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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들

pk스트롱맨, 고향의 정치 그리고 여성 정치

alice11 2017. 4. 14. 10:47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0621.html




권명아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해수 담수 수돗물 공급 사업이 주민 투표 대상이 맞다”는 판결이 나온 직후인 지난 4월10일 부산 시민단체는 부산시에 해수 담수 수돗물 계획을 전면 백지화할 것을 촉구했다. 같은 날 경남 시민단체 회원들은 소금을 뿌리는 ‘이별례’로 홍준표 도지사를 보냈다. 법과 초법을 교묘하고 강고하게 이용해 지역 정치를 휘둘러온 ‘PK(피케이·부산경남) 스트롱맨들’에 대해 정치권은 손을 놓고 있었지만, 부산·경남 주민들은 포기하지 않고 싸워왔다. 무상급식을 지키고 해수 담수화에 반대하는 싸움은 주로 ‘주부’로 표상된 여성들에 의해 시작되고 지속되었다.

이 싸움의 주체를 ‘주부’로 환원해 표상하는 것이 여성의 정치적 행위를 가정과 아이를 위한 주부로서의 ‘사적인 행위’로 환원한다는 우려나 해석도 젠더 정치 차원에서 새겨둘 만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학교급식과 가족의 안전한 삶을 위한 ‘사적 문제’가 오히려 가장 급진적인 정치적 행위가 되는 전형적인 페미니즘 정치의 현장을 우리는 여기서 만나게 된다. ‘밥’과 ‘물’의 문제는 정치적 주체로 나선 여성들의 저항을 통해 이른바 ‘사적’ 문제나 ‘소비’의 문제가 아닌 삶의 근간이 되는 공통적 문제로 내걸리지 않았던가.

‘피케이 스트롱맨들’은 이들의 저항을 매도하기 위해 여전히 오래된 ‘종북’, ‘좌파 포퓰리즘’, ‘경제성’ 따위의 프레임을 반복했다. 반면 저항에 나선 주체들은 아주 단순하고도 근원적인 ‘삶의 근본 문제에 대한 권리’를 내걸었다. 성장과 복지와 같은 오래된 이분법은 여기서 근원적으로 어긋났다. 또 물과 밥을 둘러싼 투쟁은 단지 지역의 특수 문제가 아닌 모두의 공통적 문제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피케이 스트롱맨들’과 싸워나가며 지역의 정치는 과거의 오래된 이분법이나 지역의 특수 문제에서 이미 나아가 어디에도 도래하지 않은 반원전, 자원에 대한 모두의 권리와 같은 ‘미래’의 의제를 현실화했다.

부산·경남의 촛불혁명은 이러한 저항의 역사를 이어나갔고 촛불시위의 구성원들이 10대와 여성/청년 등으로 변화된 것은 한 사례이다. ‘외부’에서 보기에 피케이는 여전히 남성성으로 과잉 대표되지만, 막상 부산·경남의 정치화 경로는 남성 젠더 중심성을 안에서부터 깨뜨려 나가고 있다. 부산·경남 내부에서 이른바 ‘운동권’ 내부의 위계와 남성 젠더 중심성에 파동을 일으키는 논란이 계속되는 것도 하나의 사례이다.

‘피케이 스트롱맨들’에게 시달려온 부산·경남 주민들의 정권 교체에 대한 열망은 어느 때보다 높다. 정권 교체가 지역 주민들이 일궈온 저항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정이지만, 그 주체적 역할을 정치권에만 맡기지 않겠다는 것이 부산·경남 주민들이 그간 ‘피케이 스트롱맨들’과 싸우며 보여준 가장 중요한 태도라 할 것이다. 부산·경남 지역 주민들은 긴 싸움의 과정을 통해 이미 다른 미래를 여기에 들여왔다.

그런 점에서 부산 선거대책위원회 발족 자리에서 부산을 “1990년 3당 합당 이전으로 되돌려 놓겠다”고 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논의는 정당의 역학 관계에 국한된 매우 소박한 지역 인식의 소산이다. 1990년 이후에도 부산·경남 지역에는 저항의 정치가 이어져 왔고 이미 과거로 돌아갈 수준이 아니다. 정권 교체를 이루려면 ‘야도 부산’을 이끈 ‘고향 친구들’만이 아니라 새롭게 출현한 정치 주체들의 이질적 열망과 열정을 수렴할 수 있어야 한다. 부산·경남 지역 주민들이 저항의 역사를 통해 만들려는 미래는 ‘돌아갈 고향’ 같은 것이 아니다. 고향에 돌아오지 말고, 미래를 만들라. 그게 정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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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0621.html#csidxe94996ee6a4bad9be6113be18897c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