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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wonderland
트위터 페미니즘 연구 중간 노트:페미라이터 해체 전후(0418) 본문
"트페미는 알고 있다"
1. 2017년 4월 17일 페미라이터가 해체를 선언하면서, 트위터 페미니즘 담론장은 다른 국면으로 넘어갈 것 같다.
2. 관련해서 계속 리서치 중이고 좀더 후에 구체적 연구 결과는 논의할 예정.
3. 연구 방법
나는 sns를 기본적으로 연구 대상이나 리서치 네트워크 중 하나로 접근하기 때문에
SNS적인 소통이나 멘션 제스처에 익숙해지려 하지 않는다.
나의 SNS가 전혀 SNS로서의 노릇을 못/안하는 이유다.
참문없과 관련해 트위터를 연구중. 연구 대상으로서 트위터를 다루기 위한 여러 전제가 필요하다.
3-1. 트위터 담론을 단순화하는 위험성
참문없 이후 논의 진행 과정에 대해 트위터 페미니스트들의 논의를 단순화하거나 매도해서는 안된다. 트위터가 정신나간 음모론을 만드는, 편먹고 싸우는 떼거리들의 동일성의 욕망이 판치는 곳은 아니다.
페미라이터 해체 이후, 해체가 무책임하다는 트위터 페미 논자들에 대해 "치졸한 승리"라고 규정한 것은 이미 트윗 담론장에서 쌓여온 논의 구조를 너무나 무의미하게 휘발시켜버린다.
3-2. 트윗담론의 추이와 역사성을 파악할 필요
페미라이터, 참문없을 검색하면 전체 논의 윤곽을 볼 수는 있다. 그러나 트페미들도 이런 검색 상황을 잘 알기에 때로는 일부러 검색어를 노출하고, 때로는 일부러 노출하지 않는다. 또 중간의 논의 전개나 참가자의 변화 역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참문없 상황을 아카이빙하러 참여한 <무지>님 계정이 중도에 사라졌다. 상호 논쟁에 대해 상처를 받은 게 계기라 할 수 있을까?
<개#중>님은 흥미롭게도 위의 키워드로는 거의 검색되지 않는 식으로 트윗을 하고 아카이빙한다. (일부 익명처리)
트윗을 검색해서 <포착하려는> 구조에 대한 이러한 저항이나, 이탈 구조는 참문없과 동시 진행된 다른 사례에서도 흥미롭게 반복된다. 이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논하기는 어렵지만, 언젠가 연구로서는 기록될 가치가 있다.
3-3. 계폭의 효과
비판을 받으면 무응답, 계폭하고 시간이 흐르면 다시 돌아오는 구조. 트위터의 특성상 담론의 지속성, 비판과 상호비판의 지속성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얼마든지 이런 방식으로 지속성을 가로막을 수 있다.
:페미라이터 <해체>는 과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기록: 페미라이터는 트위터 계정에서 <합의된 해체>를 공지했으나, 내부 페미라이터 선언자들에게는 일꾼들이 실명으로 사후에 메일을 보내, 일꾼들의 실책을 사과하고 자신들의 책임, 즉 일꾼 해체를 전하는 식이었다. 이 둘 사이의 낙차와 차이, 일꾼들과 페미라이터 선언자들의 사이, 관계성, 권력에 대해서도 고민 필요함.
3-4. 트위터와 페이스북 사이의 '가면무도회'
나는 연구 진행을 위해 매일 일정 시간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비교 조사한다. 양자 사이에서 담론의 격차가 날이 갈수록 깊어진다. 이 사이에서 벌어지는 위장, 연기와 가면극도 흥미롭다.
언제부턴가 트윗에
"트페미는 알고 있다"는 문구가 겉으로 혹은 속으로 흐르고 있다.
논의 전개 과정과 흐름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면의 맥락은 모른 채 표면 담론에 동의하고 표면 담론의 논리를 따라가게 된다.
트윗에서는 '경찰노릇'을 하고, 페이스북에서 우아하고 인내심 많은 고상한 피해자 연극을 하던 어떤 이를 알고 있는데, 그 이후로 나는 양자 사이에서의 역할극을 하는 이들에 대해 나름 판단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역할극은 특정 개인의 캐릭터가 아니라, 트위터와 페이스북 사용자의 차이, 담론 공간의 차이와도 관련이 깊다는 생각이 든다.
즉 트위터에서 '경찰노릇'을 하고 페이스북과 '다른 얼굴'을 보여도 페이스북의 '담론 공간' 참여자들은 그걸 알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이번 참문없 사태를 보아도 이런 상황이 참으로 흥미롭다.
페이스북의 열혈 사용자조차도 '상황 판단'이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굳이 트위터에 들어가보지 않는다. 이건 아마 트위터 자체에 대한 '판단'이나 '공유된 감각'이나 '인식구조'와 관련된다고 보인다. 즉 "굳이 트위터에 가보지 않아도......" 즉 트위터에 대한 불신이나 트위터 담론을 '불특정 다수의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불링" 즉 트위터 담론을 암암리에 사이버 불링으로 간주하는 그런 감각과 인식.
3-5. 참문없음을 '볼모로 사용하기'에 대해 기록을 남기기.
초기에 참문없음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된 것은, 참문없음 사건을 이와 전혀 관련 없는 다른 사안과 엮어서, 어떤 효과를 만드는 식의 개입도 한 역할을 했다.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왜 이 사건에 감정이입을 하는가"라는 트페미끼리의 상호 질문도 이와 관련된다.
긍정적인 효과를 유발한 경우도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관계없는 참문없을 끌어들여서, 결국 참문없음이 '볼모'가 된 결과가 되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참문없음'을 뭔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막연하게 느끼는 이 과잉 확대된 소란은 이와도 관련이 깊다.
4. 트위터 페미니스트들의 담론 공간을 지속가능한 장으로 이어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일단, 현재 상황, 동시간으로 여러 논문과 글을 마감, 작업 중이라, 간단한 메모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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