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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시민', '구조적 차별은 없다'가 통치성의 언어로 쓰이면 헤이트스피치가 된다고 비판하는 이유 본문
'선량한 시민', '구조적 차별은 없다'가 통치성의 언어로 쓰이면 헤이트스피치가 된다고 비판하는 이유
alice11 2022. 3. 31. 10:17
http://ablenews.co.kr/AbleNewsJoin/DoumNara/Content.aspx?NewsCode=522
"선량한 시민"이라는 규정이 한국에서 역사적 파시즘 체제에 형성되어서 파시즘 법제와 통치성을 어떻게 구성했고 그게 오늘날 변용 생성되는 과정에 대해서 제가 여러 책과 논문으로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좀더 자세한 사항은 그 책과 논문을 기회가 되신다면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헤이트스피치 연구에서 많이 지적하는 게 오늘날 헤이트스피치는 '명시적 표현'이 아니라 더 함축적이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몸을 바꾸고 있습니다.
헤이트스피치는 모욕적 표현만도 아니어서, 차별을 선동하거나 차별을 정당화하고 나아가 그런 편견을 널리 퍼트리는 담론이나 행위를 포괄합니다.
또 이렇게 범위를 넓게 잡아서 단지 법적 제재 범위를 한정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가는 개념으로 상정해야 한다는 게 연구자들의 논의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통치성으로 헤이트스피치를 활용하는 건 앞서 말씀드린 제노사이드 방지 협약으로 상징되는 '국가'와 국가 책임자들의 책임과 자격인정과 관련한 국제적인 '사회적 합의'의 문제로서 국가의 책임과 관련됩니다.
책임, 바로 그 책임입니다. 파시즘은 차별과 증오선동을 통치성으로 전도해서 적극 활용했고 그게 전부이기도 합니다. 또 이런 증오정치는 실제로는 매우 경제적 이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파시즘이 세계 대공황의 산물이며(글로벌 자본주의가 파시즘 발생의 제 1요인입니다.) 일국 단위에서 이 경제적 위기를 극복할 수 없는 막장에서 그 '통치성의 무능력' "국제적인 경제 위기를 해결불가능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활용한 것입니다.
또 파시즘의 증오정치는 증오선동을 통치성으로 적극 수용하면서 이 과정에서 증오정치를 '합법화'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다시 증오선동을 동원합니다.
이 과정에서 '책임'에 대한 전도(증오정치의 타겟 집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와 이런 전도를 법으로 정당화하는 정교화 과정이 동시에 진행됩니다. 이런 증오정치의 작동 메카니즘을 통해 '모든 게 자기 책임'이 되어버립니다.
오늘날 각자 자기가 알아서 생존해야 하는 세계가 도래한 게 신자유주의 문제라고도 하고, 이 신자유주의 첫번째 버전이 역사적으로 파시즘이 출현한 세계 대공황의 시대였습니다. 우리는 두번째-새로운 자유주의 시대의 문제를 겪고 있고, 그래서 첫번째 자유주의의 회로, 글로벌 자본주의-세계대공황-세계대전-파시즘-세계대전의 역사적 경험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전 인류가 골몰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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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량한 시민을 볼모로" 강제 진압을 요구할 수 없다
전장연 시위가 "선량한 시민을 볼모로" 이뤄진 것이라서 경찰이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발언은 현행 집시법에 비춰도 맞지 않는 언표입니다. 현재 집시법에는 시위에 대한 경찰 개입 기준에 "선량한 시민"과 관련한 규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있었다는 의미지요.) 그런데 많은 이들이 '그렇지'라고 생각하는 건 그만큼 한국 사회에 "선량함을 위반하는 시위"에 대한, 그런 시위는 강제적으로 진압되어야 한다는 '무의식'이 지배하고 있고, 그걸 누르면 언제든 표출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2. 비문명적 집회라는 규정은 어떻게 차별 구조를 무화시키고 책임을 '당사자'들에게 전가하나: "자기책임"과 양형기준
차별을 철폐하고, 20년간 미뤄온 약속이라도 지키라는 전장연 시위는 '집회 방식'을 둘러싼 논란으로만 담론장을 도배했고, 이렇게 되도록 한게 이준석 대표의 이른바 '저격글들'이 촉발한, 담론수반효과(버틀러)입니다.
