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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스파이단의 신화

alice11 2021. 5. 14. 11:41

學良의 여 스파이 열차에서 체포

―편의대와 연락코 잠입 도중 소지 탄환 2천여 발

7일 오후 8시 25분 봉천 착 열차에서 괴상스러운 중국 미인 한 명이 있는 것을 발견한 봉천서원은 즉시 취조를 명한바 이는 북평 출생 황모로서 갖고 있는 큰 트렁크 속에는 장총 탄환 일천 수백 발과 의복 속에 또한 팔백 발의 소총 탄환을 갖고 있는 것이 발각되었다. 취조의 결과 그녀는 산해관으로부터 승차하고 봉천 방면의 편의대와 연락을 취하고자 만주국에 잠입한 학량(學良)의 녀 〈스파이〉인 것이 되였는데 그 대담한 행동에는 취조 경관도 혀를 채였다고 한다.

“학량의 여 스파이 열차에서 체포”, 〈매일신보〉, 1932년 10월 12일자.

1930년대 초반부터 조선에서는 여자 스파이에 대한 담론이 팽창하기 시작합니다. 당대 조선 사람들 중 실제로 여자 스파이를 만나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또 실제로 유태인을 만나본 사람은 몇명이나 될까요?

실제 여자 스파이나 유태인을 만나본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이지만 담론장과 미디어에는 위협적인 여자 스파이단에 대한 이야기와 유태인의 세계 장악 음모론이 널려있습니다.

당대 글을 읽고 영화를 볼 수 있던 사람들은 만나보지도 못했던 여자 스파이와 유태인에 대한 공포를 이러한 담론을 통해 몸에 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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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거리로 출발한 여자스파이에 대한 이야기가 전시동원체제를 만나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이제 여자 스파이는 잡지 속에서 나를 노려보는 게 아니라, 실제 <내 곁에 존재하는 실질적 위협>으로 전환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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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스파이 담론이 퍼져나가고 실제로 위협과 공포가 확산되는 과정은 한편으로는 전시동원 체제와 당대 역사적 파시즘 체제가 여성혐오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자 스파이 담론은 여성혐오만이 아니라 흥미롭게도 당대 대동아의 이념이라는 것이 자신을 <여성화>하는 방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즉 파시즘 체제는 자신을 세계 질서 속에서의 <약자>로 표방하면서 스스로를 <여성화>하는 형태를 취합니다. 그리고 전쟁은 <강한 남성성을 박탈당하고 여성화된 국체>를 다시 <남성화>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파시즘은 스스로를 여성화하고, 동시에 여성화된 국체를 부정하고 혐오하면서 이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공포와 적대감을 양산합니다.

즉 <과거에는 남성적이던 국체>가

<현재에는 여성화된 몰락한 신체>가 되어버렸고(몰락과 파국이라는 자기서사)

<여성화된 신체를 재생해서 남성 신체를 회복해야 한다는 강박>이 여성 신체와 사회의 여성화에 대한 강박적인 공포와 적대감을 만듭니다.

이런 방식은 냉전 한국에서도 반복되었고 박정희 정권은 이를 군사 작전으로도 공식화했습니다.

이런 긴 역사는 영화 <쉬리>에서 잘 드러나듯이 여성 신체 자체를 겉과 속이 다르고, 몸 안에 남성을 파괴하는 폭탄을 숨기고 있으며, 언제나 거짓으로 일관하는 <가짜 시민/가짜 국민>이 될 우려가 있는 존재로 표상하는 방식으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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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모든 곳에서 여자 스파이-메갈, 페미니즘 국가 장악 음모를 발견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이러한 한국의 도저한 가짜 국민 사냥과 그 사냥이 여성화되면서 실제의 여성에 대한 사냥으로 이어졌던 그 역사를 정확하게 반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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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파시즘>>에서는 여자 스파이 담론에 대해서 이렇게 분석한 바 있습니다.

스파이 담론이 특정한 여성성을 전유하는 것은 몇 가지 복합적 문제와 관련된다.

첫 번째는 스파이 담론은 ‘대동아’라는 새로운 제국의 신체를 구축하고 상상하는 과정에서 대동아 신체의 오염, 훼손, 경계의 무너짐에 대한 공포를 반영한다.

황민화로 구축되는 대동아의 신체는 전방을 ‘청년’의 남성성으로, 후방을 ‘총후 부인’의 여성성으로 구성한다. 이때 스파이란 ‘총후’, 즉 후방의 경계를 흐트러지게 함으로써 사회체 전체를 무너트리는 위험한 존재다. 따라서 일차적으로 스파이 담론이 여성성을 전유하는 것은 ‘후방’의 여성성과 관련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스파이 담론이 여성성을 전유하는 것은 대동아 신체와 ‘좋은 일본인 되기’가 지닌 모순과 관련된다.

좋은 일본인의 반대편에 있는 가면을 쓴 ‘협력자들’, 즉 정체불명의 집단들의 경계는 불확정적이고 모호하게 증식한다. 이러한 무규정성과 경계를 넘나드는 정체성의 모호함이 스파이 담론을 여성성과 결부시킨다.

즉 스파이 담론이 여성성을 전유하는 것은 ‘스파이’의 무한 증식하는, 동시에 모호하고 불투명한 경계의 확장과 스며듦이 여성성(특히 여성 신체의 의미)과 결합되기 때문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스파이 담론이 여성성을 전유하는 것은 무한 증식하는 내부의 적을 생산하는 대동아의 신체the body of ‘Great East Asia’의 반영인 것이다.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의 구상은 군사력의 확대와 이에 기반을 둔 영토의 확대(팽창주의)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남성성을 강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동아공영권의 구상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일본 제국을 ‘백인종의 압제’에서 아시아 민족을 해방하는 구원자로 표상하는 동시에,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를 약자의 위치로 전도하는 모순적인 이념의 혼종태다.

이러한 성격은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즉 ‘대동아’라는 새로운 사회체에 대한 이념은 표면적으로는 남성성을 강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끝없이 여성화하는 모순을 보여준다.

이는 총력전의 이념이 약자의 정치학을 표방하고 있는 점과 관련된다. 또한 역설적인 것은 독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파시즘 체제 역시 스스로를 여성화하면서, 여성화를 부정하고 혐오하는 이중적이고 모순된 이념을 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파시즘 정치학과 이에 토대를 둔 사회에 대한 재구성 과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파시즘 정치학이 지속적으로 사회 정화에 대한 강박관념을 동반하는 것은 이러한 자기 정체성의 혼종적이고 모순적인 성격과 관련된다.

파시즘 정치학은 항상 스스로를 부정하는 모순적 현상을 보인다. 즉 파시즘 체제하에서 사회의 여성화가 부정적 현상으로 비난되고, 특정한 여성 정체성 그룹이 절멸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단지 사회가 남성화되는 일면적 원인에서 비롯되거나 사회의 남성화라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파시즘의 정치 이념이 사회에 대해서건, 개개의 인간들에 대해서건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을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자 스파이단에 대한 신화 역시 파시즘이 스스로를 여성화하면서 사회의 오염, 침투 가능성에 대한 공포를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강건한 사회를 구축하는 남성성을 강조함과 더불어 스스로를 약자/여성의 위치와 동일화함으로써 이러한 절멸의 기획을 정당화하는 모순된 정치 이념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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