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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wonderland
집합적 표상에서 존재의 단수성으로,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나아가기 본문
페미니즘의 도래는 기존의 '운동'의 어떤 막장과 함께 했다. 그 막장은 한국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적인 보편성을 지닌다.
랑시에르에서 무페, 낭시에서 아감벤까지 여러 이론가들이 '정치적인 것'이 막장을 고한 이후 '함께 함'이라는 말을 과연 꺼낼 수 있나 고민한 이유다. 꼬뮨 혹은 꼬뮤니즘에 대한 이들 이론가들의 고찰은 바로 정치적인 것과 '함께 함'에 대한 이론과 현실의 어떤 막장을 사유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리고, 페미니즘이 도래했다. 누군가는 페미니즘은 '여성들끼리' 하는 일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운동권'을 배제한 페미니즘을 논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여럿이 교차하는 정치라고도 한다. 갈등도 커지고 대립과 라벨링도 격화되었다.
이 책에서 <꼬뮨>의 종말과 페미니즘의 도래를 연결하는 건 "운동" 이후의 "불가능한 운동"으로서 페미니즘을 해석하고 사유하는 한 시도이기도 하다.
낭시는 블랑쇼를 빌어서 불가능한 공동체란 "작업"이나 기획이라는 사유와 범주를 넘어서야 한다고 했는데, 조금 일상적 어법을 빌자면 그 "작업"이나 "기획"이란 한국에서 "운동"의 용례와도 겹쳐서 논할 수 있겠다. 즉 낭시와 블랑쇼의 논의는 한국에서 "운동" 너머의 "불가능한 운동"에 대한 사유 혹은 실천으로도 연결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도처에서 분출하는 페미니즘의 정치적 열정은 바로 그 "불가능한 운동"으로 나아가는 "엑스타시"의 맥락에서 논해볼 수 있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페미니즘이 "운동"이후로 나아가는 정치성을 구성한다는 것은 페미니즘의 정치성과 정치적 실천을 통해 구축하는 집합적 주체성이 여럿이면서도, 여럿의 이름으로 단 하나인 존재의 톤 그 단일한 존재의 음조를 파괴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매번 익숙하고 이미 만들어진 '집합 표상(세대, 성별, 인종 이미 구성된 정체성 등)으로 환원하지 않는 그 존재의 음조를, 여럿이, '만들어가는' 일 말이다.
이는 지금까지는 존재한 적 없는 불가능한 시도를 하는 일이다. 페미니즘이 때로 마주하게 되는 딜레마는 그런 점에서 <페미니즘>의 문제라기보다, "인류"가 시도한 "운동"의 총체적 막장에서, 더 나아가는 인류 이후 존재들의 거대한 역사적 나아감과 관련된다.
"연결되고 부대끼고 마주하면서 서로는 서로에게 더 이상 “떼거리”, “패거리”로만 존재할 수 없다." 오늘의 페미니즘 동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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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떼 공포, 젠더 어펙트: 부대낌과 상호작용의 정치> 나가는 말의 마지막 구절
반페미니즘 공격이 더 거세지고 사회 전반에 젠더 불평등을 개선해나갈 변화의 조짐은 예상보다 미미하다. 그러나 놀라울 정도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고, 지적인 관심도 높아졌다. 이런 변화는 소수의 페미니즘 이론가나 활동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무수한 다수의 ‘익명의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추동되었고 지속되고 있다. 특정한 대표 아이콘이나 상징, 거점을 매개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서, 많은 실패나 좌절을 거치면서도 그 힘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새로운 정치적 힘들의 거대한 흐름 한가운데서 동료 페미니스트로서 살고, 토론하고, 싸우고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드문 희귀한 경험이고 그런 점에서 사건적이다.
인터넷 기반 페미니스트들은 오늘도 여전히 ‘메뚜기 떼’라는 멸칭으로 조롱당하고 공격당한다. 남성의 모임은 정치적이고 의미를 갖는 관계 형식으로 해석되지만, 여성의 모임은 부적절하고 하찮은 소란으로 취급되며, 무의미한 관계로 평가 절하된다. 남성은 연결되면서 사회와 정치라는 거대하고 의미 있는 신체를 건설하지만, 여성은 연결되면 무의미하거나 공허한 소용돌이만을 남긴다는 식의 패러다임은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는 최근 페미니즘의 구호는 바로 연결, 친밀감, 반려, 사회적 결속과 정치적 결사를 가로지르는 젠더 불평등의 구조를 절단한다. 연결되고 부대끼고 마주하면서 서로는 서로에게 더 이상 “떼거리”, “패거리”로만 존재할 수 없다.
마주침과 부대낌은 강렬한 정동의 소진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비로소 익명의 덩어리가 아닌, 저마다의 음색과 표정과 목소리를 지닌 존재로서 서로를 바라보게 한다. 나 역시 긴 연구와 부대낌의 과정을 통해 무수한 익명의 존재를 고유한 얼굴로 마주하고 기억하게 되었다. 때로 잘 보여주지 않는 자신의 얼굴, 목소리, 음조로 말을 건네준 그대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들볶이고 공격당해도 굳세게 말을 이어가던, 그러나 지금은 사라진 그 모든 페미니즘 계정을 기억하려 노력합니다. 당신들의 그 모든 수고와 애씀과 절망과 분노 덕분에 이 글은 세상에 남아 흔적을 남깁니다. 과분한 이 자리가 오로지 나의 몫이 아님을 언제나 되새기며, 당신들과 함께 계속 나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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