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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서학의 정동들 본문

여성주의역사학/여성주의대안기념

완서학의 정동들

alice11 2021. 10. 4. 14:14

어제, 완서학 심포지엄은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요즘 제가 페북도 못할 정도로 너무 일이 많네요^^.

그간 연구소 행사 홍보 후기를 제 페북에서 열심히 했었는데, 워낙 일이 많아서, 줄일 수 있는 건 페북 뿐이라 의지는 아니지만 여력이 안되긴 합니다.

다들 힘드실터인데...'나도 힘들다!'는 아니구요. 연구소 사업 하는게 정말 투잡 인생이라서...

어떤 프로그램에서 지방에서 기업하시는 분이 기업 연구소에서도 지방에서 사람을 구할 수가 없어서 서울로 가거나, 문 닫아야 하는 형편이라고 하시는 걸 보고, 이게 학교만의 문제는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자주 못뵙는 사정을 몇자 적어보았습니다.

어제 학술대회하면서 토론 메모 한 걸 조금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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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서학을 제안한 게 몇년 전인데요.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뭔가 자연스럽게 이런 이름을 쓰게 되었습니다.

완서학은 단지 박완서 연구만은 아니고, 또 박완서를 ‘신화’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박완서의 작품과 그 해석을 세계에 대한 삶-사유의 원천으로 구축해보려는 방법이라 하겠습니다.

유사한 사례로 제임스 조이스, 발자크 역시 소설론의 대상이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는 하나이 사유 원천이라 하겠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도 그러하고 저도 참여할 기회가 있었던 에밀 졸라학 역시 그런 방식의 <새로운 학>을 창출하는 방향을 보여줍니다.

시몬느 보봐르가 서구 페미니즘 사상의 삶-사유의 원천이라면 비서구, 한국 사회 경험에 기반한 페미니즘 사상의 원천을 완서학에서 길어올리면 어떨까 그런 고민을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또 박완서 문학에는 세계에 대한 사유 체계가 변하지 않고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고 나아가 삶과 사회가 변하지 않고는 볼 수 없는 감각, 의미, 이야기로 충만합니다.

<몸-살의 카르토그라피>

1부는 주로 신체의 카르토그라피를 주제로 죽음을 되기로 사유하기, 포스트 휴먼 시대 노년에 대한 재구, 수술대 위의 신체('낙태'의 어셈블리지)라는 서로 다른 주제로 권영빈, 김영미, 차미령 선생님이 발표해주셨습니다.

죽음을 삶의 끝이 아니라, 되어감이라는 차원으로 보자는 죽음의 정치(브라이도티)의 문제의식 뿐 아니라 시체의 관점에서 세계를 재구성하는 방식에서 신체는 죽음, 시체, 산 죽음,이라는 부정적 형상을 통해서 오히려 생산적 역량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는 해석도 흥미로웠습니다.

김영미 선생님은 포스트휴먼 시대 새롭게 부상한 노년 담론과 대비를 해주시면서 박완서 문학을 통해 노년에 대한 새로운 사유 체계를 만들 가능성을 탐구해주셨습니다.

차미령 선생님은 조선시대에서 최근까지 이른바 '낙태'를 둘러싼 어셈블리지의 변화를 '인간의 조건'(이른바 인간으로 인증되는 조건)으로서 재생산 정의 관련 분석의 패러다임으로 제시해주셨습니다.

발표와 토론을 들으면서 박완서 문학에서 초기부터

몸body이 ‘나’라는 동일성의 주체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부대낌의 정동적 존재론이 몸을 점령하고 있는 이질적 살들-죽은자의 살, 태아의 살, 삼켜버린 살, 살들과 ‘몸’의 부대낌으로 나타난다는 걸 다시 생각했습니다.

<피해자의 수치, 공범자성>

박완서 문학에 항상적으로 나타나는 이른바 '공범자의식'에 대해서도 다양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를 학살 생존자, 성폭력 생존자들에게 나타나는 수치를 연구하는 맥락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해왔습니다. 즉 피해자가 스스로를 수치스러워하는 (프리모 레비) 수치와 학살의 관계에 대해. 이는 박완서가 공모자로서 왜 실제 권력적 위치의 남성(남편)이 아닌 여성들 사이의 권력 관계에 집중하는가와도 관련되지 않을까 하는 토론도 이어졌습니다.

