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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혹은 다른 곳 2015

(hate speech)2015.05.31. 도지샤 집회 감상

alice11 2015. 5. 31. 23:16




(오늘 판매한 작품들)



2015년 5월 31일. <교토부, 교토시에 유효한 헤이트스피치 대책을 추진하기 위한 회>, 도지사 대학


1 오사카시에서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차별금지조례가 수립된 전례를 바탕으로 교토부와 교토시에도 이런 조례 및 정책을 수립하도록 촉구하는 시민운동을 시작하는 집회(연구회) 날이었다. 


2. 정부나 시가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보다, 시민 한 사람 한사람이 자신 스스로 무엇을 할 것인가, 나 자신이 먼저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그런 운동의 방향성과 힘을 오사카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일본에서 반 헤이트 스피치 운동의 특성은 바로 이런 지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인다. <정부 비판>이나, 정부가 뭘해라 요구하는 식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 구제에서 법제화까지를 시민들 스스로의 힘으로 해낸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사카 시 조례를 만들어내기까지의 힘겨운 투쟁의 시간들이 엄청난 동력이 되었을 것 같다. 


3. 3명의 발제자, 추진위원들의 인사말, 질의 토론 등으로 이어진 교토에서의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대책 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모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연구 심포지엄과는 성격이 거의 다르지만, 연구와 실천의 문제를 포괄하고 활동가와 연구자들이 함께 만드는 자리였다. 


4. 일본은 지역자치나 지역별 분화된 운동 및 정책 추진이 한국보다 일반화되어 있어서, 일본 분들은 별다르게 느끼지 못하는 듯했지만 , 오사카 사례를 보면서도 시조례라는 형식을 통해서, 지역 단위의 정책이 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런 점에서 헤이트 스피치 문제에서 오사카의 사례는 <시 조례>라는 형식을 차별 철폐를 위한 <시민 행동>의 중요한 거점으로 삼은 전례를 만들었다는 것이 아닐까. 한국의 서울시 인권헌장의 경우와 비교해서, 또 여타 지역에서 시 조례를 지켜도 그만 안지켜도 그만인 종이 서류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러나 한국에도 무상급식 관련한 시 조례 제정을 통해, 중앙 정부의 정책에 제동을 거는 동시에, 지역민들이 스스로 정치적 힘을 통치 장치 내부에서 만들어가는 사례를 비교해볼 수 있다. 



5. 오늘 발표를 들으며 이런 메모를 했다. 


떠오르는 풍경 1, 연구자들끼리 모인 자리의 풍경: 한국인, 일본인, 유학생, 자이니치 등이 함께 한 자리에서 아주 가끔 만나는 모습이다. 자이니치 연구자들은 언젠가부터 '아이덴티티 문제'를 이런 자리에서 논하지 않는다. (이건 개인적 경험일지 모르겠다.)그러나 아주, 가끔, 그런 이야기를 꺼내거나 하게 되면, 그 자리에 뭐라 형언하기 힘든 침묵이 감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떠오르는 풍경 2, 공청회 토론장에서


얼마되지도 않았지만, 참석한 공청회나 토론장에서, "어른신들"에 대한 피로감이 말로든 표정으로든 오가는 모습을 자주 본다. 이 "어르신들"은 어디서든 결국 비슷한 이야기, 주제와 상관없는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 그날의 주제를 이야기할 시간도 없이, 어디를 가도 결국은 모습만 바뀐 어르신들의 이야기, 이야기, 언성을 높이는 꾸짖음을 들어야 하는 상황들, 이른바 '자이니치 어르신들'.


이건, 풍경 묘사일 뿐이다. 그 풍경에 담긴 속내나 역사, 복잡한 세대, 젠더, 인종, 학력과 경제적 지위 등의 얽힘은 사실 풍경을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러니, 풍경을 묘사해봐야 그것은 그저 풍경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다. 


6. 풍경 이야기를 한 것은, 오늘의 감상 하나를 적어두고 싶어서이다. 이 감상은 5번의 풍경 묘사자의 시선에 불과한 감상이다. 그리고 이것을 내가 해결하거나,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제안이나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사실은, <주제 넘은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서지 조사를 할 때도 좀 궁금했는데, 일본에서 <헤이트 스피치> 문제는 연구도 그렇고 미디어 상에서도 그렇고 대부분 <자이니치 조선인//재일코리안(두 명칭 사이의 갭은 나중에 또>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헤이트 스피치가 자이니치 조선인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자들이나 일반인들이나 일본에서는 헤이트 스피치를 주로 자이니치 조선인//재일 코리안 문제로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오늘 모임에서도 헤이트 스피치라는 용어가 너무 포괄적이어서, <인종차별금지조례>로 명칭을 대체하는 게 좋지 않냐는 제안도 나왔다. 


즉, 헤이트 스피치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도 주로 문제를 <인종차별> 특히 <자이니치 조선인//재일 코리안>의 문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궁금점

@ 일본에서도 퀴어에 대한 혐오나 여성 혐오가 심각하다는 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 알 수 있는데, 오늘 발표에서도 사실 여타의 헤이트 스피치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이는 일본 사회 안에서 자이니치 운동과 퀴어 운동, 여타 소수자 운동이 형성되고 전개된 역사와도 관련이 깊을 것이라고 보인다. 젠더 이슈와 인종 이슈 그리고 여타의 소수자 문제들이 서로 분리된 채 전혀 연결되지 않는 그런 상황은 한국도 유사하긴 하지만.....


@운동이나 이론적 모색에서, 실질적으로 조금이라도 세력을 넓히기 위해서는 인종 이슈만이 아니라, 다양한 소수자 문제를 함께 공통적으로 끌어안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지만, 어쩌면 이미 오랜 세월 역량을 축적해온 자이니치 운동 측에서는 이런 '연대'는 좀 다른 맥락의 문제일지 모르겠다. 


7. 오늘 모임은 일종의 발족식이었기에 본격적인 논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후의 논의를 따라가면서 더 생각해보고 싶다. 


8. 오늘 모임을 마치며, 한국의 LGBT 운동과 퀴어 이론가 및 활동가들이 서울시 인권 조례나, 퀴어 퍼레이드, 헤이트 스피치와 관련해서, <퀴어만의 특수한 문제>로서가 아니라, <차이를 지닌 모두의 공통의 문제>로 의제화하고, 실천적으로 움직인 것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타리씨의 여성영화제 후기에도 비슷한 해석이 있었다.)


헤이트 스피치나 혐오 정치의 가장 중요한 점은 '차이'를 특정 그룹의 '특수한 문제'로 만들고, 그런 특수화를 통해 특정 정체성 그룹을 '모두'에서 고립시켜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혐오에 반대하는 정치가 '특수화'에 빠져버리면, 적의 논리를 반복하는 결과가 되어버린다고 보인다. 그래서 모두의 환원불가능한 차이와 그 고유성을 살피고 그 고유성에서 비롯되는 이론과 실천의 '차이'를 놓치지 않으면서, 바로 그 환원불가능한 차이를, '공통성'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지점이다. 이론으로나 실천으로나. 


그런 점에서, 퀴어 혐오를 세월호, 여성 혐오, 학살 생존자 혐오(광주와 같은) 등 서로 다른 지점들과 연결을 만들고 공통성을 만들어낸 한국의 퀴어 이론가들과 활동가들의 행보가 얼마나 귀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9. 일본에 와서 처음 기록을 남겨본다. 어설픈 풍경 묘사를 남기기도 싫고, 건강도 좋지 않아서, 차일피일 미뤄두었던 기록하기를 이제 시작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