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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의 유물론 및 미투 관련 글 모음

alice11 2018. 4. 25. 13:00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1725


<미투 운동과 함께 하는 학술 공동체의 역할> 토론회에 대해 교수신문 문광호 기자가 자세하게 다뤄주셨습니다. 토론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말에 귀 기울이며 취재해주셔서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토론회가 큰 변화를 만들수는 없고, 그 자리에 기어이 오지 않은 , 와야했던 분들의 태도를 바꾸기에도 역부족이겠으나

그래도, 아니 그래서
거기 모여, 거기 모이기전부터 , 그리고 그 후에도

계속 고민하고 울고 웃고 힘빠지고 화나다가 서로 쳐다보며 한숨 쉬고 어디 하나 아프지 않은 데가 없는 몸과 마음을 일으켜 다시, 계속 나아가는 이들이 서로 힘을 얻고 기대는 자리를 만들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투운동을 해나가는 이들이, 성차별과 구조적 폭력에 저항하는 이들이

누군가에게는 자기도취에 빠진 몽매한 폭군이나 폭도로 보이거나, 페미니즘 붐에 편승하여 기세등등한 날뛰는 집단으로 보이고, 또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피해자성에 봉인된 수동적 '그림자'로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울다가 웃다가, 소리치다 한숨쉬다 하는 모양이 꼭 그리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혼의 투쟁.....

혼의 투쟁에 정동된 몸들이 위협적인 '폭도'로만 보였던 것은 과거의 어떤 역사적 사건에 국한되지 않겠지요.

매일 울다웃다 소리치며 말을 나누다

몸살에 부대끼다 문득.............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38289.html


<나는 거기 없었다와 미투의 발본적 유물론> 한겨레


http://www.hankookilbo.com/v/ed93c84a103b4c7a96b0819a517c81bb


<미투에 고발자 보호와 적폐 청산으로 응답하라>, 한국일보


https://www.koreapas.com/bbs/view.php?id=kutimes&no=9659&ref=1


<나도 당했다는 넘어서 이젠 싸우겠다의 연대>


고려대 대학원 신문







<'위안부' 생존자의 운동>에 대해서도, <## ㅡㅡ내 성폭력 운동>에 대해서도 이를 <피해자성>을 강조하는 운동이라고 설정하고 논의하는 것에 심각한 문제를 느껴왔다. "미투 피해자"보다는 "미투 고발자"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이 일련의 과정이 피해 고발의 반복이 아니라
페미니즘 주체들의 정치적 역량이 커진 실천의 축적(실패를 포함한)이었다고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고대 대학원신문에서 긴 시간 연락을 주고 받으며 말을 주고받고 정리해주셨다.
대학원 시절 오래 대학원 신문과 관련을 맺고, 또 대학원 신문이 담론 정치의 중요한 터가 되었던 시절, 비정규직 페미니스트 논자로 많은 글을 실었다.

대학원 신문이 이제 몇 개 없고. 그 중 하나가 고대 대학원 신문.

부디 오래, 잘 버티시기를!!!!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적 주체화의 역량이 커졌다는 점입니다. 성폭력에 노출되고 대응을 고민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건 ‘역량’이죠. ‘해결할 수 있을까?’라고 자신에게 되묻고, 나아가 주변인, 혹은 사회의 역량을 가늠하는 것 말입니다.

혼자서는 절대 감당할 수 없는 이 문제를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누가 피해 사실을 말하고 싶겠습니까? 피해자는 해결하고 싶어서 말하는 것이지 말하고 싶어서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 점에서 미투를 ‘나도 당했다’로 번역하는 건 좀 맞지 않아 보여요. 미투는 피해를 공론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역량’을 공론화하는 것입니다. 정치적 역량이 성장했기 때문에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있는 거예요. ‘나도 당했다’가 아니라 ‘이젠 싸우겠다’는 것이죠.

앞서 말한 것처럼 이건 비단 서 검사의 폭로로 갑자기 형성된 역량이 아니라, 오랜 기간 여성들이 스스로 되묻고, 실패를 반복하면서 단련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신뢰의 문제 같기도 해요. 내가 뒤로 넘어졌을 때 누가 받아준다고 믿어야 넘어질 수 있는 신뢰 게임 말입니다. 내 옆에 있는 친구만이 아니라 ‘이 사회가 내 싸움을 도와줄 것이다’, ‘날 지지할 것이다’라는 신뢰가 생기는 게 정치적 역량이 성장한 결과이겠죠.”


https://www.koreapas.com/bbs/view.php?id=kutimes&page=1&sn1=&divpage=2&sn=on&ss=off&sc=off&keyword=%B4%EB%C7%D0%BF%F8%BD%C5%B9%AE&tagkeyword=%B4%EB%C7%D0%BF%F8%BD%C5%B9%AE&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6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