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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의 전쟁과 퇴폐 사냥의 극장:마광수의 경우 본문

풍기문란자료

범죄와의 전쟁과 퇴폐 사냥의 극장:마광수의 경우

alice11 2017. 9. 9. 10:49

http://www.hankookilbo.com/v/f16becac35484ad783221d993c7c52a7


가능한 인터뷰를 안하려 했지만, 여러 차례 연락을 주셔서,전화로 긴 논의를 했다. 여러 사안을 반영해서 기사 논조를 잡아서 전해주셨다. 겸하여 인터뷰에서도 전한 몇 가지 사항을 정리해두고자 한다. (인터뷰 내용과 기사는 블로그에 링크되어 있습니다. 범죄와의 전쟁에 대한 간략한 참고자료도 블로그에)

길지만, 페북에 노출하는 게 읽기 편하다는 분들이 많아서. 이렇게. 블로그로 공유하셔도 됩니다. <음란과 혁명> 작업에 마광수 선생님 사건을 다루지 않은 이유가 있었고, 개인적으로 계속 언젠가는 다뤄야겠다라고 생각하던 일입니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는 언급하거나 논의를 보태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간단하게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범죄와의 전쟁과 퇴폐 사냥의 극장: 마광수의 경우>


1. <즐거운 사라> 재판은 풍속 통제 재판의 전형이다. 풍속 통제 재판을 "성표현"이나 "성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문제로 해석하는 것은 '법의 프레임'을 반복하고, 법이 정해둔 담론과 사유 구조를 넘어설 수 없게 만든다.

풍속 통제는 "풍속을 통제한다"는 기본적인 법 이념을 토대로, "선량한 풍속을 침해하는 행위"를 법으로 판단하여 분류, 처벌한다. 이 분류 처벌의 하위 기준의 하나이자 대표가 "성표현" 즉 음란에 대한 판단이다.

장정일 재판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논의했지만, 그러니까 문제는 "음란이냐 외설이냐"가 아니고, 또 "성표현이 해방적이냐 노예적이냐"도 아니다. 물론 이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런 식의 "문제설정"과 "프레임"은 풍속 통제 법제의 자기정당화 프레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풍속 통제 대상이 된 사안이나 사람에 대해 "음란이냐 외설이냐", "성표현이 해방적이나 문란하냐"를 묻는 것은 그러니까, 풍속 통제 법이 행하는 치안의 문법, 즉 자의적인 분류, 처벌의 방식을 정당화하는 논의를 반복한다.

그러니까, 즐거운 사라가 음란이냐 외설이냐, 여성해방적이냐 아니냐를 묻고 따지는 그 자체가 이미 풍기문란 법정의 재판인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결국은 이런 차원에 대한 관심 정도에서 사태에 대한 논의를 반복한다. 그래서 풍속 통제 자체는 사라지지도 비판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문제의 설정과 규정을 정확하게 해야한다.


2. 시대적 배경: 1988~1993 체육관 선거의 형식적 민주주의 시대의 <풍기문란 소탕 작전>

1990년 10월 4일, 윤일병 양심고백 사건, 기무사 민간인 사찰 사건 폭로. 
1990년 10월 13일 특별선언으로 노태우는, "범죄와의 전쟁" 선포. 민간인 사찰에 대한 비등한 여론을 <공동체를 침해하는 강력범죄, 인신매매, 사기, 퇴폐풍조 일제 소탕>으로 잠재우려 시도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1990년말부터 퇴폐 풍조 일대 소탕 작전의 기조가 강해진 것이다.
1945년 시작되어 53년간 지속된 야간 통행 금지는 1982년 해제되었으나, 1990년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유흥업소 심야 영업 금지 조치로 형태를 바꾸어 등장한다. 1991년 <즐거운 사라>가 출간된 것은 운명은 아니다.

