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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문란자료

1930년 그리고 2017년

alice11 2017. 5. 13. 18:26

며칠 답사 인솔을 하고 겨우 돌아와 몸살져 누워있다.


몸살져서 틀어둔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눈물이 쏟아졌다.


"저도 2017년에서 살아보고 싶습니다."


1930년대의 유령이 말한다. 


실패한 독립투사 영웅담과 전생 서사에 '타락한 문단'이라는 이 시대 3대 트랜드를 결합한 드라마. 


가끔 시간될 때 들여다본 건, 문단 관련한 여러 논의를 꽤 드라마에 반영하려한 느낌이 들어서인데.


드라마는 아무 감흥이 없는데. 


문득, 그는 1930년에서 2017년으로 환생해도 오욕의 삶을 살아야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골치덩어리들>에서 <풍기문란자들>까지, 일제시기에서 현재까지 백여년의 시간을 오가며


이들의 목소리나 경험을 담은 자료를 찾아 오래 헤매었고.


신문지 조각이나, 통제 자료의 문제집단으로만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 만날 수 있었다.


조사 기록도 거의 개인의 프라이버시 때문에 공개되지 않아서,


그런데 문득 그 자료를 만나서, 자료를 읽으며 좀 복잡하고 기이한 느낌이었다. 


목소리가 담긴 자료를 발견했다는 기쁨은 잠시.


그 목소리를 듣고 읽는 것이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주었다.


자료를 만나면 이런 느낌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뭔가 감당할 수 없는 어떤 무게에 압도당한 느낌이다.




통제 자료를 주로 보는 입장이라 그런지


그런 자료에 감정 이입하거나 거기 담긴 인생, 삶, 그런 걸 떠올려보려 노력해온 연구자로서의 습관 때문일까?


그 자료를 읽으며 뭐라 말하기 힘든, 가슴이 답답하고 미어지는 그런 감정이 들었다.


이렇게 모욕당하고, 자기모멸을 곱씹어야 했을 그이에게, 그의 인생에 대해


그리고 변하지 않는 어떤 것들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것에 대해서도. 


홀로 앉아 자료를 찾으며


무수한 세월을 보냈고, 


선거 전후에도 관련 자료를 찾으려 한 시도 쉬지 않았지만


그저 큰소리로 조롱을 퍼부어대는 것만도 못한 일들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자기연민에 눈물을 흘린 건 아니지만. 


마음이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