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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wonderland
우연 없는 세계의 카타르시스, 더 글로리 본문
계급적 이동( 혹은 입신출세주의)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 시대,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런 판타지가 대세가 되던 전환점에 <파리의 연인>이 있기도 함. 변화가 불가능한 세계에서 '변화의 판타지'를 가상적으로 대체해넣는 것을 중지시키고 싶었던 게, 모든 시청자의 압력에도 결말을 "모든 게 한낮 꿈"이고 주인공은 자신의 계급적 현실로 회귀하는 서사였던 것.
숙제 삼아 휴식 삼아 <더 글로리> 몰아보기, 이후의 노트
*노트라서 일관된 '평가'나 '해석', 이미 종결된 해석이나 평가의 기록이 아닙니다. 비평은 그런 종결성을 내파할 때 비로소 출현하는 것이기에, 원론적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요.
1. 이야기는 어떻게 프로젝트가 되는가
학교는 사회가 아니다. 이는 포함이나 크기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사회를 학교로 만들고자 했던 대표적 프로젝트가 파시즘이다. 후지타 쇼오조가 전체주의 혹은 역사적 파시즘을 사회를 학교로, 국가를 학교로 만들고자 했다고 비판했을 때의 의미.
그런데 이런 방식은 파시즘이 만든게 아니다. 파시즘은 아무 것도 만들지 않기 때문에. 이미 존재했던 것을 안티테제로 재구성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야기(서사handlung)는 현실을 반영, 생산, 재구성하지만 이야기가 세계가 될 수 없다. 이야기가 세계를 대체할 때 어떤 일이 생겼을까.
세계를 유기체로 상상하고 재구성하려는 시도는 사회적인 것에 대한 사상 못지 않게 이야기적인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회, 몸, 이야기는 다른 삶들에 대한 열망을 나르고 발명하기도 하지만, 유사한 듯한데 아주 다른 방식으로 사회, 몸, 이야기의 변형 역량을 잘 짜여진 프로젝트로 대체한다.
블랑쇼가 시적인 것과 프로젝트에 대한 비판으로 제기하고자 했던 그 맥락에서.
사회나 몸들 사이, 시적인 것에 있어야 할 것이 사라지면서 마치 그것인냥 대체하는 것을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회, 다른 몸들을 향한 열정과 정동들이 프로젝트로 환원되고 환수되고 오인되는 세계, 아니 프로젝트가 시적인 것을 잠식해버린 세계.
<더 글로리>를 보고 느낀 감상.
이걸 구체화하는 과정에 필요한 여러 해석 요소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다 이어서 쓰게 될지는 모르겠네요. 몰아보기말고, 쪼개서 느리게......유기적이지 않게
1. 이야기의 카타르시스를 넷플릭스화하기
고전적 의미에서(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로다가) 관객을 쉬었다가pose와 쪼기tension로 정동적으로 조율하는 방식을 넷플릭스적으로 조절. 뜬금없는 아리스토텔레스는 김은숙 드라마가 기존의 고전적 혹은 '통속적' 드라마 문법이나 효과를 활용하는 방식이 넷플릭스와 만나 변형되는 게 흥미로웠다는 걸 좀 생각하기 위해서.
2. 복수극의 잘 짜인 플랜
문동은이 복수를 위해서 교사 자격증을 따고 임용고시 보고, 이를 준비하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인물들에게 최적화된 ‘인생 서사’를 추출해서 그 서사에 ‘미래’를 없앤다는 이야기 구성 방식. 임용고시 공부하듯이 복수 플랜을 짜고 그게 성공하는 카타르시스에 작동하는 프로젝트. 이야기가 사회를 대체하는 방식. 혹은 사회를 유기적으로 잘 짜여진 이야기로 만들기.
3. 사회가 없는 데 사회드라마로 읽는 정동구조
이런 특징이 오늘날 글로벌 텔레비전 산업에서 K 드라마에 대한 차별화된 인지구조라는 게 많은 연구자들의 평. 즉 K 드라마는 통속적이지만 뭔가 ‘사회적’이다.
이건 단순하지는 않고, 다른 사회를 향한 정치적, 집단적 열정과 혁명의 역사가 명확하게 있음, K 컨텐츠 산업은 분명 그러한 정치적인 열망의 역사와 흔적의 산물이며, 그 흔적에 의해 차별화된 상품으로서 특화된다. 혁명의 추억이기도 하지만, 이게 단지 산업의 문제는 아님.
이에 대해서는 <오징어게임 어펙트>에서도 자세하게 밝힘.
4. 스스로를 인종화하는, 글로벌 플랫폼과 K 콘텐츠의 딜레마와 협상
김은숙 드라마 전체를 살펴봐도 <더 글로리>의 박연진 같은 신체 표상은 존재하지 않았음. appeareance의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흑발의 긴 생머리에 스키니한 몸의 아시아 여성 빌런은 한국 문화의 산물이 아니라, 미국드라마와 헐리웃 영화가 생산한 인종화된 표상.
<작은아씨들>의 여성 표상 역시 이른바 아시안 뷰티의 인종차별적 표상의 반복.
의도하든 아니든 한국 컨텐츠가 글로벌 콘텐츠 산업, 특히 넷플릭스의 지역 맞춤 큐레이션에 기입되고 차별화되기 위해(즉 넷플릭스의 한국 컨텐츠 큐레이션) 스스로를 인종화하고 있는 중.
5. 한국적이라는 것을 둘러싼 협상, 투쟁과 길항들
‘그게 한국적이야’라는 맥락이 그래서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는 매우 복합적인 의미로 재구성되었다. ‘우리’에겐 국뽕일지 몰라도, ‘바깥’에선 멸칭인 규정들. 이 길항들 사이의 투쟁과 협상, 변용과 생성이 오늘날 글로벌 자본주의 어디에서도 예외없이 진행 중인 일. 그리고 자기 규정을 상실한 이름들. 그게 한국적인 것의 이름만은 아니다.
6. 99%의 완벽한 이야기/몸들과 나머지: 사랑과 장애
<더 글로리>는 복수극인가 사랑이야기인가. 사실 진부한 사랑 이야기이자, 김은숙이 반복해서 변주하는 김은숙 표 낭만적 사랑이야기가 이번에는, 복수극 플롯을 취한 것. 학교 폭력은 이 플롯을 위한 무대일 뿐.
그 무대가 독립운동이건, 재벌이건, 타임슬립이건 결국 여자 1명과 남자 3명의 이야기이고, 그들의 역할 설정이
“복에 겨운 얘기씨 주제에”(미스터 선샤인)
“태어날 때부터 흑돌을 양보받은 주제에”로 남성, 여성을 오가면 변주되는 데 이게 계급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탁월한 반복의 드라마투르기.
이번의 또하나 키워드는 99퍼센드는 “계획”이고 나머지 1%는 신의 영역인데. 그걸 대신하는 게 사랑. 잘 짜여진 프로젝트의 세계. 어떤 우연happen도 발생하지 않는 세계. 그래서 사실상 잘 짜여진 각본의 세계이고 변화란 애초에 없는 세계인데, 시원한 복수(엄청난 구조 변화)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
이런 잘 짜여진 프로젝트는 유기체적 완전성을 토대로 하고 있기에, 이 세계의 ‘불행’은 시각상실, 목소리 상실, 정신 장애, 그리고 강제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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