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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wonderland
장소가 체화된다는 것, 극장과 일드 본문
장소가 체화된다는 것, 극장과 일드
태어나서 줄곧 서울에 살았고 20살에서 41살까지 20여년을 줄곧 하루의 반경이 신촌 근처를 벗어난 적이 크게 없었다.
1980년대에도 아마 전국에서 가장 극장이 많은 곳이었을 터.
극장에 가는 일은 그저 일상의 자연스러운 리듬 중 하나였다. 학교 가기 전에 극장에 가기도 하고 공강 시간에 극장 가기, 연구실 생활할 때는 저녁 먹고 극장 가기, 퇴근하고 심야보기 등 하루에 극장을 몇 번 가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연구자로 살기 시작하고는 여러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위해서 신촌을 나가는 걸 제외하고는 줄곧 연구실 언저리에서 생활을 했다.
하긴 그래서 대학원 후배들이 나를 놀리며 붙여준 별명이 "여고괴담"이었다. 언제부터 교실에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항상 있고 언제나 있는.
여고괴담 생활은 연구실-밥-극장-카페 이런 순환으로 완성되었다.
부산에 취직을 한 이후도 여고괴담 생활은 이어졌다. 그런데 혼자 쓰는 연구실이 생긴 건 엄청난 변화이자 혜택이었지만, 그 외에 모든 게 사라졌다.
하단은 부산에서도 외진 곳이고 2007년에도 서부산은 문화불모지라고 불렸는데 너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서부산에 극장이 1개도 없다는 걸 부산 사람들이나 서부산 사람들 누구도 놀랍게 생각하지 않았다.
극장가기는 불가능한 취미가 되었다. 신촌이랑 카페를 비교해본 적은 없었다. 혼자 쓰는 방이 생겨서 더욱 학교에서 나오지 않게 되었다. 도시락을 싸들고 연구실에 처박혀 생활한 게 벌써 십 여 년.
그게 삶의 리듬이 되었고, 그런 삶을 안쓰러워한 후배의 권유로 일드에 입문. 신촌에는 예술 영화관이 많아서, 사실 드라마나 대중서사를 거의 보지 않았다.
일드를 권했던 후배에게 그 이전에 "연구자가 기무라 타쿠야 따위나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 유일한 휴식 시간이던 '연구실 점심 시간'(학교 서문 뒤의 분식집의 장면이 아직도 떠올라서 부끄럽다^^)에 진지하게 말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코로나 해제 후 혼자 일본에 가서 도서관-숙소를 오가며
"이렇게 사는 게 좀 이상하지 않나" "다른 걸 좀 해봐야 안되나" 싶기도 했는데, 그게 하단에서 내가 이어온 나름의 생활이었다. 그걸 답답하다고 느꼈다면 정말 견딜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나는 즐거웠고, 공부가 제일 즐겁다는 말을 지금도 차마 누구 앞에서 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되새겨보니, 역시 공부가 제일 즐거웠던 서울에서는 그래도 극장도 있고, 친구도 있고, 같이 어울려 놀던 카페 동지들도 있었구나.
하단에 몇 년 전 백화점이 생기면서 복합상영관이 생겼지만, 신촌의 작은 극장들에서 곧장 하단으로 이동한 나의 삶의 반경 덕에 이런 대형 복합상영관에는 거의 가지 않았던 터라, 아직도 가지를 않게 된다. 구석기 시대 사람이라고 하시겠네 다들. 그런데 그게 이주의 동선 때문이랍니다.
이런 말을 하면 영화의 전당 가세요. 하시던데. 하단에서 해운대 안가보셨으면 말을 하시지 마시라는. 보수동의 영화관이 없어진 건 큰 전환점이기도 했네.
하여간 다들 극장이라도 가시겠나 싶은 개강 전주의 주말.
최근 만난 후배가 언니 정말 드라마 많이 보시네요 해서 생각해봄.
한국 드라마는 거의 안보는 것도 또 이상한 습관.
왜냐면 드라마 보면서 일종의 공부라고 생각하며 본 자기합리화랄까 연구자의 직업병이랄까. 한국 드라마는 보면 뭘 써야 할 것 같은 직업병 때문에 보기 전에 이미 마음이 무거움.
지난 겨울 다리를 다치고 회복하면서, 그게 쉽게 회복이 되지 않으면서, 다리가 다 낳으면 이제는 좀 어디 막 다녀보자고 다짐했는데. 극장도 그 중 하나지만, 막상 복합상영관은 참 가기가 싫군요.
뜬금없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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