1. 집회 방식이 문제니까 강제진압해도 좋다.
2. 저렇게 집회하니까 민폐가 된다, 이기적이다.
3. 시위 방식을 고수할것이냐 아니냐.
이런 방식은 헤이트스피치가 매우 전형적으로 활용하는 '가짜 딜레마 생산' 방식이다. (관련해서 여러 사례를 <신냉전 질서의 도래와 혐오발화 증오정치 비교역사적 연구)에서 살펴봄)
1. 구조적 성차별이 아니라, 여자 처신문제라는, 구조적 성폭력의 경우
'여자가 평소 꼬리쳤다', '빌미를 주었다'는 식으로 구조적 성폭력이 피해자 책임으로 전가될 때, 권력형 성폭력을 만드는 구조는 담론장에서 사라지고, '여성의 처신'(간통녀냐, 상간녀나, 꽃뱀이냐, 사주를 받았냐가 담론장을 차지한다.)
2. 구조적 차별이 아니라, 시위 방법이 문제라는
왜 꼭 시위를 하는거냐, '문명인답게' 말로 하면 될 거 아니냐, 너네가 그러니까 야만적이라는 거다. 욕먹어도 싸다.
3. 구조적 차별이 아니라, 졸았으니 네 탓이라는: 산재 사고의 경우
아무리 밤샘 근무를 했더라고 다른 근무자는 사고를 당하지 않았는데, 작업하다가 졸았고, 그건 본인 책임이니까 그걸 사측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산재라고 하긴 어렵고 사측은 '도의적' 책임 정도만 느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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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단지 말로 떠드는 데 그치는게 아니다.
이런 차별선동은 실제, 오늘날 거의 유일하게 피해자 '구제 기구' 역할을 하고, 앞으로는 더욱 배타적인 유일한 '구제기구'가 될 법 앞에서는 '양형기준'을 가르는 결정적 문제가 된다.
1. 왜 그토록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무고'가 되거나, 직장내 성폭력이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오늘의 법 앞의 현실. 차별이 법 앞에서도 시정되지 못하고, 차별은 현행 법으로 시정도 안되고, 이렇게 피해자의 자기 책임을 드높이 외치는 '사회통념'이 강화되면, 결국 피해자는 피해를 법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양형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또 피해가 아닌 결국 자기 책임을 넘어서 오히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전도가 발생한다.
"선량한 시민을 볼모로"라는 말이 만드는 효력이다. 이 말이 전장연을 가해자도 아닌 범죄자로 만들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성폭력 피해자가 "범죄자" 취급을 받거나 실제 그렇게 처분받는 경우도 허다하고
학교 폭력에서 오래 피해를 참아온 학생이 분노를 참지 못해서 대항했다가 거꾸로 '폭력 가해자'가 되는 일도 허다하다.
Excitable Speech 격분시키는 말에 대해 헤이트스피치 연구가 집중해온 이유다. 서로 다른 대응 방안을 내놓은 버틀러와 레타나 살레츨 모두 격분시키는 말이 헤이트스피치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이 격분시키는 말은 명시적 표현에서는 어떤 증오나 공격의 표지가 없지만 구조적 차별의 피해의 가장 심층적인 지점을 가격하는 말이다. 한국에서 이런 의미의 가장 대표적인 격분시키는 말은 "네탓이야" "선량한 피해자가 아니다", "남탓하지 마라", "피해자 코스프레하지 마라", "민폐, 이기적이다"와 같은 말들이다.
