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alicewonderland

다시 삶의 반경에 대해 본문

맞섬의 geography

다시 삶의 반경에 대해

alice11 2017. 2. 25. 13:01

아침 10시 부산역 출발, 부산역-서울역, 서울역-용산, 용산-춘천에 3시 13분 도착


1시간여의 발표 토론


다시 춘천에서 용산.....


무거운 가방 때문에 팔목 어깨가 빠질 지경이라 요즘 거의 짐을 갖고 다니지 않는데


너무 먼 거리라, 차안에서 읽을 책을 가방에 챙겼다. 무겁다.


요즘 나의 부대낌의 요체는


그러니까 어쩌면, 이 먼길의 여정에 가방에 무엇을 넣고, 또 얼마큼 넣어야 여정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학회라는 것에 반감을 갖고 거의 관여해오지 않은 사람이 '유일한 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한국여성문학학회 일을 맡게 되서....4년을 거절한 일이라 더 거절도 할 수가 없어 맡게 되었지만


휴.....예상보다, 어렵다. 매일 그만뒀어야 한다 후회중. 일을 시작한 이상 후회를 하지 않는 타입인데. 이번은 후회막급이다.


예상했지만, 결국 지방에서, 아무리 정규직이라도 모든게 서울에 몰려있는 지식 제도에 관여한다는 게 너무나 무리가 많다. 이건 단지 지방이라는 자리 문제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이런 사례.


1. 


@작년 가을, 여성문학학회를 부산 동아대에서 개최했다. 나는 서울서 하시는게 좋겠다고 했지만, 학회 측에서는 신임 회장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적은 인원, 학회와 소통의 어려움 등으로 학회 꾸리는 데 너무 힘들었다. 


@대부분 비정규직인 학회원들이 서울서 부산으로 발표를 하러 와야하고, 아직 자리를 못잡은 발표자나 참가자에게 학회에서 여비 지원을 해주자고 요청했다. 학회 예산에는 큰 부담이지만, 받은 사람은 별 의미도 없는 비용. 결국  학회에는 부담만 주고 받은 사람은 '받았던가?' 이런 무의미한 '비용 지출' 문제가 되어버렸다. 


@학교에서 1원도 지원을 받을 수 없어서, 식사비도 뭐도 지원할 수 없고 그 복잡한 사정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 이야기해도 사실 정규직의 징징거림 이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서로간의 위치 관계상 그렇다. 


서울의 왠만한 대학이라면 정규직 교수가 학회장이 되어 학회를 개최할 때 일정한 지원이나 협조가 된다고 한다. 국립대도 그런 모양이다. 그러나 왜 이걸 할 수 없는지를 설명하기도 힘들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책임과 구조와 이런 문제도 설명하기 어렵다. 결국 부산에 와서 학회를 하느라, 학회는 재정 부담, 비정규직 발표자는 개인 부담, 나는 나대로 빈정상하고, 내 상황을 다시 공개적으로 들여다봐야 하는 그런 악순환만 가중되었다. 


@지난 번 완서학 콜로키엄 때 발표자 중 한 분에게 부탁해서 이대에 장소를 구했다. 박사학위를 막 마치고 강사이기에 장소 섭외는 가능했다. 여성문학회는 서울에 정규직 재직자가 없어서 서울에 학회 장소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겨우 이대에 장소를 구했지만, 당일날, 이번 겨울 가장 추운 날이었는데, 난방이 안되었다. 틀어준다고 하면서 시간만 끌어서 장소를 바꾸지도 못하고, 학교쪽에 뭐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해결도 불가능했다. 우왕좌왕하며 학회를 마치고, 추위와 스트레스로 내장이 얼어붙어 경직되는 사상 초유의 경험을 했다. 

서울 학교에 소속된 사람들이 하는 행사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부산에서 뭔가 행사를 할 때마다 "차비 지원이 되나요?"라고 묻는 이들에게 묘한 '위화감'을 느끼기도 한다. 부산에서 서울로 발표나 뭘 할 때 "차비 지원이 되나요?"라고 묻기도 힘들고, 물어도 거의 무시되는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즉 이 '차비 지원이 되나요?"의 질문 여부에는 단지 비정규직 연구자라는 자리 문제만이 아니라, 서울과 지방으로 이동하는 자들의 학벌 구조에서의 위계성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감사한 일이지만, 서울서 부산 쪽 연구자들을 자주 초청해주시고 이런 현상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 너무 기쁜 일이다. 근데 지방에서 서울 쪽 연구자를 초청하는 걸 감사하거나 고마운 일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려오는 쪽'에서 '영광인줄 알아, 이것들아!' 이런 태도인 경우가 많다. 



