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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wonderland
<무기력한 폭군의 쓸모없는 폭력: 사상전과 반페미니즘의 역사> 본문
국민의 힘이 페미니즘을 '반헌법적'이라고 선언했다. 하태경 의원은 이 주장이 "자신의 스승이자 멘토인 이선옥 선생"에서 비롯되었다고도 밝혔다. 이선옥이 더민주 패널로 토론회에 나갔을 때 나는 '극우나 할 발언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광역단체장 성폭력 사건 가리느라 더민주가 키운 반페미니즘 차별선동 세력이 이제 국힘의 기반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국민의 힘이 페미니즘을 반헌법적이라고 선언한 것은 예상가능한 일이지만 일어나서는 안되는 사태가 도래했다는 의미다.
국힘은 역사적으로 일본 제국 파시즘의 '적자'로서 사상전(멸공), 즉 자신의 국민을 대상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일(학살)을 멈춘 적이 없다.
한국에서 '민주화'란 이런 의미에서 학살에 대항하고, 국민을 대상으로 한 사상전에 대항하고, 국민을 비국민으로 낙인찍어서 절멸하는 비국민화에 대항하는 일이었다.
더민주 역시 반페미니즘 차별선동에 앞장서면서 스스로 이런 의미의 '민주화' 이념을 배신했다.
지금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여성은 헌법에 반하는 존재, 반국가적이고 비국민에 준하는 존재로 공격당하고 있다.
페미니즘을 사상전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공격하고 말살할 대상으로 상정한 건 일본 제국의 파시즘(물론 일본, 독일, 이탈리아라는 당대 파시즘 3국 동맹의 사상)에서 시작했다.
이런 사상전이 '여자스파이단에 대한 공포'로 표상되기도 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사상적, 인종적 공포가 페미니즘에 대한 공포와 결합해서 인종화된 반페미니즘 공포와 적개심이 자리잡았다.
1932년 기사.
學良의 여 스파이 열차에서 체포
―편의대와 연락코 잠입 도중 소지 탄환 2천여 발
7일 오후 8시 25분 봉천 착 열차에서 괴상스러운 중국 미인 한 명이 있는 것을 발견한 봉천서원은 즉시 취조를 명한바 이는 북평 출생 황모로서 갖고 있는 큰 트렁크 속에는 장총 탄환 일천 수백 발과 의복 속에 또한 팔백 발의 소총 탄환을 갖고 있는 것이 발각되었다. 취조의 결과 그녀는 산해관으로부터 승차하고 봉천 방면의 편의대와 연락을 취하고자 만주국에 잠입한 학량(學良)의 녀 〈스파이〉인 것이 되였는데 그 대담한 행동에는 취조 경관도 혀를 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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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공'과 반페미니즘이 결합된 이런 반페미니즘 공포는 이 세상 모든일을 페미니즘 탓으로 돌리는 어이없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1930년대말이 되면 교통체증조차 신여성(당대의 의미로 페미니스트)의 책임으로 추궁되는 지경에 이른다.
해방이 되고 전쟁을 지나서 냉전 체제에 이르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나는 이전 칼럼에서 이에 대해 간략하게 서술했다. 자세한 논의는 <<역사적 파시즘: 제국의 판타지와 젠더정치>>나 차별선동에 대한 나의 글을 참조해주시길.
인용을 하면서 다시 논의해보자.
한마디로 역사적으로 제국 일본의 파시즘에서 구축된 페미니즘에 대한 사상전쟁은 냉전 체제에 이르러 더욱 가속화된다.
특히 한국에서 반페미니즘 공포, 페미니즘을 대상으로 한 사상전쟁이 강화되는 건 사실상 국제적 정세나 힘 관계 나아가 한국의 '국력'과 비전이 쇠락하는 시기에 특징적으로 등장한다. (차별선동에 대한 논문 참조. <신냉전 질서의 도래와 증오정치/혐오발화 비교 역사 연구>, <성폭력 부정주의와 대안정동 생성의 글쓰기> 등 권명아 )
<망국병과 여성혐오> 인용
지배 엘리트들이 모여서 정조 삼팔선이 무너진다며 분노하고 좌절하고 망국의 한을 곱씹는 모습은 희극적이다 못해 슬프다. 냉전 한국의 남성성은 거대질서에는 무기력한 대신 그 좌절을 내부의 소수자에게 폭력적으로 전가하는 방식으로 형성되었다.
열강이 지배하는 국제 관계 속에서 국가 주권을 세우지도 못하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다른 전망도 상상력도 상실한 냉전 한국의 통치성은 거세된 남성성을 통해 지탱되었다.
거세된 남성성은 다른 사회에 대한 이념과 상상력이 부재한 자리를 피지배 집단에 대한 폭력적 통제와 규율로 대체하면서 냉전의 통치성을 정당화했다.