마광수 교수가 '소탕 대상'으로 지목되기 시작한 것은 1989년부터이다. 매년 간윤, 공윤과 같은 풍속 통제 기구와의 갈등은 고조되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즐거운 사라>가 1991년에 나온 건 운명이 아니고, 이런 시대 분위기에 대한 반작용이라 할 것이다.

마광수 재판에 대한 온갖 논란들 속에서 많은 이들이 이 시기를 '자유가 넘쳐나는 90년대'로 회고하고 있다는 게 기이하고 문제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오래 된 일이 아니지만, 1980년대와 90년대는 연구와 조사가 아닌, 개인적 회고와 경험에 의해 사실 판단이 내려진다. 지식 생산 주체들이 이 시기를 자신들이 몸소 겪었다는 자만이 강한 결과 개인적 회고가 엄밀한 역사적 판단이나 연구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제야말로 이 시대에 대한 보다 역사적인 해석과 연구가 필요하다.


3. 소탕 작전이라는 연극적 수행성, 소탕 작전의 극장과 선량한 시민의 주체화

풍속 통제의 본질은 <소탕 작전>이다. 한국 근대사는 두 개의 소탕 작전, <빨갱이 소탕작전>과 <퇴폐분자 소탕 작전>으로 구축되었다. 두 소탕 작전은 유사하지만 여러모로 다르다. 이에 대해서는 <<음란과 혁명>>을 참조하시길.

다만 마광수 재판에서, '긴급체포', 대학 강의실로 들이치는 방식은 이런 소탕 작전의 전형일 뿐이다. 소탕 작전은 선동적 방식과 은밀한 방식을 병행한다. 마광수 재판이 가장 선동적인 사례라면, 2016년의 <게이 군인 소탕 작전>은 가장 은밀한 경우에 해당한다.

소탕 작전은 대상자를 공공연하게 모욕하고, 그의 죄를 적나라하게 까발기면서, "자 여기 문란한 자가 있으니 모두 돌을 던지라"라고 사냥 몰이를 진행하고, 찬반논란의 뜨거운 열기는 이 사냥몰이와 소탕 작전의 열기를 높이는 동일한 효과를 만든다. 풍속 통제 재판이 어려운 이유다. 이들은 이미 사냥과 소탕 작전의 과정에서 '여론 재판'을 받은 상태이므로, 법적 재판은 '사후적'이다. 그리고 이런 소탕 작전의 놀라운 '극장성'을 통해 이 작전을 관람한 관객들은 '선량한 시민'으로서의 자리를 부여받게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의미에서 이 <퇴폐분자 소탕 작전>은 지난 시절, 자유와 성적 문란으로 넘쳐난 90년대의 산물이 아니라, 장정일, <게이군인 색출작전>으로 긴급 체포된 A 군인과 여러 게이 군인들에 대한 소탕 작전으로 유유히 전해지는 현재형이다.

그래서 다시 강조하건데, 이 문제는 성표현의 문제도, 표현의 자유 문제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소탕 작전의 제물이 된 대상, 주체, 인간, 책, 사물에 <내재한 어떠한 요인과 특성. 속성>의 문제도 아니다. 매번 문제를 그 대상에 내재한 특성/속성의 문제로 전도시키면서 <소탕작전>을 정당화 하는 것이 풍속 통제의 '법 이념'이다.


4. "아무 뜻도 없어요"
오래 강조해왔지만, 해서 풍속 통제 대상이 된 대상, 사물, 주체, 인간 그 안에는 아무 뜻도 없다. 즉 그들/그것이 풍속 통제 대상, 음란하고 문란한 존재로 법 앞에 회부된 것, 그/그것 내부에 있지 않고, 풍속 통제라는 치안의 작동 논리 바로 그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치안의 작동 논리 내부에 있는 원인을 심판대에 오른 <죄인 안에 있는 것>으로 전도함으로써 풍기문란 법정의 <사냥과 소탕 작전>은 완성된다.