이건 누구의 악의도 문제도 아닌, 우리가 놓여있는 상황들이 만들어내는 '문제들'이다. 이걸 과연 '해결'할 수 있나? 


내가 능력과 경험이 없어서 해결을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게 결국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지, 그게 판단이 안된다.

해결할 능력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라면, 다른 사람이 일을 맡아야 하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결국 서울서 모든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만 나온다. 여기에는 동의할 수 없고, 하기 싫지만, 사실상, 그동안 내가 서울과 거의 연을 끊다시피 했던 것은 어쩌면 이미 나에게는 이 결론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2.


그럼에도 내가 학회일을 맡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페미니즘 연구자의 비정규직화, 혹은 지식장에서의 말살의 역사를 보듬을 책임이 나한테 있기 때문이었다. 간단하게 정규직이 나 하나라 어쩔 수 없었다. 전임 회장님은 "우리가 드디어 정규직을 구했다"고 표현하셨다.^^


@해서 학회를 맡으며, 그럼 학회를 주로 지역 순회 형태로 하겠다. 그렇다면 일을 해볼 수 있겠다고 논의를 했고. 지방 쪽 연구자와 선생님들도 새롭게 학회에 모셨다. 문제는 지방대에서는 서울처럼 학회를 기획할 수 있는 인적 축적이 없다는 것이다. 대학원생이나 전업연구자가 거의 없다. 일단 규모가 비교가 안된다. 그러니 지방에서 학회를 기획하는 것 자체가 역부족이다. 국립대는 다르겠지만. 


@그러나  어차피 소수 페미니즘 연구자가 모이는 학회 특성을 살려서, 공통의 주제를 함께, 계속 연구하는 연구소 형태로 학회를 재편하기로 해서, "페미니즘 문화지리 혹은 스케일 정치와 페미니즘 지정학' 등의 주제로 지방을 순회하는 형태의 학회를 만들기로 했다. 페미니즘 전성기에도 서울만 바라보는 지방의 연구자나 페미니즘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지방에서 모이는 자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 


@허나 역시 또 지방에서 이런 자리를 열려면 비정규직인 서울 연구자들이 지방으로 와야하고, 개최를 위한 재정 지원을 받으려 노력해도, 구조조정 강풍 중인 지방대에 그런 여력은 없고....여력 문제라고만은 할 수 없지만, 


이것 역시, 내 '학내 정치 능력의 문제'이니 말이다. 


3. 정리하려다, 또 학회 일로 장시간 전화를 하느라 다시 머리가 아프다^^


나는 부산에 있고 학회 일로 여러 분주한 다른 선생님들은 서울에 계시니, 그분들도 나랑 전화로 카톡으로 일 처리하고 논의해야해서 서로 너무 힘들다. 기차에서, 이동 중에, 전화와 카톡과 문자로 일을 논의해야 하니


사차혁명이 도래했다는 이 시대에도, 결국 우리는 서울 중심의 물질적 지정학적 권력에서 벗어나기 거의 불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다. 


4. 아침 일찍 길을 나서서, 기차 시간만 거의 5~6시간을 걸려 도착한 발표장. 앞 발표에 대해 긴 난상 토론에 내 발표 시간이 넘어갔다. 나는 다시 6시 10분 기차를 타야하는데. 차 시간을 이야기하니, 다들 서운해하시고, 왜 밥도 안 먹고 가냐? 아쉬워하신다. 


그런데, 나도 문득 그제야 꺠달은 것은, 발표 준비 기간 내내, 차 시간, 기차 예약, 이동 동선, 점심 시간, 돌아오는 기차, 부산서 처리할 일, 돌아와서 처리할 일, 서울서 처리할 일, 연락할 일.......................이런 일들로 온통 머리와 메모장이 가득차서


거기서 사람들을 만나, 저녁 먹고 수다떨 생각, 아니 그런 시간 자체가 머리속에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 


선생님들은 나의 얄짤없는 시간표에 서운해했으나, 그 서운함이, 이 시간표의 피로와 설명불가능한 삶의 반경의 문제라는 걸, 이른바 '스케일 정치'가 바로 이런 거라는 걸. 이야기할 수록 더 얄짤없어지는 이런 세계.


누구의 악의도, 배려없음도 아니지만, 이 시간표를 벗어날 수 없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음에 대해.


너무너무 피곤한 날들이다. 글도 남기기 피곤한데, 글이라도 안 남기면, 이 피로가 폭발할 수도 있을 듯해서.


글로 정리해보지만, 정리안되는 그런 상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