무기력한 폭군이라는 이중적인 얼굴을 지닌 냉전 남성성은 국경일마다 상징적이고 의례적인 ‘여자 패기’를 반복하면서 강화되었다. 고질적인 여성 혐오의 역사적 원천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망국이나 사회 위기라는 개념이 여성 신체를 매개로 의미가 만들어졌기에 여성 혐오가 작동할 때 단지 성차의 문제(여성이라서)만이 아니라, 망국적 문제나 사회적 문제라는 다른 차원이 여성 혐오에 결부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 혐오에 근거하여 실제의 성차를 지닌 존재를 공격하고 차별 선동이 이뤄질 때 이들은 대체로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혹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념과 가치를 내세우거나 자기 정당화의 근거로 삼는다.(인용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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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페미니즘 사상전쟁을 '헌법'의 가치를 내세워 주장하는 건 이런 의미에서 전혀 새롭지 않다. 냉전 한국의 '국체'가 반페미니즘을 포함한 사상전으로 지어진 집이라는 건 새롭지 않기 때문이다.
(인용)
----다른 한편 박근혜 대통령 집권 이후 정권 비판과 여성 혐오적인 풍자가 뒤섞이면서 권력 비판의 이름으로 여성 혐오가 정당화되고 있다. 냉전 남성성과 여성 혐오의 연계는 대안 이념이 부재한 보수파의 통치전략과 연결되는 경향이 강했으나, 이제 이 대열에 진보진영도 합류하게 되었다. ‘민주화 이후’의 진보진영이 냉전기 보수 집단의 통치성의 근간인 여성 혐오를 반복하는 건 흥미롭다.
(인용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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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진보>라고 주장한 이들이 어떤 경로를 거쳐서 사상전쟁에 동참했는지 과연 반성할까? 이들은 그저 국힘의 반페미니즘 사상 전쟁을 방관하면서 표 계산을 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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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국가와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이나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상상력과 대안적 이념이 부재한 채 만만한 대상을 향한 조롱과 풍자, 씹기의 쾌락으로 무기력을 정당화하는 여성 혐오의 역사는 무한 반복되고 있다.
한국사의 ‘유구한 여성 혐오 전통’을 살펴볼 때 ‘허영녀와 김치녀의 망국병’을 한탄하고 공격하며 무능을 정당화하는 여성 혐오 생산자들이야말로 ‘망국’의 원천이었다.
광복 71주년을 맞이하여 역사를 살펴볼 때 무엇보다 명확한 역사적 진실은 여성 혐오가 ‘망국’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인용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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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폭력"은 프리모 레비가 수용소, 그리고 수용소 체제에서 인간을 향해 가해지는 폭력의 성격을 설명하기 위해 들여온 개념이다.
낙인찍고 공격하는 것도 모자라서 결국 대상을 불태워 소각하고, 죽음조차도 모욕하려는 시도들
이 쓸모없는 폭력에 대한 기록은 한국의 텍스트 어디를 펼쳐도 오롯하다.
박정희 체제 재평가가 한창일 때 나는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래도 박정희를 좋아했다고 하는데 그럼 왜 그 시대를 기록한 평범한 문학들에는 단 한줄도 그런 기록을 찾을 수 없을까?
쓸모없는 폭력이 무엇인지 사례로 내가 즐겨 인용하는 장용학의 <요한시집>을 다시 들여다보자.
거제 포로 수용소 철조망 앞에서 이 모든 쓸모없는 폭력을 끝장내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료 누혜의 눈을 들고 동호는 외쳤다.
"죽음으로라도 끝낼 수 있는 게 인간의 최소한의 권리 아닌가?"
누혜는 스스로 이 사태를 끝장내고자 했으나 쓸모없는 폭력에 매혹된 이들은 그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끝장내려는 권력의 의지와 살해 충동을 누혜가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공격자들은 누혜의 시체를 끌어내 갈기갈기 찢어발겨서 똥통에다가 처박고
눈알을 꺼내어
친구인 동호에게 들려서
철조망에 며칠이고 서있도록 했다.
본보기로.
<요한시집>, 장용학.
이런 걸 쓸모없는 폭력이라고 한다.
지금 페미니즘 신체는 이렇게 본보기가 되고 있다.
갈기갈기 찢겨져 똥통에 처박히고
살아남은 페미니스트는 죽은 페미니스트의 눈알을 들고
본보기로 벌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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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주 잠깐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그 역사를 '반성'한 적이 있다. 혹은 그런 역사로 되돌아가지 않으려는 다짐들이 '민주화'라는 이름에 새겨있다.
2000년대 집단화된 차별선동의 첫번째 목소리가 '민주화'를 모욕하는 일이었음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이 무기력한 폭군들이 벌이는 쓸모없는 폭력이 무수한 사람들을 비국민으로 몰아 말살하고 소멸하고 짓밟은 역사를 기억한다.
죽음조차 모욕하는 이 폭력이 세월호 사건에서 어떻게 생생하게 작동했는지도.
이제 그 집중 공격 대상이 페미니즘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런 세상이 온 것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은 페미니스트 문제가 아니고
여성에 대한 공격도 역시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이 페미니스트들 문제일 뿐이라고, 여성에 대한 공격이 여성의 문제라고, 그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는 이 폭력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 존재야말로
파시즘, 아니 무기력한 폭군의 쓸모없는 폭력에 동참한
진부하고 지지리 못난 폭력(악의 평범성)의 현재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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