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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wonderland
예방과 검열:사전 조치의 희극(부일시론4회) 본문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40929000093
(원문은 위를 참조>
원문을 복사하면 여백이 깨져서, 한글 파일을 올립니다.
[부일시론] 예방과 검열, 사전 조치의 희극
/권명아 동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2014-09-29 [10:50:28] | 수정시간: 2014-09-29 [10:50:28] | 30면
유효성에 대해서는 의학적인 논란도 있지만, 예방 접종은 질병 발생에 대비하는 유효한 사전 조치의 하나이다. 그러나 발생 가능한 질병에 대한 예방 조치가 때로는 과도한 건강 염려증과 감염 공포를 동반하기도 한다. 예방 조치란 개입의 시기와 발생 가능성에 대한 적절한 판단과 분석 능력에 따라 그 효율성과 가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예방 조치가 적절하게 취해지는가, 아니면 부적절하게 취해지는가는 그 사회의 합리적 판단 능력과 분석 능력을 나타내는 근본적 지표이다. 물론 합리적 판단 능력과 분석 능력이 있을 때만이 예방 조치라는 것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사전 조치에 대한 판단 능력과 적절성이라는 차원에서 최근 부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 개의 사건은 참으로 흥미롭다. 하나는 ITU(국제전기통신연합) 전권회의와 관련하여 에볼라 감염 사전 조치 논란이며, 다른 하나는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예정작 <다이빙 벨>에 대한 상영불가 조치 논란이다.
<다이빙 벨>과 에볼라, 사전 조치가 필요한 영역은?
10월 20일부터 열리는 ITU 전권회의는 정보통신 기술 정책 논의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전 세계 193개국에서 참가자들이 모이기에 여러 다양한 절차와 사전 조치들이 당연히 필요할 것이다. 특히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면서, 이에 대한 사전 조치를 부산의 시민 단체들이 요구하고 있다. 먼저 전제를 하고 싶은 것은 몇몇 보도나 성명에서 ‘에볼라 발병국’ 참가에 대한 우려라는 식의 표현이 자주 사용되는 것은 문제적이다. 특정 지역이나 국가를 그저 ‘에볼라 발병국’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지나치게 폭력적이며 인종차별적이기 때문이다. 일본을 ‘피폭국가’로 부르는 것이 폭력적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질병 감염에 대한 사전 예방 조치를 철저하게 수행하는 것은 국제회의를 주관하는 국가와 지방 정부의 기본적 역할이자 책임이다. 그런데도 ITU 전권회의 주관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는 국제회의 참가자들에게 이러저러한 사전 조치를 할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수수방관하고 있던 부산시는 논란이 커지자, “미래창조과학부와 협력해 에볼라 바이러스 발병국에 참가자 수를 최소화해 줄 것을 요청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예방 조치가 부산 시민의 안전에 대한 기본권을 보장하는 문제임에도 이를 책임질 부산시의 대응은 참으로 느긋하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다이빙 벨> 상영에 대한 부산시와 부산시장의 대응이 매우 기민하고, 집요하고, 적극적인 점을 전권회의에 대한 질병 예방조치와 비교해볼 때 이 대비는 더욱 흥미롭다. 국제영화제 참가작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상영불가 압력을 넣는 것은 부당한 검열이며, 사전 조치라는 의미에서 사전 검열에 해당한다. 사전 조치를 취할 질병 예방에는 무관심하고, 시민의 판단에 맡겨야할 표현의 자유에는 적극적으로 사전 조치를 취하는 이 역설적 태도는 실상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부산시, 시민 기본권 지켜야 할 책임 안 지켜
2012년 제정된 <부산광역시 인권 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를 보면 부산시(3조)와 부산시장(4조)은 “시민의 인권 보장과 증진을 위하여 인권 보장 및 증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할 책임을 지닌다. 안전하게 살 권리와 표현의 자유는 인권의 기본이다.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질병과 재난에서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사전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부산시와 부산시장의 기본적 책임이다. 마찬가지로 부산 시민들이 다양한 사상과 예술의 표현의 자유를 구가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이에 반하는 일들을 조사하고 예방하는 것 역시 부산시와 부산시장의 기본적 책임이다. 따라서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사전 조치에 무관심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에는 적극적인 부산시의 행위는 부산시민의 기본권을 지켜야 할 자신의 최소한의 책임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이 조례가 아직 폐지된 것 같지는 않다. 있는 조례도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라면 부산 시민은 도대체 기본권을 지켜달라고 누구에게 요구해야 하는 것일까? 사전 조치의 적절성에 대한 부산시의 합리적 분석의 초점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합리적 판단 능력의 여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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