<여성 경제주체의 '미망'과 처벌, 여성의 일이라는 할당의 형성>

오자은 선생님 발표는 박완서 문학 연구에서도 현재 나름 치열하고 팽팽한 대립을 보이는 아젠다에 대한 굉장한 논의를 제시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또 이른바 기존의 '중산층 의식'이라는 관점으로 여성서사를 분석해온 방식에 대한 발본적 비판이고, 노동문학 중심의 노동 연구에 대한 꽤나 강한 비판이셨습니다. 저는 너무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박완서를 통해서 꼭 해보고 싶던 주제였는데 오자은 선생님 연구를 보고, 저는 오자은 샘 연구를 열심히 보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박완서의 장편 <<도시의 흉년>>에서 '엄마'인 김복실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나 극복의 대상으로만 해석되었습니다. 오자은 샘 논의를 잠시 인용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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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실의 몰락은 이자 놀이나 곗돈 놀이, 복부인 같이 사적 영역으로 의미화되는 ‘투기’, 전통적인 ‘장사’, 음성적 경제 활동 속에서의 여성 경제 주체만을 용인하는 사회적 이중성이 어떻게 김복실을 끌어내리는 지를 상징적으로 함의한다. 따라서 변화하는 근대적 경제 체계에 적응하려는 김복실의 자기변신의 욕망은 결국 승인되지 않는다.

(중략)

여기에서 이 처벌은 상당히 복잡한 심층을 갖는다. 어떠한 수치심이나 죄책감 없이 ‘양색시’ 여성들의 섹슈 얼리티와 여성 미싱공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던 약탈적 여성 경제 주체로서 그녀의 몰락은 어떻게 보면 그 허위와 수탈에 대한 일종의 대가라고 읽힐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사실상 다른 방법으로는 여성 혼자의 힘으로 중산층으로의 경제 전이가 불가능했던 시기의 상향적 생존법이었다는 데에서 비극이 발생한다. 동시에 그 상향적 생존법마저 그 임계치 이상을 초과하는 순간 국세청 세무조사, 남편, 전무, 공장장, 기사 등, 남성의 얼굴을 한 세계로부터 완전히 제압당하고 마지막 남은 도덕적 근거마저 ‘불륜’으로 파탄난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생각해 볼 지점이 있다. 빈집의 비단 이불을 훔치고 양색시 포주로 여성들을 착취했으며 포목주단 장사꾼이 되어 여공들을 부리는 약탈의 연속적 행위 자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제제 없이 용인이 되었다는 점이다. 김복실이 본격적으로 처벌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시점은 그녀가 그럴듯하게 사업장을 기업화하고, 경화 아버지처럼 세련된 남성 사업가의 풍모를 흉내내며, ‘여성 가장’의 자리를 차지하고 가내의 지배권을 독점하려는 욕망을 드러낸 순간부터이다. 결국 그녀에 대한 처벌은 선택적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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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혁, 한경희 선생님 발표 역시 지금 논쟁중인 박완서 문학의 '정치 의식', '중산층적 의식으로의 편입과 번복' 등 중요한 논쟁을 꽤나 도전적으로 제기해주셨습니다.

이선미 선생님은 최근 박완서 작품을 통해서 마음의 공론장 관련해서 연속 작업을 하고 계시고 그간 별로 주목되지 않았던 작품을 관련 주제로 살펴보시는 흥미로운 발표를 해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토론을 하면서 이런 질문을 제기해보았습니다.

중산층, 중산층적 이라는 범주는 여전히 해석적으로 유효한가?

허위의식 역시 의식의 변증법이나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소박한' 범주일 뿐이기도 하고, '중산층 계급 의식'과 같은 범주로 작가나 텍스트를 분석하는 건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도 상당히 도식적인 '스탈린주의적 분석틀'이라고도 하겠습니다.

의식의 변증법이나 의식화, 의식 주체 중심의 이른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이론틀이 이행의 유물론, 신체의 유물론이나, 계급 범주로 환원되지 않는 여러 행위자성을 규명하고 발명하는 방향으로 이미 오래전에 전환되었다 하겠습니다.

헌데 최근 유독 여성 작가나 페미니즘 텍스트에 대해서 이런 철지난 '계급의식의 한계"를 비판하는 분석이 등장하는 건 흥미롭고 징후적인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1970-80년대 본격적인 개발독재나 ‘중산층 형성기’라는 규정을 그대로 해석 범주로 사용해도 좋은가? 소설 분석에서 ‘의식의 주체’의 관점은 여전히 유효한가?

언어-말할 수 없음에 대한 분석은 여전히 의식의 주체의 관점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을까?

이런 토론을 해보았습니다. 오자은 선생님은 이런 문제의식을 토대로, 또 중산층, 의식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도 바로 그 개념과 패러다임의 한계, 혹은 그 개념이 어떻게 여성 주체에게 '처벌적 권력'이 되는가를 일련의 연구로 증명해나가는 '도장깨기' 중이시구나, 새삼 느끼기도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