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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의 현재성, 항쟁의 현재성 2: 학살의 지역화/인종화, 재생산 정치와 인구 관리> 본문

대안적 지방담론과 정착민 식민주의

<학살의 현재성, 항쟁의 현재성 2: 학살의 지역화/인종화, 재생산 정치와 인구 관리>

alice11 2024. 12. 6. 10:03

<학살의 현재성, 항쟁의 현재성 2: 학살의 지역화/인종화, 재생산 정치와 인구 관리>
"일종의 독재 정권 아입니까. 독재 정권에서 자기보다, 반대파는, 차라리 반대파를 설득을 시켜 가지고 국민 화합을 만들어야지. 반대파를 설득을 시켜 가지고 국민 화합을 만들어야지, 반대파라 해가지고 무조건 없애뿐다 카는 거, 그 신념 하나밖에 더 있습니까, 지금까지도 국민 화합 국민 화합 하면서도 아직까지....."
(<<그날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경산 코발트 광산 구술 증언집>>, 학이사, 2024,)
1. 한강 작가의 소설에 대한 다양한 반응은 무엇보다, 학살의 현재성에 대한 반응이기도 했다. 한강 작품의 한계를 지적하는 많은 논자들이 바로 그 '학살의 현재성'에 의문을 표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현재"를 직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런 비판에는 '학살'을 '과거사'로 현재를 식민주의로 해석할 수 없는 '신자유주의적인' 즉 글로벌한 자본주의적 공통성 속에서 해석해야한다는 당위가 자리잡고 있다.
이런 방식이야말로 이른바 "민주화 이후"라고 하는 특정 시간 감각과 패러다임의 산물이며, 이른바 '87 체제'의 전형적 한계이기도 하다. 이런 논의가 이른바 '계급론"(식민주의가 아니라 계급이 문제), '진보' 담론과 정책의 패턴이다.
2. 한강 작가의 작품에 대한 이해에서도 '트라우마', '시적인 것' 등의 이른바 학살의 지역성과 신체적 특이성에 대한 각인이 제거된 추상적 보편의 언어가 지배적인 것도 이 때문이다.
학살이 지역의 문제였다는 것, 그리고 지역의 역사를 통해 "지금 여기"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말 그대로 '총체적으로' 망각된다.
3. <<작별하지 않는다>>에 등장한 경산 코발트 광산 유족회의 구술 자료집은 2024년 발간되었다.
1948년 시작한 초토화 작전은 특정 지역의 인구, 토지, 주거지를 작전 대상으로 하여 <민간인 희생화 전략>을 채택하였다. 민간인은 작전 중 부차적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니라, 민간인 희생화 자체가 작전 목표였다. "10만명쯤 죽여도 문제없다"는 광주에 공수 부대 침투 작전을 명령하면서 했다는 그 대사는 이 민간인 희생화 전략의 역사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초토화 작전은 전투 수행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학살 유족들이 한국 전쟁에서 무려 70년이 지난 시점까지 어떤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 살펴보면 이 '초토화 작전'의 현재성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위 구술자는 아버지가 어떻게 학살당했는지 '진상'을 모른 채 2010년대까지 이른다. 바로 옆집에 살던 삼촌이 형무소 간수였고, 아버지를 사형시키는 일에 참여했다. 구술자는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바로 옆집에 살았지만 삼촌이 승승장구하며 평범한 중산층의 삶을 이어가는 동안 유족은 직장을 얻거나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제한되어 계급적 하락의 길을 걷는다. 이 두 집안의 계급적 차이는 그러니까 자본주의적인 게 아니다. 계급 문제로 보이는 것이 실은 식민화와 점령에 따른 노예화의 결과인 것이다.
구술자는 2006년 국민보도연맹 학살 진상규명법이 통과된 이후, 여전히 연좌제에 걸려 있어 다른 이에게 보증을 부탁했는데(연좌제에 걸린 이는 신원 조회에 걸려 취업, 이주, 여행에 제한을 받고 신원 보증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2006년 이후 어느날 한나라당에서 연좌제 대상자에게 신원 보증을 서주지 말 것을 한나다랑 당원들에게 지침으로 내렸다는 말을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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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을 서달라고 했을 때 참 섭섭한 그 소리를 들어가지고, 내가 한나라당 중앙 당사에다가 전화까지 내가지고, 과거사위원회를 국민화합을 위해서 진실 규명을 하기 위해서 과거사법을 통과시켜 놓고 당원들한테 보증 서 주지 마라 그런 교육을 시키면은 도대체 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갑니까. 차라리 국회에서 도장을 찍지를 말던지. 이게 뭐 하자는 겁니까."
(<<그날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경산 코발트 광산 구술 증언집>>, 학이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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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
다들 다 지나간 일이라고 하고 87년의 민주주의를 노래할 때, 학살 주범들은 여전히, 연좌제 대상자에게 절대 취업 보증을 서지 마라는 당원 교육을 하면서, 지역을 여전히 점령한 채 인구, 재생산을 관리해왔다.
구술자는 또 구술을 할 때 집권정부였던 민주당에게도 전한다.
그깟 무슨 거리, 무슨 조형물 설치하기 보다, "제발 진상규명을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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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글은 정착민 식민주의와 비판적 애니머시 연구를 통한 대안적 지역론을 구상하는 장기 연구의 메모임
지방민은 정착민 식민주의에 의한 젠더화, 인종화된 생명정치에 의해 초토화 대상, 동화 대상, 보호 대상, 점령자 대리인으로 위계화되어 왔다. 이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계급적 차이가 실상 자본의 문제로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초토화 작전의 역사의 끝에 "지방소멸"이라는 말 그대로 초토화의 언어로 만들어진 정책이 있다.
"지방대가 벚꽃처럼 진다"
이런 기사가 넘쳐났던 시간들을 잊을 수 없다.
이런 기사 제목을 달며 스스로 '좀 멋진데'라며 뭔가 '시적인 감수성'에 젖은 이들도 많았다.
그 시적 문장이야말로, 바로 지역 초토화 작전의 학살이 만든 피와 살로 구축된 것이다.

 

널리 알려진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거창 양민 학살 사건”, “경산 코발트 광산 학살”, “대구 가창골 일대 학살”이 있지만,
실제로 경북 지역에서는 함양, 산청, 함평, 영암, 통영, 남원, 문경 등 여러 지역에서 학살이 발생했다.
‘경북 피학살자 유족회’ ‘부산경남 지역 유족회’ 등이 1960년 결성되었으나, 5.16 쿠데타로 이들 유족회 주요 구성원들이 반국가 단체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경북 유족회 회장 신석균은 형무소에서 옥사하고 많은 유족회원들이 옥고를 치루었다.(노용석, 2015)
1980년 광주 학살은 이러한 군사 쿠데타의 연장에서 발생한 지역 초토화 작전의 연장선에 있다고 하겠다. 1945년에서 1980년대 그리고 2000년대까지 지역 초토화 작전, 관련 유족회 및 관련 지역 주민에 대한 탄압은 이어졌다.
학살은 이어졌고, 오늘 우리 앞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재생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초토화 작전의 반복 속에서 지방은 오늘날 말 그대로 쓰레기장으로, 국가에 점유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