<즐거운 사라>가 최초의 여성 성해방 소설인가 아닌가에 대해서, 답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이유이다. 마찬가지로 마광수가 페미니즘의 우군인가 아닌가 역시 잘못된 문제설정이며, 호사취미일 뿐이다. 이는 <게인군인 소탕작전>으로 처벌당하고 모욕당한 게인 군인들에게 그들이 성해방적인가 착취적인가를 두고 입방아를 찧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호사취미는 그야말로 개인의 표현의 자유 문제인 것이다. 물론 그 질문이 무가치하다는 것은 아니다. 풍속 통제가 작동하는 여러 맥락과 구조에서 이런 질문과 호기심이 자리하는 지점이 그렇다는 것이다.


5. 풍속 통제에 대한 저항의 역사와 대항담론 텍스트

관련한 논란도 많아서, 몇가지 생각을 덧붙여 둔다.


5-1. 마광수의 작품과 사상의 성격 특히 섹슈얼리티 문제에 대해서: 
섹슈얼리티과 신체에 대한 마광수 고유의 주장과 논점은 몇가지로 압축된다.

*생산적 신체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거부
*재생산적 신체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거부
*기독교에 바탕을 둔 서구적 신체 관념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거부

*생산적 신체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거부=노동하는 신체에 대한 사상을 거부하고 비판. 좌파 진보주의 진영과 대립. 민중주의적 신체관과 대립. 나아가 민중주의가 노동하는 신체, 생산적 신체를 강조하면서, 성적 쾌락을 억압한다. 민중주의적인 성 도덕 비판.

하이힐, 긴 손톱, 인위적 화장에 대한 찬미는 여성 신체에 대한 페티시즘의 측면이 분명 존재하지만, 동시에 노동하는 신체에 대한 사상을 거부하는 지점과 연결.

*재생산적 신체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거부: 결혼, 출산 등으로 매개되는 성과 신체성에 대한 사상 거부. 결혼 계약의 신성함, 출산과 가족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집단 비판. '온갖 윤리위원회와 갈등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여성의 성을 보호되어야 하는 것"을 간주했던, 당시의 기독교 여성 단체, 보수적인 '가족, 학부모 주체를 앞세운 여성 단체"와도 충돌. 페미니즘과의 갈등이라고 논의되는 사안은 여기서 도출.

**일련의 작품을 통해 당대 '신촌'으로 상징되는 문화 공간에는 두 개의 대립되는 성적 공간이 만들어졌다. 신촌은 대학가이지만, 오래 성매매 집결지가 공존한 지역이다. 대학가와 성매매 집결지의 공존은 당대 <일동 프러덕션>으로 불렸던 <일동장 여관>의 상징에 집약된다. 일동장 여관이 일동 프러덕션으로 불린 것은 이곳이 '포르노그라피 관람과 유통의 장"이자 "포르노그라피와 성매매가 결합된 생산의 장.프러덕션>이었기 때문이다. 일동 프러덕션은 당대 신촌의 남성 연대의 상징적 장소였고 이 남성 연대의 전통은 한국 사회에 가장 잘 안착하고 받아들여지고 계승되었다. 아주 잠시, <장미여관>은 일동 프러덕션과 대립되는 상징성을 획득해갔고. 이는 성매매와 포르노그라피를 <생산>으로 간주했던 당대의 섹슈얼리티 인식 지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독교에 바탕을 둔 서구적 신체 관념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거부
소설 뿐 아니라, 시와 연구에서 기독교 비판을 줄곧 시도. 기독 학교(미션 스쿨)의 대명사로 당시 간주되었던 연희전문 역사와 정체성과 충돌.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여러 형태의 정치 세력과 충돌.

