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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wonderland
성착취와 국가의 무책임성 본문
성착취와 국가의 무책임성
**작년에 <음란 논의를 위한 TF> 연속 콜로키엄에서도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는데, 생각보다 훨씬 논의가 잘 이어졌다.
위안부 문제나, 차별금지법, 헤이트스피치, 반성폭력 운동, 미투 운동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사안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다양하고 모두를 관통하는 하나의 길이 있는 건 아니다. 또 연구를 통해서 하는 일과 활동가들이 마주하는 일, 서로의 해법이 저마다 다른 길로 나아갈 수 있고, 그게 당연하다.
**연구자로서 그때그때 사안에 대해 연구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게 매번 조심스러운 이유기도 하다.
음란 논의 집담회 때 내가 "음란은 개념이 아니다"라고 하니까, 관계자분들이 TF 이름을 다시 살펴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 다행이다, 우리도 개념이라고 쓰지는 않았네요." 하셨던 기억이 난다.
**음란은 개념이 아니라, 풍속 통제라는 분류장치가 생산한 분류 태그 같은 것이라고 하겠다. 아감벤의 어법으로는 '무규정적 규정'
**이 시점에 좀 메모를 남기려는 이유는, 디지털 성범죄와 성폭력 등 젠더 관련 법제의 전면 개정이나 신규 제정에 대한 요구가 매번 나오지만, '엄벌주의'의 문제라거나, 처벌만 강화한다고 구조가 바뀌냐, 구조를 봐야지하는 논의가 페미니즘 운동을 폄하하기 위해 자주 등장하는 점에 대해 정리도 좀 하고.
**N 번방 문제가 크게 부상하자 참지못하고 나서서 피해자의 책임과 피해자 교화를 목소리 높인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와 미투 운동에 대한 피해자 책임론을 주장한 진영과 사람들이라는 게 우연이 아니라는 점.
**왜 전면적인 법 개정, 혹은 그게 너무 어려우니까 새로운 법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반복해서 나올 수밖에 없는지....
여기까지 쓰니까 이미 너무 길어지고, 또 복잡해지고.
제 글이 너무 복잡하고 이해가 안간다는 비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사실 페북에 글을 쓸 의욕 자체가 좀 저하된 상태이기도 하고, 글을 쓰다가도 중단하게 되는 어떤 상태라, 여기서 글을 줄이고 싶은 충동이 일지만, 아주 조금만 정리하고 기회를 봐서 또 쪼금 적어볼까 합니다.^^
***위안부 문제나, 차별금지법, 헤이트스피치, 반성폭력 운동, 미투 운동이 서로 각자의 고유한 문제설정과 의제의 역사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떤 공통의 벽을 직면하고 있다는 게 내 연구의 중요 핵심이기도 하다. 특히 일제 시기 만들어진 풍속 통제의 역사와 현재에 이어지는 그 법제의 문제와 관련해서.
**풍속 통제가 만들어진 이유와 통제 원리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지금 일본에서 만들어진 그 법 원형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유일한 국가가 한국이고 한국에서는 그 법의 역사적 원천이 완벽하게 망각되었다. ---
***그러나 현재 풍속 통제를 고수하고, 풍속 통제 법제의 변화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집단의 조직적인 움직임은 풍속 통제 법제가 한국에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다. 이 집단은 주로 차별금지법을 비롯한 인권조례, 인권 관련 새로운 법적 규정이 만들어지는 것을 집단적이고 조직적으로 반대하는 집단이다. 이들에게 차별금지법, 청소년노동인권조례, 학생인권조례는 "선량한 풍속을 침해하고", '사회통념에 어긋나는' 일이다.
***이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풍속 통제 법제와 그 이념을 견고하게 고수하고 재생산하는 집단과 사람은 무수하게 많다. 어떤 이들은 풍속 통제 이념을 의식하면서, 대부분은 의식하지 못하면서 그렇게 한다.
**예를 들면 동성혼 법제화가 지금은 '이르다', '나중에'라고 하는 현 정부와 이른바 '진보세력'. 풍속 통제의 기준인 '사회통념'은 언제나 '시기상조'라거나 '사회통념에 어긋나는' 등의 어휘를 동반하는 데 이건 단지 표현의 문제는 아니다.
***풍속 통제 법이 인신매매, 성노예화, 증오정치에 대해 국가를 책임 주체 자리에서 보이지 않게 하면서, 대신 분류의 체계 혹은 분류작동 시스템을 들여왔다면 적어도 국가가 분류 기준을 정하는 위치에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풍속 통제는 바로 그 위치에 국가가 아니라, '사회통념'을 채워넣었다.
***분류 체계, 예를 들어 선량한 풍속, 혹은 보호받을 집단과 그 권리를 분류하고 정하는 건 "사회통념"이기 때문에 국가, 법집행자는 판단 주체 자리에서 사라지고 "사회통념"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사회통념"이야말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원리이자 분류체계를 작동시키는 주체인데, 그 주체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이 연구를 통해 정동 연구에 이를 수밖에 없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바로 이런 구조가 위안부 동원, 차별금지법 제정에서 미투운동, 디지털 성범죄까지 '풍속통제' 원리가 작동하는 곳에 판단 주체와 책임 주체로서 '국가'가 아니라 '사회통념'이 매번 등장하는 방식이고, "사회통념"이 주체로 부상할때마다 '피해자 분류, 즉 보호받을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는 논의가 필수적으로 뒤따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경우는 피해자 책임론, 위안부에 대한 국가의 무책임과 업자 책임론과 피해자의 자발성을 주장하는 논의나, 이번에 보듯이 이 연장에서 피해자 교화론을 주장하는 식의 논의.
