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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원의 ‘재일조선인 문학사’ 기술의 의미> 본문

대안적 지방담론과 정착민 식민주의

<송혜원의 ‘재일조선인 문학사’ 기술의 의미>

alice11 2025. 6. 17. 10:25
 
<송혜원의 ‘재일조선인 문학사’ 기술의 의미>
1. ‘재일 조선인 문학사’의 딜레마와 대안 문학사 기술
①국문학사 패러다임의 산물인 ‘문학사’를 국가 귀속성으로 환원할 수 없는 ‘재일 조선인’의 문학사로 바꿔 쓸 수 있나
②일반적으로 문학사의 기술 대상에서 벗어나는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갖지 못하고, 문학/사적 판단 기준이 내리는 절대적 권위(그리고 그 권위의 공동체)가 부재함. 내부의 대립과 갈등의 극단화로 문학 공동체라는 것이 부재함) ‘문학’을 문학사의 대상으로 삼을 때의 문제와 딜레마
③ ①에 대한 질문과 방법:국가 귀속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문학사 기술은 어떻게 가능한가
④ ②에 대한 질문과 방법: 문학적 권위(나아가 문학적 해석 방법)에 기대지 않고 문학사를 기술할 수 있나?
송혜원 선생의 저작은 이 딜레마에 대한 연구 방법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대안 문학사를 기술한, 거의 희소한 사례라고(거의 없지 않나 생각하는데) 생각한다.
이 네가지 딜레마와 질문은 한국에서도 ‘문학사 이후’와 관련해서 제기된 것이기도 했다. 노동문학사와 관련한 문제도 그렇고. 퀴어 문학사 역시 마찬가지.
최근 한국여성문학사 기술과 관련한 나름의 논쟁과 정리가 있었는데, 여성문학사 기술의 필요성과 절실성에 대해서는 동감하지만,
실은 ①②의 질문과 이에 대한 대안적 연구 방법에 입각한 대안 문학사로서 여성문학사나 노동문학사는 한국에는 아직 없다.
특히 기존의 ‘문학적 권위와 문학적 해석 방법’에 기대지 않은 대안 문학사는 부재한데, 이는 최근 한국 문학계가 ‘문학연구’로 환원하는 전체적인 경향과도 궤를 같이 한다.
그런 점에서 송혜원의 <<‘재일조선인 문학사’를 위하여:소리없는 목소리의 폴리포니>>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나온 적이 없는 대안문학사, 특히 두 질문에 대한 나름의 연구 방법과 문학사 기술에서의 대안을 제시한 저작이다.
이 저작이 보여주는 중요한 문제의식은 대안적 문학사, 특히 ‘재일조선인 문학사’가 “왜 여성들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하는 연구 질문과 방법에 잘 담겨있다.
이는 소수자성의 문제를 포함하지만 무엇보다 여성의 거주성(기존의 정착 중심 거주 패러다임에서 배제되었고, 그 결과 정착 중심 패러다임으로 환원하거나 해석할 수 없는)의 특이성와 존재론적 거처로서 ‘언어’가 차지해온 역사적 특이성이 ‘재일 조선인’에게 있어 거주성과 존재론적 거처로서 언어와 글쓰기라는 문제와 가장 근원에서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2. 비정착 트랜지언트 사회성과 대안적 문학사
기존의 정착 중심의 거주성을 비판하고 존재론적 거처로서 언어와 글쓰기의 문제를 다루면서, 이 문학사는 기존의 문학사가 어떻게 정주인 중심의 역사서술을 정당화하며, 동시에 ‘문학’이라는 것이 실은 정주성의 규범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점 또한 비판한다.
4장에서 송혜원은 로만 김의 사례로 ‘재일 조선인 문학사’ 연구의 의미를 명확하게 한다. 즉 재일 조선인은 비정착 디아스포라와 식민 지배의 역사의 교착에서 구축된 존재론적 특이성의 다른 이름이며 이들은 정주 중심의 문학과 지식으로 환원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었다.
로만 김은 아버지가 한국 병합에 반대해 러시아에 망명, 일곱 살에 일본 유학, 게이오대 재학중 1917년 러시아로 귀국. 모스크바에서 극동 관련 일을 하고 있어 모스크바를 방문하는 일본 공산당 관계자가 대부분 그의 신세를 졌다고 함.
그의 소설이 일본에 출간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에 정통한 소련 출신의 조선인 작가를 만들어 낸 조선인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일본의 식민지배사의 교착이 존재”함.
따라서 “근현대 조선 문학사를 일본과의 관계만으로는 결코 파악하지 못한다.”
(강용흘의 경우는 미국으로 이주했으나 디아스포라사와 식민지배사의 교착 지점에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게 비교할 수 있다고 정리)
++이 지점을 이렇게도 정리할 수 있는데, 송혜원이라는 걸출한 재일조선인 연구자는 일본 사회에 비판적이며 일본의 국가주의를 비롯한 규범적 질서를 비판하는 대안적 집단이다.
그러나 이들은 동시에 일본 사회를, 송혜원이라는 일본 사회에 내재화되지 않는 이질적인 존재를 내포한 사회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를 최근 학계에서는 트랜지언트 사회성이라고 규정하기 시작했다.
송혜원 선생의 저작은 한국어로 (본인이 직접 번역함) 번역되었지만, 막상 송혜원 선생은 한국 대학에 자리를 잡거나, 일본에서처럼 내재화되지 않는 이질적 존재로 한국사회에 ‘자리잡기’는 아마도 거의 불가능한다.(그건 이 책이 보여주듯이 송 선생의 연구가 북한, 총련의 역사를 체화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일본은 송혜원과 같은 연구자가 ‘있는(재일)’ 사회라면, 한국은 ‘있기 어려운’ 사회이기도 하다. 송혜원 선생의 연구가 한국에서 이른바 ‘한국문학의 디아스포라’로서 재일조선인 문학을 연구하는 일련의 지배적 흐름에 대해 강한 비판을 던지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