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미스터트롯
- 2020 총선
- 젠더비평
- 노인돌봄
- 류장하 감독
- 대중정치
- 미스트롯
- 정도적 불평등
- 정만영 #사운드스케이프#안으며업힌#이정임#김비#박솔뫼#곳간
- 송가인
- 장애학
- 뷰티플 마인드
- 드라마 연인#여성 수난사 이야기#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초국가적 문화사
- 플렉스
- 해피엔딩
- 조국
- 안으며 업힌 #이정임 #곳간
- 입신출세주의
- Today
- Total
alicewonderland
삶과 죽음의 분할로 설명할 수 없는 심연 본문
*삶과 죽음의 분할로 설명하기 어려운 ‘노예 상태'에 대해
증오 정치는 ‘삶'을 노예 상태로 만들고 이 노예 상태는 통상적인 의미의 삶이라는 것과 닿을 수 없다.
노예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간절하게 원한 건, 그저 사는 것, 평범하게 남들처럼 사는 일이지만 그 최소한의 것에 이르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야 한다.
그래서 노예 상태에서 삶은 죽음과 구별되지 않고 죽음은 노예 상태와도 구별되지 않는다.
증오 정치와 노예 상태에 대한 모든 논의가 삶과 죽음, 혹은 그 분할로 언어화할 수 없는 어떤 심연을 들여다보도록 하는 이유다.
장 아메리는 ‘자유 죽음'을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는 것이라고 보았다면 프리모 레비는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기 파괴에도 맞서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이어갔던 이유다.
여전히 우리는 노예 상태와 죽음, 혹은 삶의 관계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을 많이 갖고 있지 못하다.
-------------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선생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것입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중략)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한강, 소년이 온다
---------------
------
증오 정치와 헤이트스피치 연구에 오래 매달려 온 건 아마 아무도 묻지 않는데, 항상 응답 책임 앞에 있는 질문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나는, 우리는 그 질문에 응답 책임을 한 적이 있을까.
어떤 '죽음'이 사회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삶도 죽음도 '가져보지 못한' 어떤 상태로 내몰아버린 그 책임이 바로 사회적인 것에 있다는 뜻이겠지요.
장자연에서 김지은에 이르기까지,
삶도 죽음도 빼앗겨버렸는데 역으로 죽음에 대한 책임을 고발당한 무수한 생존자들
생존자란 그래서 삶과 죽음 어떤 것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존재성에 겨우 부여한 이름이겠지요.
그저 살고 싶다는, 최소한의 존엄에 대한 요구가
죽음을 건 투쟁이 되어야 하는 사회
생존자에게 삶이
차별받는 소수자에게 삶이
죽음을 건 싸움으로만 겨우 다가갈 수 있는, 혹은 다가갈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사회.
안부를 묻는 일이 차별에 맞선 연대와 모든 사라져간 이들을 기억하는 일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안부를 묻습니다.
'혐오발화아카이브 > 반헤이트스피치 차별반대운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절반의 한국, 수도권과 지방, 거대한 분단에 대하여 (0) | 2021.10.06 |
---|---|
다큐 <차별>, 김도희 감독 (0) | 2021.10.05 |
성착취와 국가의 무책임성 (0) | 2020.03.29 |
총선과 젠더정치, 반복과 관성, 2020년 3월 26일의 메모 (0) | 2020.03.26 |
차별금지법, 2020 (한겨레특집 모음) (0) | 2020.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