**풍속 통제는 근대 초기 일본에 만연한 인신매매와 성착취를 가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말 그대로 가리는 건데, 가린다는 건 누군가 본다, 누군가에게 '우리가 보여진다'는 의식. 즉 서구나 문명화된 세계에 '인신매매와 성착취와 같은 반문명적인 풍속'을 보이지 않게 가리도록 만들어졌다. 일본의 연구자는 이를 박스에 넣어서 뚜껑을 닫어버리는 방식이라고 한다. 이른바 3종업종이 밖에서 보이지 않게 유리창을 검게 코팅하거나 칸막이를 하거나 하도록 '규제'하고 '단속'하는 방식도 이 원리의 연장이다.
**그러니까 인신매매나 성노예화나 성착취 자체를 근절하지 않고, 대신 비가시화하고, 국가는 영업장(업자)과 영업장 종사자나 관계자를 관리감독하면서 이를 '보호'라고 전도한다.
**더 중요한 건, 국가가 법을 통해 인신매매와 성착취 그리고 더 확대된 삶에 대한 통제를 수행하면서도 인신매매나 성착취 구조와 메커니즘을 근절하지 않고, 보호받아야 할 집단과 보호받을 없는 집단, 선량한 풍속과 선량한 풍속을 침해하는 행위와 같은 분류로 이를 대체해버렸다는 점이다.
위안부 동원 자체를 금지하지 않고, 영업 방식을 단속하는 것, 그리고 '위안부'의 상태를 단속하는 것(보호의 이름으로)
성착취 구조를 근절할 수 있도록 법을 가동하지 않고, 성착취를 행위당사자 개개인의 문제로 단속하는 방식.
**풍속 통제 원리 그 자체가 위안부 동원 주체 자리에 국가가 사라지고 대신 업자가 들어서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사실상 위안부 동원에서 국가의 자리가 없다고 말하는 건 그러니까 정확하게 풍속 통제 원리에 동일화된 위치에서만 할 수 있는 발화인데. 이 분들은 사실 이 지점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온통 민족주의 비판에 몰두하느라. 풍속 통제의 원리를 따라서 이 '구조'를 보면, 국가는 책임이 없고, 피해자의 '자발'이 동원의 강제성을 대체하고, 피해자의 욕망, 향유, 경제적 득실관계 등이 국가가 사라진 자리를 대체한다.
**이런 법적 원리(풍속 통제의 원리) 성착취, 성폭력, 성노예화, 인신매매에 대한 법적 원리가 아직도 한국 법에 고스란히 존재한다.
매번 성폭력, 성착취에 대해서는 '판사'의 판결과 재량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온다. 풍속 통제 자체가 법적 판단 근거가 될 수 없는 무규정적 규정에 입각하고 있어서 임의적이고 자의적이기 때문에 해당 사안을 판결하는 실행자의 자의적 판단에 크게 의지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위안부 동원에서 업자가 그런 자의적 판단의 막대한 재량을 갖는 실행자라면 성폭력 사건에서는 담당 판사가 그렇다. (참고로 전시동원체제에서 업자는 단순한 민간영역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시동원체제는 민간과 군의 경계가 사라진다는 뜻이었고, 여기서 업자는 더이상 민간의 의미가 아니다.)
**성폭력 사건, 미투 운동 판결의 경우도 성폭력이 만연한 조직 구조, 집단적 책임, 이런 구조의 반복을 끊고 막아내려는 법적 조치가 전무하고(현행법에서는 사실 불가능하니까), 행위 당사자, 즉 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로서, 특히 피해자가 '보호받을 가치가 있느냐 아니냐"가 매번 모든 문제, 특히 구조와 국가의 책임을 대체해서 전면에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런 풍속 통제법의 원리의 산물이다.
***음란 TF 집담회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하고, 법 이념에 대한 근본적 비판과 새로운 법제화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차별금지법이 왜 필요하냐면 현행법으로는 증오정치를 법적으로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행법은 증오정치를 조장하거나 정당화하는 면이 더 많기도 하다. 적어도 풍속 통제법제에서는.)
참석하신 변호사님께서는, 너무나 중요한데 오히려 이런 문제는 법 관계자는 하기 불가능한 일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법 관계자는 현행법으로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가를 중심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서 연구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계속해주셔야 한다고도.
하지만 페북에 쓰기에는 너무 긴 이야기. 그래도 제 페북에 이리 길고도 복잡한 글을 보시러 오시는 분들도 간혹 계시니까. 또한번 마음을 다잡고 남겨보는 글....
*생각보다 잘 정리는 안되었네요. 오래전부터 준비하는 책이 있는데, 자꾸 의욕이 꺽여서 미루게 되는.....언젠가 거기서 더 이야기를 하게 되면 좋겠어요. 너무 길어서 쓰다가 멀미가 나려하네요.....
좋은 주말 되시길요.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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