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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들

말과 살:비밀은 없다

alice11 2016. 7. 8. 04:49

낮에는 어지럽고, 잠들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새벽에 잠시 맑아진다. 


잠이 멀어진 김에, <비밀은 없다>를 보았다. 극장에 어제 다 내렸더니, 오늘 ip로 나왔다. 


희정샘이 어떤 평을 쓸지 궁금하고, 듀나의 평은 영화 보기 전에 보았는데, 영화본 후 '응?' 이런 느낌.


역시 다, 관심이 천차만별....


이전에 <미쓰 홍당무>에서 말-나눔에 대해 글을 쓴 적도 있어서, 좀 궁금했다. 


그런 연장에서 몇 가지 단상. 


1. 말-살 섞기와 경계: 영남과 호남에 대한 말/살


먼저 전작의 기억 때문일 수도, 또 지역-언어 문제에 민감해서인지이 작품에서 말-사용, 말-나눔이 경계 나눔과 밀고 들어감(영화에 경계를 밀고 들어가는 장면이 상당히 많이 나오는데, 지역, 성, 언어를 넘은 '폭력'의 차원과 지평이 담겨있다), 섞음의 어떤 지표로 작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에 깔린 대구말, 손예진이 사용하는 '표준어'/표준어를 쓸 떄의 손예진의 포지션, 자세, 애티튜드와 광주말을 쓸 때 손예진이 다른데, 광주말/주술/굿/광기 이렇게 이어가는 게 어떤 맥락인지 좀 고민인데, 대구=정치판, 그 연장인 가식과 장식으로 가득 찬 '집'의 연장이라면(손예진은 집에서 광주말을 쓰지 않는다)무당, 어릴 적 친구와 대화할 때, 홀로 있는 차 안에서는 광주말을 쓰는데, 이는 대구, 가족으로 상징되는 '소속'에서 이탈하는 의미를 표시하기도 한다. 이 연장에서, 민진이 옥이랑 처음 나눈 대화가 '영어'로 건네는 말인게 흥미롭고, 옥이 민진에게 다가갈 때 영어로 말 건네는 장면은 이들이 '학교/왕따/폭력/가식/불륜'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이탈해서 '자기들만의 말/살 나눔과 섞음'을 만드는 표지이기도 하다. 이 말=살 나눔의 이동이 민진의 죽음을 해명하는 과정에 동반되는 '노래/가사/암호'이고, 그 이면에 남편과 여교사의 말/살 나눔(이 둘이 살을 나누는 장면에서의 '살가운 대구말'이 오가는 장면은 이런 말/지역 연쇄 구조에서 상당히 인상적.


손예진이 남편을 처벌하며 하는 대사 중 "나는 이 지역을 사랑했다. 남편이 태어난 곳이고, 내 딸이 자라날 곳이기에"이다. 그러나 그 사랑은 배반당한다. 또 그 배반된 사랑은 말/살을 섞는 양태에 대한 이 영화의 윤리적 평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구말의 연쇄는 정치, 학교, 가족 모두 표면적인 '권위'나 존재 의미가 이면의 '추잡한' 말/살 섞기에 의해 지탱되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2. 소녀들의 사랑, 말-살-노래


여기서 이탈하는 집단은 대구말도, 호남말도 아닌 '영어'로 말을 섞기 시작해서 음악으로 이어지고, 살을 나누는 관계로 이동하는 두 소녀이다. 이들의 사랑이 단지 '아직 여성이 아닌' 단계의 우정은 아니다. 이런 말/살 섞기의 의미 연쇄는 영화에서 꽤 선명하다. 그리고 두 소녀의 '모종의 연합'이 실은 '엄마'를 지키기 위한 일이었다는 점에서, 이 세 여성의 합은 앞서 1의 세계로부터의 이탈과 저항의 상징으로 설정된 것 같다. 


그래서 듀냐가 남성 정치인의 세계가 소녀들 이야기를 위해 주변화된다거나, 아직 여성이 아닌 소녀들 세계에 손예진이 '온전한 어른이 아니기에' 자연스럽게 동화될 수 있다거나 하는 평은, 좀 이해가 안되고, 영화를 참 정형화시켜서 정리한다는 느낌.


이 영화가 크게 감동적이거나 '여성주의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고, 오히려, 앞서 맥락에서 '퀴어 코드'와 말/살 나눔에 대한 이경미적 관심을, 지역색이라는 한국적 색깔에 잘 얹어서 '한국적 스릴러'를 만든 것 같다. 이경미 감독답지 않게 상당히 대중적 문법에 충실해서 오히려 좀 놀랐다. 근데 흥행이 잘 안된 것에 더 놀랐다. 


좀 궁금한 건, <여고괴담>이 1998년에 나왔으니 거의 20년도 넘었는데 '퀴어'에 대한 재현은 <여고괴담>에서 차용한 '퀴어 코드' 이상 더 나아간 것 같지 않다. 


근데, <비밀은 없다>를 퀴어적 맥락에서는 보지 않는 듯....왜 그런지도 궁금하다. <캐롤>에 대한 퀴어적 논의가 많았던 걸 생각하면, 그런 논의에 대한 부담 때문인 것 같지는 않다. 한국영화에 대해서는 퀴어적 비평이 좀 부담스러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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