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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임의 순간 본문

몰운대 일기/여기가 아니었더라면

반짝임의 순간

alice11 2021. 2. 21. 19:46

몇 년 전 우연히 휘트니 휴스턴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신이 내린 목소리, 반짝이는 별과 같은 존재가 파괴되어가는 그 과정을 보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다.

무엇보다 찬란하던 목소리가 파괴되어 되돌이킬 수 없게 되는 과정을 보며 참으로 생각이 많아졌다.

공부와 글쓰기는 재능이 아니라, 수련과 노동의 지루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는데, 길고 긴 노동과 수련 끝에 어떤 반짝임을 얻게 되곤 한다.

그 반짝임의 순간은 자기 자신이 알기는 어렵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 보인다. 연구자 자신도 그 순간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반짝이는 순간이라는 걸 알 수 있다면 더 좋을까?

때로는 자기 자신이 반짝인다고 과시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믿음이 더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공부와 글쓰기의 반짝임은 오래 가지 않고, 반짝임의 순간조차 길고 긴 노동과 수련의 지루한 여정 어디선가 온다.

그 순간의 낌새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연구자 자신도 그나마 그 순간을 만끽할 수 있을텐데 그것도 어려운 것 같다.

그리고는 또 길고도 긴 노동과 수련의 날들뿐.

반짝임의 순간이 지나고 한 참 후에야 '아, 그때가 나의 그 순간이었구나'를 알아차리고, 알아차린 이후에는 그때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깊은 체념과 체념이 길어 올린 또다른 노동과 수련의 날들이 이어진다.

여기 쓰는 글은 어떤 의미일까 가끔 스스로 묻지만, 이제는 자주 묻지 않는다. 내가 쓸 수 있는 글, 쓰고 싶은 글, 아니 글 쓰는 삶과 노동과 수련의 한 자락을 펼치는 또 다른 곳이 여기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