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alicewonderland

서구와 비서구의 증오정치? 본문

혐오발화아카이브/혐오발화연구자료

서구와 비서구의 증오정치?

alice11 2025. 4. 21. 18:57
박이대승 선생님과는 페친은 아닌데, 페친이신 다른 선생님이 공유해주셔서 보게 된 글. 원글은 따로 공유해두었어요. 같이 공유하면 보기가 어렵더라구요.
실명 비판은 아니고, 제시하신 논의의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는데, 연구자로서 조금 생각을 달리하고, 관련한 생각을 모아보려고 남겨보는 메모.
1. 서구 국가와 비서구 국가에서 증오정치 비교
이건 쉽지 않은데. 단지 서구의 국가나 제도의 특성과 비서구 국가를 비교하면 다소 문제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헤이트스피치 증오정치 비교역사 연구 관련 논문에서도 제시하긴 했는데요.
이른바 서구의 '포용정책'이나 표면적으로 증오정치가 약한 것처럼 보이는 건, 이른바 비서구가 내전, 독재, 학살을 경험한 긴 냉전 시기 동안 이를 대가로 서구는 이른바 "긴 평화"를 구가했기 때문.
오래된 파시즘 연구나 반자본주의적 연구의 당대 지배적 경향에서는 파시즘이 체제화되는 지역이나 국가를 '근대성에 미달'하거나(레닌의 약한 고리론이나), 모순이 과잉결정된 사회(알튀세 개념에 근거)로 보는 식의 문제를 안고 있었고, 이런 관점에 따르면 '모순이 과소결정된 유럽'(역시 알튀세르 개념인데)은 증오정치가 발생할 계기가 많지 않은 것으로 보게됨.
2. 유럽에서 테러시대의 철학에 관한 질문이 다시 등장한 것에 대해
발리바리도 논했듯이, 이제 서구에서도 그런 '긴 평화'는 끝났다.(저는 이 진단에 대해서도 앞서의 논의를 기반으로 비판했는데),
그리고 '우리 유럽'은 지금까지 만나본 적이 없는 새로운 전쟁(발리바르의 글 제목인 '새로운 전쟁에 대하여'임) 혹은 수천년 역사에서 등장한 이질적 전쟁의 기이한 동시병존의 시대를 살게 되었다는 점.
그러니까, 그런 의미의 포용적이고 평화로운 서구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3. 동아시아의 경우
일본은 자이니치를 법적, 제도적, 문화적, 일상적 모든 영역에서 차별하는 데, 박이대승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일본에도 '재특회'와 같이 자이니치 차별과 그 확장태로서 이주민 차별을 앞세운 극우 세력은 등장하지 않았어야 한다. 그런데 등장했고.
4. 한국의 경우
한국은 국가가 법적으로 성차별, 성소수자 차별을 아주 철저하게 수행하는데
여성에 대한 증오선동을 내세운 일베, 신남성 연대가 등장했고.
성소수자 차별을 모토로 내걸고(이와 함께 이슬람 차별을 동반했다는 점에서 인종주의와 이민자 반대가 연결된 주장인데) 특정 종교를 기반으로 극우화된 세력이, 벌써 십년이 넘게 모든 지자체의 인권조례, 청소년 조례, 노동인권 조례를 격파해나가고 있다.
5. 경향, 정치 운동, 국가 체제로서 파시즘의 차이
1990년대 새롭게 등장한 파시즘 연구는 스스로를 '근대성으로서 파시즘연구'라고 하는데, 파시즘과 근대성(자본주의, 차별에 기반한 시민적 노예화 등)이 분리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무엇보다,
근대(후기 근대 역시) 체제는 그 어떤 체제이건 경향적으로 파시즘이 상존한다. 자본주의, 시민적 노예화, 혹은 근대성 그 자체가 '근절'되지 않는 한 파시즘적 경향도 근절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걸 근절하려고 하다가 좌파 파시즘이 된다는 점도)
경향적으로 항존하는 파시즘의 기운이, 정치 세력이 되면 심각해진다. 운동 단체, 조직화, 조직적인 증오선동(헤이트스피치)은 그래서 파시즘이 경향이 아닌 집단적 세력화가 되어 제어하기 어려운 단계가 되었다는 뜻.
2014년 세월호 유족을 조롱하는 일베의 폭식 시위, 퀴어 퍼레이드를 공격한 증오행동주의로서 '맞불집회'의 등장이 한국의 증오정치의 심각한 분기점이라고 많은 연구자들이 보는 이유.
6. 국가와 제도의 역할에 대한 세밀한 비판과 대안이 필요
국가가, 이러한 정치적 조직과 운동으로서 파시즘에 거리를 두는 상태와 그렇지 않은 상태는 파시즘이 그 사회를 위협하게 되거나 제어되는 데 모두 중요한 영향을 행사한다.
해마다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방문하나 안하나, 4.3 항쟁 기념일에 대통령의 연설 내용은 뭔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정치인들이나 대선 출마자들이 어떤 식으로 언급하나가, 그 사회의 세력화된 파시즘을 제어할 수도, '그래도 되는' 것으로 용인하고 인정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의 정당은 형태는 달리하지만, 그래도 민주당을 사람들이 '진보'라고 믿었던 몇 가지 장면들은 이런 파시즘 세력에 대한 형식적인 거부의 포즈라도 취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수 정당은 일관되게 파시즘 정치 세력과 함께 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래도 한때는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고, 광주학살과 군부 쿠데타 세력과의 거리두기에 노력을 해왔다.
이것이 이준석의 여성혐오 선동, 윤통의 반중 선동, 여성혐오 선동ㅡ"여성가족부 해체"(이것은 국가주도의 증오정치 역사에 길이 기록될 역사적 사건이다.)
정치인들이 온라인, 오프라인 파시즘 조직을 국가 권력 내부로 들여오면서, 거의 이승만 시대의 정치로 되돌아갔다. (윤통 이후 한국 정치가 이승만 시대로 회귀한 데에는 여러 복합 변수가 있다.)
이런 국면국면마다의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국가나 제도 자체가 이미 파시즘화되어서 그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파시즘의 유산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은 저도 오래 지적해왔지만
국가나 정부, 제도가 경향적인 파시즘과 조직화된 파시즘에 대해 어떤 스탠스를 취하느냐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이고, 이 지점에 대해 개입하고 변화를 요청하는 것도 여전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건대앞 증오행동주의(헤이트스피치)는, 반중을 내건 인종차별주의가, 거리로 나서서 집단 행동을 시도했고, 물론 이들이 윤통과 그 일당이 조장하는 국가주도의 증오행동주의의 파당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국가, 제도, 정당정치에서 조직화된 파시즘과의 연계, 후원, 동원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 이미 구성된 파시즘 조직들의 세력화를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필요한데,
다들 이야기하듯이 차별금지법, 헤이트스피치 억제법이 일차적이고 기본적인 시작이다. 이게 최종 도착점이 아니라.
현재 대선 국면을 보면, 너무나 상식적인 이 한 걸음이 한국 사회에서는 영원히 불가능할 것도 같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