미국은 수정헌법에 의거 이 격분시키는 말을 헤이트스피치로 규정하여 '표현의 자유로 인정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살레츨)
(이 탐라에 도대체 국힘이 무슨 혐오를 표현하냐고 진지하게 계속 포스팅하시는 '진보 좌파분들' 때문에라도 글을 남겨둔다. 페미니스트들이 '여가부 폐지"가 차별선동이라고 그렇게 몇달을 싸우고 있고, 전장연이 이렇게 싸우고 있는데, 무슨 혐오가 있냐는 그런 감각이 진보의 감각인지 참으로 놀랍다.)
2. 시위 방법을 도구 삼아서 장애차별 철폐 운동을 진압해온 역사는 길다.
이에 대해서는 첨부한 2020년 대법원 판결에 대한 희망법 최현정 변호사의 글을 같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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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7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활동가가 집시법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지 3년 만에 대법원에서 일부 무죄를 확정받았습니다. 유죄 부분에 대한 10여 개월의 징역과 이에 대한 집행유예도 확정되었습니다.
검찰은 집시법위반(미신고집회주최), 일반교통방해, 업무방해 등의 형법 규정을 적용하였습니다. 그 중에는 2014년 4월 20일 미신고집회주최 혐의도 포함되었습니다.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맞아 약 200여 명의 활동가와 시민들이 장애인 시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 모였던 날입니다. 그날 모인 이들에게, 경찰은 법률을 어기면서 최루액을 분사했습니다. (관련 글 보기)
검찰은 그 6일 전인 2014년 4월 14일의 기자회견 개최에 대해서도 집시법위반(미신고집회주최)으로 기소했습니다. 3급 뇌병변장애인 송국현 씨가, 당시 장애등급 2급까지만 지원되던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혼자 지내다가 화재 사고를 당한 다음 날이었습니다. 이날 활동가들은 국민연금공단 앞에 모여서,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송국현 씨에게 긴급지원을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송국현 씨는 긴급지원을 받지 못했고, 그로부터 사흘 후 새벽에 사망했습니다. (관련 글 보기 – [세상읽기] 아직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 홍은전)
나머지 공소사실도, 교황이 장애인 수용시설에 방문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뜻을 알리기 위해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하려고 하거나,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집회 등에 참여하였다가 주거침입, 일반교통방해 등으로 기소된 것들입니다.
전체 7건의 공소사실 중 3건은 무죄, 그보다 많은 4건이 유죄로 확정되었습니다. 희망법은 박경석 활동가를 변호하면서, 공소사실들은 헌법 제21조가 보장하는 평화적 집회이거나 긴급 집회로서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형벌 조항을 지나치게 넓게 해석하여 집회 참가자들을 기소하고 유죄로 판단하는 것은 집회 참가자를 위축시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합니다. 반대로, 평화적인 집회를 방해한 경찰을 형사 처벌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관행은 국제인권기준에도 어긋납니다.
일단 기소되면, 집회의 원인이 된 사회적 불평등과 불합리는 단지 양형 사유(정상 참작 사유)로만 고려되기 쉽습니다. 아쉬움이 남아, 박경석 활동가의 최후 진술 전체를 직접 인용합니다. 박경석 활동가가 싸워 온 현실, 집회를 통해 알리고자 한 문제가 무엇인지, 다소 길게 느껴지시더라도 끝까지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박경석 교장 선생님 글은 원문에서 꼭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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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산재 사고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맞아서, 안전권에 대해 더 많은 논의가 되어야 할 때이다. 법 제정에도 불구하고 그간 산재를 어떤 식으로든 노동자의 책임으로 전가한 구조는 견고하다.
성차별, 장애차별, 계급 차별 서로 다른 맥락을 갖고 있지만, 이를 강화하고 이 차별을 구조적으로 정당화하거나 차별을 선동하는 헤이트스피치는 공통적 원리를 갖고 실행된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통치성을 빙자한 발언과 <비문명적 시위로 선량한 시민을 볼모로 하고 있다>는 또다른 통치성을 빙자한 발언은 그래서 '법'(양형기준)을 활용해서, 기존의 차별 구조를 더욱 강화하고, 차별을 철폐하고 개선하려는 그간의 제도적 실천을 무화시키는 담론 수반 효과를 강력하게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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