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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적 언행:혐오발화 증오행동에 의해 피해자와 가해자가 전도되는 이유 본문

밀양+청도를 위한 3분 폭력에 맞서는 모든 이들을 위한 3분

공격적 언행:혐오발화 증오행동에 의해 피해자와 가해자가 전도되는 이유

alice11 2014. 9. 1. 21:46

증오 행동이나 혐오 발화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전도는 자주 발견되는 현상이다. 분명 먼저 피해자에게 폭력적 발화를 한 것이 가해자쪽인데도, 결국 피해자가 그 말에 <화를 참지 못하고> 욱해서, 이에 대해 난폭한 반응을 하게 되어, 피해자의 정당성이 희석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는 증오 행동이나 혐오 발화가 단지, 즉흥적이라거나, '아르바이트 삼아' 아무 생각없이 행해지는 일련의 일들이 아니라, 매우 정교하게 가공된 다양한 선택과 전술을 활용하는 '악의적인 폭력'이라는 것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증오 행동이나 혐오 발화에 대해서, 많은 논란 가운데 하나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나 적대가 이미 그 사회에 만들어져있던 것이고, 대부분의 혐오 발화는 사회 구조에 의해 형성된 차별적 발화의 집성체corpus로부터 인용하는 것이기도 하나는 점이다. 이때 혐오 발화를 수행하는 주체의 책임성이 논란이 된다. 즉 혐오 발화는 이미 만들어진 발화 집성체에 그 원천이 있으니, 그 구조나 사회문화에 책임이 있는 것이지, 하나하나의 개별 주체에게 온전히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주장이 여기서 비롯된다. 


흥미로운 건 혐오 발화나 증오 행동을 수행하는 주체는 그 자신이 마치 어떤 큰 타자의 '도구'(대리인)임을 암암리에 자처한다. 예를 들어 '동성애는 타락'이라는 식으로종교라는 대타자의 도구를 자처하는 혐오 발화가 전형적이다. 특히 한국어에 특징적인 발화 주체가 사라진 표현들, 즉 <카더라> 통신에 입각한 혐오발화야 말로 이처럼 주체를 자기 자신이 아닌, 대타자(사람들이 그러더라....라는 식, 여론, 다들 그런다)에게 위임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개별 발화 주체는 단지 대타자의 말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발화 순간 주체적 선택과 결단을 한다는 점이다. 혐오 발화의 교묘함과 악의성은 이러한 발화 주체의 선택과 결단과 관련된다. 혐오 발화의 주체는 자신의 발화가 상대방을 모욕하고, 상대방에게 엄청난 힘을 부과할 것을 안다. 혐오발화자는 자신의 발화를 통해 상대를 무력화하려는 정교화된 의도와 악의를 갖고 발화를 선택한다. 

이런 사례로서 판례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공격적 언행"에 대한 미국의 판례이다. 레나타 살레클의 정의를 보자. 

1942년 미법원은 "공격적 언행(fighting words)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이 공격적 언행이 수정헌법 제 1조(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가 담긴)에 의해 보호받지 못한다고 규정했다. 


"공격적 언행이란 그 말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폭력적 행위를 하게끔 야기하는 직접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정헌법 제 1조에 의해서 보호받지 못한다."

라캉을 빌어 살레클은 인종주의자가 어떻게 상대방을 향해, 상대방의 분노를 자극하여 자기 정당성을 스스로 훼손하도록 만드는 정교한 선택과 배치를 하는지를 분석한다. 

"인종주의자는, 희생양 안에서, 희생양이 그 둘레로 자신의 정체성을 조직화하는 외상적 중핵을 겨냥한다. 말이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희생양이 그 말에 의해 그토록 충격을 받아서 그것에 대해 즉각 반성할 수 없을 때이며, 그/녀가 전적으로 침묵하거나 아니면 오직 폭력으로서만 반응할 수 있을 때이다.

요컨대 가장 끔찍한 언어 폭력은 희생양이 합리적으로 반응할 수 없을 때, 말이 희생양의 존재의 바로 그 중핵을 때릴 때 발생한다." 살레클,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혐오 발화는 바로 이렇게 희생양이 무력화되고 비이성적(폭력으로서)으로 반응할 때) 그 때 비로소 타자가 존재한다는 존재론적 증명을 구성한다. 즉 인종주의자는 타자에게 자신이 가한 폭력을 통해서만, 그리고 그 폭력에 대한 희생양의 '폭력적 반응(이는 희생양의 무력화의 다른 이름이다.)을 통해서만, 타자를 겨우 감지한다. 

즉 혐오 발화의 주체는 바로 그 폭력을 통해서만, 희생양의 무력화를 통해서만 타자를 겨우 감지한다. 혐오 발화와 증오행동의 수행자가, 폭력을 행하는(말로던 행위로던) 그 순간에만 타자를 현실에서 발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다시 살레클

"우리는 주체가 사회 상징적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으며, 또한 증오 표현을 발화할 때 주체는 인종주의의 방대한 역사로부터 인용을 하는 것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는 말하기를 '선택한다.' 비록 말들이 주체의 의도를 벗어나는 것일지도 모르며, 또한 말실수나 행간에서 더 많은 것을 말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주체는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이 책임이 한낱 그/녀가 주체라는 사실만을 설명한다 할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