**당대의 주류 보수 세력 뿐 아니라, 이와 대립하는 진보적 노동/여성 정치 세력, 학계와도 모두 충돌.

이론적 추구에서는 문제가 없었으나, 대중적 활동을 통한 실천에 나서며 전면전이 됨. <연대 교수>라는 당대로서는 신뢰도가 높은 자리를 보루로 실천의 근거지로 삼음. <연대교수>라는 거처가 유일한 실천의 담보였다 할 수 있음.

<연대교수>라는 거처와 담보를 뻇고 지키려는 각축전은 당대의 이러한 맥락과 깊은 관련이 있다.

**마광수의 사상이 아니라, <소설>이나 창작물이 특히 당대의 역사적 맥락을 갖는다는 것은 이런 의미다. 즉 <즐거운 사라>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가자 장미여관으로>는 당대의 자유분방한 성의식의 결과물이 아니다. 오히려, 당대의 섹슈얼리티와 신체를 둘러싼 역사적 헤게모니와 사상과 정치 세력의 역학 관계, 그리고 <사회통념>을 근거로 한 법적 통제의 당대적 역학에 대해 <개입하고 문제시하는 대항 담론>을 구성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의 당대성을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개그콘서트에서 했던 <발레리노>라는 코너의 '의미와 역사성, 대항담론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을 사례로 논해보려한다.

<발레리노>는 배우들이 모두 몸에 밀착된 복장을 입고 <성기가 화면에 노출되지 않게> 무대위의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는 퍼포먼스가 내용이다. 이게 전부다. 그러나 이 퍼포먼스는 현행 풍속 통제에 기반한 검열의 원칙을 조롱하고 검열 논리에 개입하는 대항 텍스트의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특정 도구로 성기를 가리는 퍼포먼스가 무슨 의미가 있냐? 이것은 성해방적이냐?>라고 질문하고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발레리노>가 개입하고 연루된 정치적 투쟁의 장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질문이라는 뜻이다.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역시 마찬가지다.


참고.----------------------------------------------------------------------------------


<1989년의 사회 지표>를 토대로 한 1990년 범죄와의 전쟁, 즉 1013 선언에 대한 다음 백과의 설명


한국은 역사상 유례없는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면서 점점 더 심각해지는 범죄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잔혹한 살인사건, 반인륜적인 가정파괴사범, 어린이 유괴살인, 강도강간사건 등이 잇따라 발생해 범죄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주었다. 한 사회의 범죄현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어렵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적지 않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인 통계를 이용해 범죄현황을 분석하는 수밖에 없다.

통계상으로 볼 때 1988년 한 해 동안 한국의 총범죄발생건수는 97만 2,641건이다. 전체 발생건수로는 1970년의 33만 3,537건에 비해 약 3배로 늘어났으며, 발생률도 약 2배로 증가했다. 이같은 수치는 범죄 발생률의 면에서는 서구의 산업화된 국가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구미나 일본의 경우 전체 범죄 중에서 재산범죄가 차지하는 비율이 90% 안팎으로 압도적인 데 반해, 한국의 경우 그와는 달리 폭력범죄의 발생률이 재산범죄의 발생률을 능가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통상 주요범죄로 분류되는 절도·폭행상해·강도·강간·살인의 1988년 한 해 동안의 전체 발생건수는 23만 9,660건으로 집계되었으며, 이중 살인 601건, 강도 3,446건, 강간 4,658건, 폭행상해 2만 6,018건으로 나타나 범죄문제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살인이나 강도 등의 범죄에서 소년범죄가 차지하는 비율이 거의 줄어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1989년 한국의 사회지표〉). 그동안의 변화과정을 살펴보면 지난 30여 년 간 급증한 것은 강도·강간·폭행 등의 강력범죄이며·강도 중에서도 강도강간·가정파괴사범·강도살인 등의 흉악범죄가 급증했고 인신매매사범도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폭력조직과 마약류 범죄도 크게 증가해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이처럼 범죄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국민들의 불안과 불만이 가중되자 정부는 유흥업소 심야영업 금지조치에 뒤이어, 1990년 10월에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