소풍 가는 고양이’라는 이름으로,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는 작은 사회적 기업(법인 이름은 ‘연금술사’)의 이야기다.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에 자리잡은 이곳은 “‘비대졸’ 청(소)년들이 학교가 아닌 음식 장사를 하는 일터에서 어른으로 자라는 곳”을 표방하며, 2011년 5월 만들어져 8년째 꾸준히 영업을 하고 있다. 애초 비대졸 청(소)년들의 자립을 돕는 프로젝트를 주도하던 지은이 박진숙씨가, 함께 뜻을 모은 청(소)년들과 아예 ‘창업’이란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청(소)년들과 어른이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함께 일하는 사회적 기업 ‘소풍 가는 고양이’의 실험은 우리가 어떤 일터를 만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여러 고민과 시사점을 던져준다. 사계절 제공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미래에 대한 준비’(교육)를 말하지만,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일상’(노동)이었다. 자신의 생계를 스스로 유지할 수 있는, ‘돈벌이’로서의 ‘진짜 일’ 말이다. 그러나 세상은 인턴십 같은 ‘가짜 일’만 제공하며, 이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뽑아먹는다. ‘소풍 가는 고양이’의 실험은 이런 격차를 스스로 극복해보자는 것이다. ‘청(소)년 주식 소유제’를 도입해 청(소)년들이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하고, ‘배움이 있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갖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하나씩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나갔다.
‘소풍 가는 고양이’로부터 어떤 ‘성공담’을 기대해선 안 된다. 이들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은 끝없는 물음과 실천 그 자체일 것이다. 애초 ‘창업’이라는 실험을 해보겠다는 결심 자체가 “우리는 지금 노동을 하는 건가요, 아니면 교육을 받는 건가요?”라는 물음으로부터 나온 실천이었다. 이들이 부딪히는 물음들은 얼핏 사소해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너무도 근본적이고 깊기 때문에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배움이 먼저인가, 일이 먼저인가? 회사의 수익과 좋은 일자리를 동시에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서, 임금과 노동 시간은 어느 정도가 적절한가? 일자리의 질을 유지하느라 일자리의 수를 늘리지 않는 것이 적절한 선택일까? 모든 구성원들이 단일한 임금을 받아야 할까? 그게 아니라면 그 구별의 근거는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 청(소)년과 어른 구성원들이 ‘생산성의 우월한 지위 다툼’ 때문에 갈라지는 현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지금은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인 ‘생활임금 제도’를 기본으로 삼아 최저임금의 120~155%까지 다양한 폭으로 적용하고, 한 사람이 하루에 도시락을 몇 개 만드는지와 같은 생산력 중심의 능력 하나만을 잣대로 삼지 않는다”고 한다. “일이란 삶의 질을 높이는 수단이기 때문에” 일자리의 수보다는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것을 우선 과제로 삼는다고도 한다. 물론 ‘소풍 가는 고양이’가 내놓은 이런 답들이 결코 ‘정답’일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물음과 고민 그 자체일 터. “우리 회사는 청(소)년과 어른이 어떤 환경에서 오랫동안 함께 일하며 성장하는지, 그리고 회사는 구성원들의 성장과 어떻게 맞물려 유지되고 발전하는지, 어떤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지, 그 비밀을 밝히는 데 훨씬 열심이다.”
‘생산력’을 으뜸에 놓는 비정한 경제체제 속에서, ‘소풍 가는 고양이’ 역시 생존의 위협을 견뎌야 하는 처지를 벗어날 수 없다. 다만 지은이는 ‘생산력’만큼이나 ‘협력’ 자체도 중요한 가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고 말한다. ‘작은 가게’의 새싹 같은 실험이지만, 그 가능성을 함께 응원하고 싶어진다. “‘서로 의존하며 먹고살기를 해결하는 일터’라는 판타지가 스릴러로 끝나지 않고 해피엔드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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