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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 목소리, 침묵: 2014년 8월 20일 본문

밀양+청도를 위한 3분 폭력에 맞서는 모든 이들을 위한 3분

청원, 목소리, 침묵: 2014년 8월 20일

alice11 2014. 8. 20. 21:51


시민 여러분, 도청으로 나와주십시오. 지금 계엄군이 시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거대한 풍선 같은 침묵이 병실의 모서리들을 향해 부풀어오르는 것을 그녀는 느꼈다. 트럭이 병원 앞을 지나가며 목소리가 크고 선명해졌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함께 나와서 싸워주십시오.

 

<밀양 페미니즘 학교: 밀양 반가운 손님, 첫 시사회>, 밀양 반가운 손님 페북에서, 2014년 8월 20일

리멤버 416 페북에서, 안산 분향소는 텅 비어 있어요. "저희들 외로와요, 보러 와 주세요"


시민 여러분, 도청으로 나와주십시오. 지금 계엄군이 시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중략)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함께 나와서 싸워주십시오.

그 목소리가 멀어진 지 십분이 채 되지 않아 군인들의 소리가 들렸다. 그런 소리를 그녀는 처음 들었다. 수천 사람의 단호한, 박자를 맞춘 군홧발 소리. 보도가 갈라지고 벽이 무너질 것 같은 장갑차 소리. 그녀는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어느 침대에선가 어린 환자가 애워했다. 엄마, 창문 닫어줘. 닫았어. 더 꽉 닫어. 꽉 닫았다니까. 마침내 그 소리들이 지나가자 다시 가두방송이 들렸다. 도심의 침묵을 가로질러, 여러 블록 너머에서 아득히 들려오는 소리였다. 여러분, 지금 나와주십시오. 계엄군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마침내 도청 쪽에서 총소리가 들렸을 때 그녀는 잠들어 있지 않았다. 귀를 틀어막지도, 눈을 감지도 않았다. 고개를 젓지도, 신음 하지도 않았다. 

다만 너를 기억했다. 

너를 데리고 가려 하자 너는 계단으로 날쌔게 달아났다. 겁에 질린 얼굴로, 마치 달아나는 것만이 살길인 것처럼.


같이 가자 동호야. 지금 같이 나가야 돼. 


위태하게 이층 난간을 붙들고 서서 너는 떨었다.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살고 싶어서, 무서워서 네 눈꺼풀은 떨렸다.


한강, <<소년이 온다>>


우리는 저 시절에서 정말 어디까지 왔는가?

파쇼의 회귀를 한탄할 일만은 아니다. 


"여러분 지금 나와주십시오"라는 청원에 대해 '거대한 풍선 같이 부풀어오르는 저 침묵'의 풍경


두려움, 자괴감, 절망, 무서움, 공포, 그 무엇으로도 설명되기 어려운, 저 정동의 파열과 침묵의 공명에 대해

우리는 아직도 잘 알지 못한다. 그것은 비난도 매도도 그 무엇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우리가 반드시, 직면해야 하는 어떤, 파토스케이프. (오영진 선생의 고마운 제언을 비로소 받아쓴다.)

무서움 속에서

살고 싶어서

살려 달라는, 네 외침을 들으며

침묵의 파동 속에 갇혀있던, 갇혀있는 자들


하지만, 그것을 다 모른다해도

그것을 다 알 수 없다해도

창문을 열 수 있는 길은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