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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wonderland
82년생 김지영: <누구라도 그러하듯이>와 <누구와도 다른>의 세계 본문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이 책이 큰 반응을 얻은 것은 이 정도 현실도 사람men들이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서일까?
그런 의미에서 착잡함이 생겼다. 읽으며.
책 자체도 평범한 여성들이 평생 살면서 겪는 사소하거나 보이지 않거나 맥락화 하기 어려운 차별과 폭력을
설득해내려 상당히 애를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읽히고, 매우 평이한 문체로 담담하게 써내려간다.
그런데 쉽게 읽히고, 누구에게나 일어날만한 일로 그려지는데
뭔가, 아쉽고 이 쉽게 읽힘에 대해 자꾸 생각이 멈춘다.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하다가,
한편으로는 그간 여성의 삶을 다룬 한국 문학이 파토스적인데 치우친 부분과 대조적이라는 생각과
요즘 트위터의 말로 옮기기 힘든 격정적 언어와
사못 다르다는 점도 생각이 들었고,
이 시대, 페미니즘이 돌아왔다는
(...자유연상적으로 2007년 오빠가 돌아왔다....소설이 나왔을 때 마음이 착잡했다. 김영하를 좋아하고 그가 시대를 포착하는 나이스 캐치력이 그당시는 있었기에 더 착잡했다....그렇게 오빠가 돌아오더니)
시대의 여러 층위의 언어들을 겹쳐서 볼 때 82년생 김지영의 담담하고 평이하고 파토스를 억제한 문체는 좀더 생각할 거리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남는 아쉬움을 곱씹다가, 문든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를 떠올렸다.
언더그라운드를 읽기 전에는 나는 하루키를 거의 무시하는 수준이었다. 이전 작품에 대해서는 여전히 그렇고 때때로 그렇다.
언더그라운드를 읽게 된 건, <해변의 카프카>에 대한 코오모리 요이치의 비판에 동감했기 때문.
<해변의 카프카> 역시 흥미롭게 읽었는데, 1942년으로 들어가는, 그리고 어린 독서광 살인마의 해리성 기억 상실이 일본의 전쟁에 대한 집단 망각을 정당화한다는 비판이 의미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1Q84>를 이 비판에 대한 성찰적 응답이라고 생각한다.
즉, 자신이 만든 말이 자기 의도와 상관없이 폭력을 실어나를 때, 그 책임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할까라는 질문 말이다. 1Q84란 자신이 쓴 책이 스스로 만들어낸 또다른 세계이다.
<언더그라운드>는 잘 알려져있듯이 옴진리교 피해자를 인터뷰하여 동일한 매수에 그들에 대해 기록한 르뽀이다. 르뽀이지만, 짧은 지면에 써내려간 문장들 하나하나에 옴진리교 테러 피해자들의 삶, 그들의 무너진 삶, 혹은 이 테러가 그들의 삶을 어떻게 무너트리고, 또 이들은 이 파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거나 대응하지 못하거나 그래서 어떻게 삶이 망가지거나 혹은 그럼에도불구하고 다시 살아가게 되었는가에 대해.
같은 형식 안에, 단 한 마디도 같은 말로 설명될 수 있는 고통은 없다는,
그런 실험으로 나는 <언더그라운드>를 읽었다. 거기 등장하는 누구의 삶도 같은 단어로 설명될 수 없다는
그런 말이 필요없는, 언어 자체가 그 주장을 증명하는 말의 책임.
<82년생 김지영>은 오히려 반대의 방향을 취한다. 누구도 김지영일 수 있다는.
나는 이 낙차에 대해 계속 고민이 된다.
#참고문헌 없음에 대한 지지를 접지 않고, 계속 추이를 이어가며 보고 듣고 기다리고 있다.
애초에 페미라이터를 지지한 것이고,
봄알람에 대해서는 페미디어 사태 이후부터 내내 비판적인 거리를 갖고 있었으나
페미라이터를 지지하기 때문에 동참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온라인에서 싸움을 낱낱이 생중계하는 이 난장판 싸움에는 도저히 공감도 무엇도 하기 어렵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것이 세대의 문제인지 개인적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일정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
말들의 응답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한다.
휘발되고 사라져버리고, 고통을 전하는 길을 모르는 언어들에 대해....
<이 시대의 페미니즘>이라는 자기 규정이나 세대론적 선언과 <82년생 김지영>의 언어는 그러니까 꼭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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