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안으며 업힌 #이정임 #곳간
- 드라마 연인#여성 수난사 이야기#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초국가적 문화사
- 류장하 감독
- 입신출세주의
- 젠더비평
- 송가인
- 미스터트롯
- 정만영 #사운드스케이프#안으며업힌#이정임#김비#박솔뫼#곳간
- 뷰티플 마인드
- 대중정치
- 조국
- 미스트롯
- 노인돌봄
- 해피엔딩
- 플렉스
- 정도적 불평등
- 2020 총선
- 장애학
- Today
- Total
alicewonderland
킹덤과 리쿠오, 어떤 피로의 세계 본문
세계가 사라진 자리의 어떤 피로:
오염된 아비의 머리를 자르는 무의미한 행위의 무한 반복
이번 학기는 월요일 오전 수업 피드백을 일요일부터 해야해서 일요일이 업무 시작일이 되어버렸네요. 다들 지치는 날들 어떠신지.
-----
텍스트 분석이 직업인 사람들은 '주말에 영화 한편', '쉬는 김에 본 영화' 이런 리듬이 거의 어렵다. 물론 그렇게 하는 분들도 계셔서 존경!
무엇이든 보는 건 분석 강박에서 놓여나기가 어려워서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영화나 드라마를 제때 보는 일이 거의 없다. 항상 미루고 미루고 하다가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봐야해서 보게되는 식.
그런데도 직업병이라 쉴 때도 뭔가 보고 싶다^^;; 그래서 시작한 게 일드. 일단 일어 공부라는 알리바이가 있어서 오로지 어학 공부용으로만 본다, 일드로는 어떤 글도 쓰려고 시도하지 않으려고 다짐하고 봄.
뭐 그래서 그냥 개인적으로 쉬는 타임용으로 본 드라마 감상.
--------------
*요즘 일본에서 한국 드라마 열풍, 특히 <사랑의 불시착> 인기가 대단하다고, 최근 세미나에서 권두현샘이 논문 초고도 발표해주셨다. 그때도 드린 질문. 일본에서 <사랑의 불시착>은 넷플릭스 서비스로 제공된다고 한다. 넷플릭스는 국가별 서비스 방식이 다른 걸로 아는데. 어쩔 수 없이 넷플릭스 보기 시작하면서 제일 궁금했던게 세계 모든 나라 드라마가 다 있는데 일본 드라마 서비스가 거의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일드보다도 애니메이션이 많고 대만이나 중국 드라마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 한국 넷플릭스 주간 순위에서 일드를 본 적이 거의 없는데. 일본 넷플릭스 주간 순위는 주로 한국 드라마라고 한다. 이건 서비스 방식의 차이와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근데 한국 넷플릭스 사용자분들은 혹시 왜 일드는 별로 서비스 안되는지 궁금하셨던 적은 없나 궁금...또 일본 넷플릭스 사용자분들은 일본 넷플릭스는 한국 드라마를 많이 서비스해준다고 생각하는지도 궁금.
------------
취미로이지만 일드 찾아보기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최근에는 일드보기가 정말 어렵다는 생각을 함. 왓차에서 주로 일드를 보라고 해서 이것도 설치했지만 생각처럼 그리 많다는 느낌은 없고, 무슨 영화를 보자고 여기저기를 활용하게 되지가 않음.
인터넷 티비 공급자를 몇년간 같은 회사를 이용하는데 최근 몇년 사이 일드 채널이 거의 사라짐. 사실 그전에는 일드 채널이나, 유료서비스로 일드를 거의 봄. 이제는 그것마저 거의 없음. 역시 여기도 대만, 중국 드라마가 엄청 많아짐.
이건 한일 관계 때문일까요 그저 사람들 취향 변화일까요? 그런 게 궁금하셨던 분 계시면 의견이 저도 궁금^^
---이렇게 도처에 중드가 넘쳐나는데, 한드에 중국풍 논란이 이렇게 난리인 건 왜 때문인지도 좀 궁금. 그러니까 이런 중드 붐에 대한 반감인가? 중드 붐도 공급자 서비스 전략도 있지만 수요 문제이기도 할텐데....
------
살면서 '의지로 극복하지 못한 일' 중 하나가 공포영화보기인데, 그래서 좀비물은 일 때문에라도 못보는데, 최근 킹덤을 봄.(글 쓰려고는 아니고,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자학적인 기분으로 봄^^)
보고난 후 감상은 "와 ....한국 사람 중에 이민가고 싶다는 사람이 많은 이유를 정말 알것 같아"(였음^^)
"영화조차 너무 피곤한게 한국", 한국에서 사는 게 정말 피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잡담 중임)
----
접근도 고난이도의 일드 보기중 가장 최근 버전이 <리쿠오 陸王>, 올림픽 시대 드라마. 불굴의 마라토너 모기 선수 역할을 맡은 다케우치 료마 드라마를 찾아보다 이르게 됨.
취미로 보는 드라마 보기라. 마구잡이로 봄. 보다보니 내 드라마보기 버릇이 있다는 걸 알게됨. 일단 주로 모르는 사람들이 나오는 드라마를 좋아함^^ 가능한 별로 정보가 없는 드라마를 보고, 보다가 관심이 가는 배우가 생기면 그 배우 드라마를 주로 찾아서 봄.
