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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wonderland
<어떤 우정에 대하여, 24년 겨울 비상 계엄 열흘의 기록> 본문
1. "그러면 너는 친구가 누구야?"
이 이상한 문장은 며칠 전 한 동료가 긴 전화 끝에 내게 건넨 질문이다.
조직의 비민주성과 문제를 비판했지만, 아무 응답도 없거니와, 일방적으로 다수로 몰아붙이며 일을 추진하는 걸 보고 결국 단톡을 나왔다. 전화를 건 동료는 내가 단톡을 나간 이후의 상황과 일의 마무리를 알려주면서, 자기도 결국 참여는 할 것이라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이 일은 정말 잘못되었고, 진짜 말도 안된다고 생각해, 근데 명아야 나는 그 사람과 오래 친구였어서, 네 입장은 잘 알고 문제 제기에도 공감하지만, 나는 너처럼은 못할 것 같아."
나의 분노와, 혹 있을지 모를 '외로움'을 염려하며 전화를 건 그녀의 마음을 잘 안다.
하지만 나는 "근데, 나는 거기 있는 분들을 친구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데, 그분들이 나를 친구라고 하는 게 더 이상한데."라며 까칠한 답변을 했다.
"그러면 너는 친구가 누구야?"라며 그녀는 되물었다.
전화로는 미처 대답 못하고 그 질문을 조금 생각해보았다.
아주 오래 전에, 어쩌면 부산 오기 얼마 전까지도, 대학원을 통해 만나고 교류한 학문장 사람들을 '친구처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인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고 지냈었는데, "아, 이들이 친구가 아니었구나."라는 걸 처참하게 깨달을 수밖에 없던 계기가 있었고, 그 후로 나는 부산에 있는 터라, 서로 만날 일이 없이 오늘에 이르렀다.
임용 과정에 정면으로 맞서서 교수들과 부딪치면서, 그간 '친구처럼' 생각했던 많은 이들이 돌아서는 걸 뼈 아프게 경험했다.
그때 상황은 친구 따위 잃는 건 당시 내가 겪은 불행과 고통 중에 그저 아무 의미도 없는 일들이어서, 그렇게 정리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새삼 친구라니.
2. 사적 친밀성과는 다른, 고통과 분노를 나눌 수 있었던 사람들
부산에 온 지도 이미 십칠-팔 년에 접어든다.
이렇게 '부산에 온 지 몇 년'을 꼽아야 하는 게 나의 부산 사람으로서의 위치이다.
이주 노동자이지만 정규직 지방대 교수라는 권력 속에 나의 복합성이 있다. 이 복합성으로 인해 나는 부산에서는 친구라는 관계를 만들 수 없다는 걸 꽤 오래 전에 깨달았다. 직장에서는 친구는커녕 동료도 어렵고, 여러 이유로 무엇인가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물론 아프콤이나 연구소를 함께 하는 소중한 동료들이 있지만 친구와는 다르다.
직장 동료들이 아니고는 대부분 권력의 위계 속에 있다 보니, 친구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게 내 위치이고, 친구를 만들 수 없다는 걸로 징징거릴 정도로 뻔뻔하지는 않아서, 그냥 그게 내 조건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아주 잠깐, '친구 같은' 그런 감각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처음 만난 게 부산 페미니스트 집회 때 만났던, 집회를 꾸리고, 집회 마치고 성토를 하고, 분노와 힘겨움과 기쁨을 나누던 캠페미 멤버들이었다.
지금은 다 졸업해서, 그나마 연락이 닿는 사람도 둘 정도이고, 다들 당시 학생이어서 무슨 친구 관계는 아니지만
흔히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감지하고, 분노와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그런 관계를 친구라고 한다면, 부산에서 만난 유일한 친구들은 그들이었다.
그래서 너무 힘들고 소진되기도 했지만, 페미니스트 집회에 열심히 나갔다.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친구들을 만나러.
비록, 아주 잠시 잠깐의 공간 속에서 만나고 사라져버린 우정이라고 해도,
그 경험과 기억이, 부산에서의 나의 삶을 이전보다 더 행복하게 만들었다.
조금은 나도 더이상 외롭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도 갖게 되었다.
3. 12월 14일 탄핵 표결 집회를 마치며
어떤 이는 내가 부산에 대해 좋은 말만 한다고 한다.
좋고 나쁨보다는 아마 나의 위치를 항상 인식하고 어떤 이야기나 감각도 그 위치를 반추하면서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항상 외부자라는 자기 검열이 많은 것일 수도 있지만, 이주 노동자인 지방대 교수라는 위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 내 이야기를 듣는 분들도 그런 내 위치를 감각 하면서 내가 하는 부산 이야기를 듣기를 바라면서 대부분의 글을 쓴다.
또 내가 만나는 부산 사람들도 대부분 학계와 대학을 중심으로 반경을 확대해나가기 때문에, 서울에 비해 부산이 더 문제가 있다는 감각을 느끼기 어렵다. 학계로 치자면 서울 쪽이 교활하고 권력도 더 비대하다.
엄청난 규모이기도 했고, 탄핵 표결 발표 순간 그 많은 인원들이 순간 고요해질 정도로 간절한 집회였다.
표결 발표 후 엄청난 환호 속에서 벅차기도 했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부산의 전포대로 한가운데에 함께 있으면서,
"나도 여기서, 부산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기쁨과 분노를 나눌 수 있구나, 그래 나도 같이할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그런 생각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아마도 요 며칠 멀리 있는 사람들과 부대끼고 느꼈던 새삼스러운 외로움과 친구라는 문제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 만은 아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게 되기까지, 그들과 잠시 잠깐이지만 어떤 우정의 감각을 나누게 되기까지, 나는 오래 길을 걸어오지 않았나.
그 오랜 외로운 걸음 걸음의 끝에서, 이렇게 환하게 열린 빛나는 벗들을 만났다는 걸, 스스로 축하하고, 자기 자신을 위로해도 좋지 않을까.
이제 그만 외로워 해도 좋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보는 밤입니다.
여러분 모두 축하 드리고, 단지 오늘 하루라도 수고한 여러분을 칭찬하고 스스로 위로해주시기를.
2024년 12월 14일 탄핵 표결 촉구 집회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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