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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wonderland
다른 삶을 향한 열정, 프롤레타리아의 밤 1 본문
세미나 후기를 겸하여
어제는 젠더어펙트연구소 세미나에서는 랑시에르의 <<프롤레타리아의 밤>>을 읽었습니다. 젠더어펙트 스쿨 새로운 시즌 시작 전 숨고르기를 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프콤 시절 저희는 대안연구모임 구축을 꿈꾸었고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에 대해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시간과 말의 나눔은 우리의 꿈과 1980년대 랑시에르의 꿈과 1880년대 조세프 자코토의 꿈이 마주치는 미증유의 순간들이기도 했습니다.
*타자의 말로만, 타자의 말들의 번역으로만 언어의 자리에 오르는
개인적으로는 프랑스에서 네덜란드로 망명하여 알지도 못하는 네덜란드어를 가르쳐야 했던 자코토와 자신의 자리를 오가며 흥미로운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당시 저는 부산에서의 저리 자리 혹은 저를 둘러싼 감각이 꼭 일제 시기 경성에 부임한 일본인 영어 교사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하곤 했거든요. 뭐 이런 생각 역시 일본어와 영어의 대립적이지만 각축하는 자리와 혹은 일본어와 영어로만 번역되는 말의 세계에 자기 자리를 갖지 못한 식민지경성의 조선인 엘리트 '학생'의 자리에 대해 고민했던 <<역사적 파시즘>>의 궤적이 이어진 것이기도 하지요.
* 다른 삶을 향한 열정 혹은 삶의 반경을 넓히기 위해
이곳에는 '남는다'는 말이 독특한 의미를 지닙니다. '산다'가 아니라 '남는다'가 어떤 삶의 양태를 설명하는 말이게지요.
'남는다'는 '떠난다'와 맞물려있으나, 떠나는 것과 남는 것의 의미 또한 결이 너무 다양하지요. 그런데 떠나는 것과 남는 것이 오롯한 이곳에서 '산다'의 의미 혹은 '다른 삶을 산다'에 대해 생각해보고 실험해보고 싶었습니다. 떠나는 것과 남는 것만이 아닌 그런 삶의 결과 양자택일로 환원되거나 이미지화되는 것을 넘어선 삶에 대한 여러 선택과 열망을 아프콤을 통해서 만들고 이어가고 싶었지요. 그 당시 <다른 삶을 향한 열정>이라는 어휘를 붙잡고 나아갈 수 있던 한 동력 역시 랑시에르의 <<프롤레타리아의 밤>>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자들이 있다. 미지의 것을 찾아 떠나려고 바알에 대한 순치된 숭배에서 탈주하는 이들은 창안자, 시인, 인민과 공화국을 사랑하는 자, 미래 공동체들의 조직자와 새로운 종교의 사도들이다.
"프롤레타리아는 이 모든 자들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자신의 상태에 대한 과학을 획득하기 위함이 아니라 다른 세계를 향한 정념과 욕망을 견지하기 위함이다. 노동의 속박은 이 정념과 욕망을 단순한 생존 본능의 수준으로 지속적으로 밀어내리는데, 이 수준에서는 노동과 잠으로 멍해진 프롤레타리아가 이기주의와 게으름으로 부푼 부자에게 공모하는 하인이 된다."(프롤레타리아의 밤)
***노동과 이기주의, 게으름 등의 어휘는 여기서 일종의 인용입니다. 이 책은 이른바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1800년대에서 지금까지 축적된 해석의 역사를 인용하고 어긋내는 개입하기의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개입의 글쓰기와 실천이 랑시에르를 '세계적 학자'(혹은 "프랑스 철학적")라는 식민주의적 번역이 아닌 개입의 사상가와 실천가로서 자리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국에서 랑시에르는 '세계적 학자'로 소비되기도 합니다만^^이에 대해서는 어제 세미나에서 긴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
"대장장이와 그의 이미지 사이에, 대장장이에게 자신의 자리를 환기시키는 이미지와 그를 반역으로 초대하는 이미지 사이에 경미한 일탈이, 특이한 계기가 있으니, 그것은 정념들의 비밀을 배우고자 하는 주변적 노동자들과 프롤레타리아의 고통을 돌보고자 하는 주변적 지식인들 사이에 생긴 미증유의 마주침들이요 순간의 대화들이다."
(프롤레타리아의 밤)
그러나 이 미증유의 마주침은 행복한 황홍경을 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마치 지옥의 가장자리에 있는 비참한 그림자들처럼 서로를 보게 될 거야."
"동일한 시간을 관장하지 않는 두 세계의 만남이"며 "정말이지-곧 뒤집힐 것"입니다.
오늘, 이곳의 탐라를 떠도는 '노동'이라는 말들의 소요돌이 속에서
'프롤레타리아의 밤'을 읽게 되어 새삼스럽고 또 이전과는 다른 많은 생각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프롤레타리아의 밤>은 낮과 밤의 분할 속에서 밤을 갖기를 거부한 자들, 혁명적 파리지엥과 반동적 (목가적) 촌놈들이라는 분할 속에서 '촌'도, 촌놈도 되기를 거부한 자들이 밤을 거부하고 날밤을 세우며, 목숨을 걸고 꿈에 몰두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자유롭고 건전하고 비판적인 자들의 도시'와 '종편만 보는 빨갱이들의 지방'으로 분할된 이곳,
떠나는 것과 남는 것으로 분할된 이곳,
신공항과 해저터널로 분할된 이곳에서
저희는 <<프롤레타리아의 밤>>을 이 모든 분할을 거부하는 꿈에 대한 이야기로, 그런 개입의 독서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세미나는 내부 세미나라, 참가는 신청자에 한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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