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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wonderland
미망, 남북정상회담, 미스터 선샤인 본문
평양에 모두의 눈이 집중된 날들.
이상한 동시간성이지만 박완서의 <<미망>>을 다시 읽고 있다.
이번 학기 대학원 수업 주제는 <박완서 문학으로 읽는 한국 현대사와 젠더>이다. 첫 주제는 [박완서, <<미망>>으로 읽어보는 조선 후기~1950년대: 가족. 지역, 젠더의 교차와 변동의 역사]
박완서의 장편에 대해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데 중단편도 워낙 많고 중요 작품이 많다 보니,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평양으로 향하는 발걸음, 새로이 열리는 길, 오래된 길의 교차로에서 선생은 무슨 말을 하셨을까. 이미 작품 속에 많은 말을 남기셨다.
막연한 희망도, 동경도 아닌, 새롭게 나아가는 희망과 오래된 여전히 남아있는 갈등과 대립과 어긋남. 그럼에도 그 어긋남을 사는 게 삶이고 역사가 아닐까라는 물음.
분단, 그리고 그 너머를 '희망'하는 박완서의 길고 긴 장정에는 언제나 이런 두려움과 무시무시함에 대한 예감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말없이 그냥 이심전심으로 이생원이 제육을 한사코 인육이라고 우기는 게 단순한 술주정이 아니라, 앞으로 차마 인두겁을 쓰고는 못지를 일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예고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평양 발 소식이 전해지는 날 문득, 박완서가 '꿈엔들 잊힐리야' 없던 곳이지만 결국 가보지 못한 땅, 개성과 인근 지역에 대해서 남겨둔 말과 글이 오늘의 실감이 새겨지며 실팍하게 다가온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요 예쁜 각시는 어디메서 생겼는?"
"할아버지가 야다리 밑에서 주워왔지."
태임이가 겨우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가르친 재롱이었다. 전영감이 아니라도 개성 사람들은 아이들이 예쁘게 굴 때도 밉게 굴 때로 야다리 밑에서 주워왔단 우스갯소리를 잘했다. 전영감은 문득 그런 야다리말고 새로운 야다리를 태임이에게 가르쳐주고 싶어진다.
"태임아, 이 할아버지가 지금부터 하는 말, 잘 들어두어야 한다. 야다리는 그 옛날 고려가 이 송도를 서울로 하고 융성했을때, 수만 리 밖 서역의 오랑캐들이 고려 임금에게 예물로 바치려고 약대를 몰고와 매어놓았던 자리가 남아 있는 다리란다."
"약대가 뭔대요? 할아버지"
약대는 낙타.
손녀 태임을 유달리 아끼고, 당시 여성과는 다른 인생을 살기를 바라는 할아버지와 이에 맞서 대거리 하는 부인 홍씨의 논쟁도 흥미롭다. 전처만이 생각하는 남다른 여성상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고루함의 분열을 비웃으며 홍씨 부인은 "그러다 민중전 또 나겄구랴"며 비웃고
'사임당처럼 되어지이다'라며 '축원하는' 할아버지에게 대들고 그런 양반가 여성의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태임 사이의 논쟁도 생생하다.
무엇보다 개성 지역을 기반으로 한 송방이 신분제 사회에서 자본주의, 식민화를 거치며 변화 발전하는 양상과, 이런 송방 자본의 바탕이 되거나, 또 어긋나는 여성 노동(홍씨 부인의 살림, 바느질, 샛골 여성들의 인삼 농사 등)에 대한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밀한 기록은 옮겨 전하기 어려울 정도다.
홍씨 부인을 매개로 한 개성 여자들에 대한 이런 묘사는 정말 압권이다. 머리에 임을 진 여성들에 대해 박완서는 평생 여러 형태로 기록을 남겼다. <<미망>>의 시작점인 1893년에서 훌쩍 더 먼 미래인 2000년대 지하철에서 짐을 이고 지고 가는 부인과 앞서가는 남편의 초상에 까지 말이다.
"처만네는 모든 개성 여자들이 그렇듯이 임질을 잘했다. 물동이쯤 머리에 이고는 전혀 뭘 이었다는 걸 의식하지 않은 양 자유자재로 요두전목을 하고, 구경할 거 다하고 참견할 것 다하며 두 팔을 휘젓고 다녔다. 모처럼 나들이할 일이 생겨 버선 신고, 맨머리로 길을 걸을라치면 머리가 붕 공중으로 뜰 것처럼 허전해서 하다못해 버선이라도 쑥 뽑아 두 절로 접어 머리에 얹어야 걸음이 제대로 걸렸다.
허리엔 종댕이 차고, 등엔 아이 업고, 머리엔 임을 인 어머니 외의 어머니 모습을 전처만은 지금도 상상할 수가 없었다."
하도 짐을 많이 지고 다녀서, 짐을 안지고 있는게 이상하고 허전해서, 신고 있던 버선이라도 벗어서 임을 져야 속이 후련하다는 묘사는 정말 압권이고 웃음이 절로 난다.
<<미망>>에 기록된 개성말은 지금 여기, 평양 뉴스로 가득한 시절의 사람들에게는 거의 잊힌 말. 해독이 어려운 말이다.
삼팔 두루막을 짓는 삼팔 바느질
'점심'에 먹는 '김심'
송방 동업자끼리의 계조직인 도가.
큰 장사꾼이 지방에 파견한 지점장 같은 것을 의미하는 차인과 차인제도에 기반한 송방의 독특한 산업 형태
도거리 장사꾼: 매점매석에 능한 상인
도차: 물건을 도거리로 혼자 파는 것.
작은 개울을 뜻하는 말. 나깟줄.
개성의 명산 용수산에 지천인 열매들. 싱아, 무릇. 삘기, 까마중,
여름에 산수 좋은 데 가서 찬물에 들락거리며 음식도 해먹고 하루를 노는 것을 뜻하는 말, 冷田냉전.
冷戰과 熱戰이 지나, 우리 모두 냉전 冷田가는 꿈, 그런 꿈을 박완서는 버린 적이 없었다. 그게 <꿈엔들 잊히리야>의 중층의 꿈, 혹은 미망...꿈이고, 여성의 노예 상태(미망인)이자, 분단 한국의 상태(미망)인 <미망>이 뜻하는 것이다.
냉전과 열전이 교착된 상태를 벗어나는 길과 그리로 나아가고자 하는 꿈은 노예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여성의 꿈과 어긋나길 반복했고, 그렇게 미망이 되기를 반복했다. 그 미망을 벗어나야 비로소, 꿈엔들 잊히지 않던, 그곳에 도착할 수 있다.
박완서를 다시 읽어야 하는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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