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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운대 일기/지방대 교수의 하루

지방대 소멸론.........

alice11 2021. 1. 13. 14:24

부산에는 인문학 전공자들이 취업할 곳이 거의 없다. 아프콤 시절 문화기획자를 키우고 출판사도 자체적으로 만들려고 시도한 이유다. 출판사는 최종 단계까지 갔는데, 결국 유통을 우리가 감당할 수 없고, 유통조차 서울을 통해서 하지 않고는 할 수가 없는 게 현실이라 더나아갈 수 없었다. 당시 유통을 대행해주신다고 제안해주시기도 한 푸른역사 사장님이나, 출판사 차리는 실무 관련 교육을 해주신 조정환 선생님의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

**정권과 지방 정부가 바뀌고, 뭔가 기대를 하고는 부산 혁신일자리 사업에 제안서를 내보았다. 일자리 없는 문화행정, 인력 지원 없는 문화정책을 비판하고, 부산 문화정책을 일자리 정책으로 전환하고, 대학과 지방 정부가 지역문화 기획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획을 제출했다.

당시 담당하셨던 분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내가 제출한 제안서에 대해서 꼼꼼하게 피드백과 의견을 제시해주시고, 이런 사업이 진짜 '혁신'에 값하는 제안서라고도 해주셨다.(물론 듣기 좋으라고 하신 이야기겠으나^^) 이런 피드백 자체를 정책 기관에서는 처음 받아보아서 기운이 나기도 했다. 물론 선정은 안되었고. 담당자분도 피드백을 해주시면서 아마 선정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하셨다. 왜냐면 정부 사업이 일자리 사업도 결국 매년 몇명 신규 취업을 시켰는지 지표가 절대적이어서, 내 제안서처럼 장기적으로 지역 일자리 구조를 변화시키는 계획은 연도별 취업률 자체가 산정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진심으로 아쉬워하셨다.

***디지털 인문학을 전공 영역과 학제(인문대학이나 학과)에 넣어서 새로운 대학 모델을 만들기 위해, 2년 넘게 여러 일을 했다. 바뀐 대학 당국자들도 관심이 있었고, 여러 부처의 피드백도 받고 했지만, 결국 아무 것도 할 수는 없었다. 계획, 조사, 제안서 작업도 열심히 했고, 학교에서도 열심히 고민했지만 할 수 없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서 말하면 지방대 재직교수들은 아마 단 하루도 <구조조정>, <혁신>, <취업률>, <미충원>, <신입생 충원 대책> 등 압박을 안 받는 날이 없다. <대학 혁신> 말만 들어도 진짜 가슴이 콱 막히는 것처럼 스트레스를 받는다.

교수들은 학교 행정 담당하는 보직 교수들에게 이런 압박을 받지만, 학교 당국은 또 교육부와 정부의 압박을 받는다. 그뿐 아니라, 지방소멸, 지방대 소멸에 대한 온갖 난리법석 또한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사실 누구도 대응이나 대책 대안은 없다.

대학 혁신이 지방대의 운명이긴 한데, 사실 실제로 혁신은 할 수가 없다. (이 혁신이라는 말 좀 그만 쓰면 좋겠다. 박근혜, 박정희의 말을 왜 계속 써야하는지...)

왜냐면 정부가 규정하는 혁신은 지표를 높이는 것이다. 취업률 지표, 대학 평가 지표. 그런데 이 평가 지표는 실제 교육의 질이나 학생의 만족도와는 사실 관계가 없다. 교수나 교수자들은 이 지표 관리하는 어이없는 행정 업무에 볼모가 된다. 학생들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일상적으로 하던 소통, 대화는 학생 상담 지표가 되어서, 그 지표가 100%가 되어야 하기에, 한 학생에게 여러번 상담을 할 수도 할 여력도 없게 된다.

더 문제는 실제로 이 구조에서는 대학 혁신(대학의 기존 구조를 변화하여 이른바 이 정부가 좋아하는 미래형 대학을 만든다는 의미로)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서 디지털 인문학 관련해서, 만일 신규 학과나 신규 학부를 만드는 게 말 그대로 미래형 대학 혁신이 될텐데. 현재 대학 혁신 구조에서는 불가능하다.

매년 학생충원율, 수시 등록률, 정시등록률, 학생확보 비율, 이탈률 등을 빼곡하게 지표화해서 대학 평가를 하는데,

신규 학과는 위험도가 높고 낯설기에 학생 충원 자체가 예상이 어렵다. 한 해 학생 충원을 못하면, 그 학과는 <미달학과>가 되고, 경쟁율도 낮게 나오고, 학과 순위도 떨어지고, 인지도도 낮게 된다. 그러면 다음 해에는 학생 충원이 더 어렵고, 폐과 지경에 이르게 된다.

****부산에는 대학이 15개 정도 되는데 부산시나 혁신도시 사업 구상 같은 광역 구상에는 대학에 대한 정책과 비전이 없다. 부산형 뉴딜 사업에 대학 혁신과 관련한 제안서도 또!!! 제출했는데, 아무리 연락해도 아무 응답도 받지 못했다.

******또 입시철이 돌아오니, 사방에서 지방대 학생 충원률 등급표 보도가 시작되고, 지방대가 경쟁력이 없게 된 건 지방대 자기 책임도 크다는 지적도 나오고, 수도권 중심주의 이야기도 나오고 한다.

일단 이런 식의 보도의 목표는 뭔지 모르겠다. 이런 보도를 보고 동아대 지원한 학생은 어떤 생각을 할까? 남들 다 빠져나간 곳에 앞뒤 분간 못하고 지원한 사람?

지방대에 지원하고 지방대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다들 수도권 뽑고 밀려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거라는 전제가 이런 보도와 지표와 한탄에는 깔려있다. 성적순으로 대학가도록 만든 이 사회에서 그게 지방대만의 문제도 아니지만, 거꾸로 지방대를 선택하는 게 그런 식의 성적순의 논리만으로 환원되지도 않는다.

게다가 정시비중 높이고 수시 지원에서 수도권과 지방 비율을 해제해버린 건 현 정부이기도 하다.

********웃기는 말이지만, "지방대에도 사람이 산다." 얼마 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부산 출신 배우가 정색하고 "부산에도 지하철 있어요."라고 했던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지방대에 대한 담론을 보면 무슨 외계인이나 '정글탐험대'가 만난 '원주민' 보듯하는 태도, 징글징글하다. 마무리가 좀 감정적이네요 ㅋㅋ 근데 지방대 입시 경쟁률 보도는 주로 지역 매체가 또 많이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