다 그런건 아니고 이 버릇도 그저 개인적 궁금증. 마구잡이로 보는데도 일드의 특징은 뭔가 <천편일률>이 특징이라는 생각. 뭐랄까 특이한 드라마도 천편일률인게 신기한 특징. 캐릭터도 특이한 캐릭터를 천편일률로 만들어버리는 것도 신기한 특징. (비아냥이나 일드는 작품성이 없다 이런 비판이 아니라 신기한 특징이라고 생각함. 한드의 천편일률도 당연히 있는데, 한국은 차별화 마케팅에 좀더 집중하고 서사 소비 속도가 엄청 빠름. 금새 모든 게 식상해지는 편. 천편일률이 어려운 게 한국 드라마 산업이기도...)
이케부크로 하위 문화 신의 아이콘이 동네 야쿠자 캐릭터가 되고 천편일률 드라마 백편 정도 찍고(^^ 과장) 나중에는 한때 인디였다 야쿠자였던 남자가 동네 부흥시키는 노포를 살리는 지역 자영업 재생 아이콘이 되는 이런 과정이랄까.
자신만의 특이성을 갖고 등장한 캐릭터가 어떻게 천편일률 드라마 주인공이 되는지를 역추적해서 찾아보는 게 개인적인 흥미.
----
다케우치 료마는 뭔가 요즘 영맨의 아이콘인데. 억울한 누명을 풀기 위해 타임슬립을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포기를 모르는 정신으로 해내서 아버지를 구하는 아들. 그 드라마보고, 킹덤과는 다른 <피로>랄까. 그 피로가 정신승리로 대체될 때의 기이한 공허함이랄까. 그런 생각과 궁금증으로 다케우치 료마를 찾아봄.
리쿠오는 이런 다케우치 료마의 캐릭터가 부상을 딛고 재활을 위해 몸을 단련하는 과정, 마라톤이라는 스포츠 자체의 상징이 결합해서, 다케우치 료마의 몸 자체가 정신 승리의 표상이 된달까. 일본 버선에서 착상한 타비(버선) 모양 마라톤 슈즈 리쿠오의 형상과 모기 선수의 달리는 몸, 재활하는 몸들이 당영힌 올림픽 시대, 일본 정신에 대한 표상이 되고.
------
분열하고 분열하고, 없애도 없애도 다시 살아나는 감염된 신체들과 싸우는 킹덤, 세계가 사라지고 고립된 채 무한 증식하는 내부의 오염과 싸우는, 피로하고 피로한 몸들. 계승할 아비도 공동체도 사라진 채, 아비는 오염된 신체의 숙주일 뿐, 그런 아비의 머리를 자른다 한들 오염된 공동체는 재생할 수 없다.
단지 남은 건, 이미 계승할 수 없는, 재생불가능하고 오염된 아비의 머리를 자르는 무의미한 행위의 무한한 반복뿐.
머리를 자르는 게 유일한 해법이지만, 머리를 자르는 무한 반복의 행위가 공동체를 구원할 수 없다는 그런 피로. <킹덤>은 내게 그런 머리자르기의 피로와 무의미한 몸짓(머리자르기, 청산)의 무한 재생만 오롯이 남은 세계의 피로였다.
반면 역사의 종말을 외치는 사람들에 맞서, 외롭고 불가능한 계승의 서사를 온몸으로 이어달리는 게 리쿠오의 세계이기도 하다.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한계를 넘어서 '불가능은 없다'를 외치며 싸우는 몸들, 내부에서 만나는 건 불가능의 세계이고, 그걸 넘으면 언제나 세계와 싸우는 일이 되는 그런 몸들. 항상 세계와 싸우는, 그런 <세계>
-----------
일드 접근도의 어려움으로 요즘 쉴 때는 주로 벨기에, 네델란드, 헝가리, 아이슬랜드, 호주 드라마를 본다. 가능한 아무 정보가 없는 드라마를 보고, 가능한 다른 나라 드라마를 찾아본다. 미국, 영국, 중국, 프랑스가 아니라, 알 수 없는 나라 언어가 원어인 드라마들.
흥미로운 건 폴란드, 벨기에, 네델란드 헝가리 아이슬란드에서도 다소 유사한 그런 피로한 세계를 만난다. 파도파도 끝없이 나오는 과거의 비리, 결코 사라지지 않는 내 안의 유령들. 아비의 목을 잘라도 어떤 단절도 재생도 불가능한 세계, 주어진 것이라고는 끝없이 아비의 목을 자르는 무의미한 행위의 반복뿐인, 그런 세계의 피로.
세계와 싸우는 세계와, 그런 세계들이 부재한 채 죽지 않는 내 안의 유령들과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게 삶인 세계.
이게 뭔가 신냉전 시대의 새로운 제국과 비제국의 피로 감각의 차이 같기도 하고,
그냥 내 피로 같기도 함.
업무 일을 일요일에 시작하는 자의 피로를 피해보려는 노력의 글.
자. 일하러 가자!!!!!이미 계승할 수 없는, 재생불가능하고 오염된 아비의 머리를 자르는 무의미한 행위의 무한한 반복뿐.
'몰운대 일기 > 여기가 아니었더라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른 자리를 향한 발걸음, 일기 (0) | 2021.12.05 |
---|---|
이직해, 왜 거기서 그러고 있어? (0) | 2021.10.09 |
벗어나고자 하는, 혹은 에일리언 어펙트alien affect (0) | 2021.03.01 |
반짝임의 순간 (0) | 2021.02.21 |
가보지 않은 길, 혹은 남방 연구자에 대한 상상 (0) | 2021.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