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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wonderland
17, 815 소녀상과 기념 본문
세계 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다양한 기림 행사가 열렸습니다. 행사를 만들고 기획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부산에 있는 터라 다양한 행사를 다 살펴보지 못하고, 전쟁과여성 인권 박물관이 주최한 김숨 작가와의 대화에 참여했습니다.
이전에도 포스팅해드렸듯이, 세계위안부 기림일 행사는 한국만이 아니라 타이완, 일본 등 전세계에서 열리는 행사입니다. 광복절에 위안부 기림일 관련하여 많은 보도가 나오고 주목을 받게 된 건 아마 올해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오랜 세월 현장을 지켜주신 활동가분들께 이번 기회라도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한 명>에 대한 논의에서 폭력의 희생자, 생명을 뺴앗긴 몸을 복원하고 '기념'하는 지난한 작업과 딜레마, 어려움과 이후의 경로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사전 참가 신청에 의해 진행된 토론회는 장소가 협소해서 20명 정도의 참가자들과 함께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오랜 세월 장소를 가꿔오신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활동가분들께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어제 오늘 탐라에 소녀상에 대한 비판이 많아서 간단하게 의견을 남기려 합니다.
1. 학살과 전쟁, 국가 폭력의 역사를 기념하는 방식에 대해 이론적 모색이 필요합니다. 이는 단지 소녀상에 국한되지 않지요. 소녀상과 같이 실물 조각상을 사용한 기념 방법은 기념 사업에 매우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전반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게 필요합니다. 이후 만들어질 기념관이나 기념 사업에서는 이에 대해 부디 본격적인 방법론적 모색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2. '소녀상 과잉 현상, 우상화 현상'이라는 지적에 대해
여러 정치 공학이 있지만, 다 아실터.
어제 오늘 이와 다른 지점에서 <소녀상 과잉 현상, 우상화 현상>이라고 비판하신 분들의 의견에 대해 제 의견을 좀 적어봅니다.
1의 전제하에. 이번 광복절 전후 미디어 보도는 주로 소녀상에 거의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세계 위안부 기림일 주간에 전세계에서 다양하게 행사가 진행되었지만, 이에 대한 보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한국의 위안부 기림일 주간의 다양한 행사를 보도한 것도 여성신문이나 뉴스1 정도였습니다.
즉 < 소녀상의 과잉 현상>은 허구는 아니지만 실은 미디어의 과잉 포커싱과 이에 따라 사람들이 계속 소녀상만 보게 되고, 이런 포커싱에 이끌려서, 위안부 운동은 소녀상을 우상화, 과잉 재현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소녀상을 중심으로 한 기념 운동에서 나아가야 하고, 이미 그런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지만, 비판 작업이 기념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데 좀더 유효한 도움이 되려면 이런 살핌이 필요하겠습니다.
실제로 이번 세계 위안부 기림일에 있었던 여러 행사, 모색 작업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고 소녀상 우상화를 비판하시는 분들도 사실상 이런 다양한 대안 모색 작업에는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이 점이 매우 아쉽네요.
3. 버스를 타고 도는 소녀상의 '으스스함'에 대해: 기념과 일상
모든 기념은 역사와 흔적을 박제화합니다. 이것이 기념의 딜레마입니다. 또 기념은 과거를 현재화하려는 욕망이지만 기념하는 순간 과거는 현재와 분리됩니다.
이러한 기념의 딜레마는 특히나 홀로코스트 기념과 역사 전쟁(역사 수정주의 비판)의 와중에서 더 첨예하게 인식되었습니다. 독일, 프랑스의 경우 역사수정주의의 공격은 기념에 대한 공격에서 시작되었고, 이에 대한 비판은 기념의 딜레마를 인식하고, 다양한 대안 기념의 이론과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으로 이어졌습니다.
김누리 선생이 칼럼에 소개한 '걸림돌'도 그 중 하나이고, 사라지는 기념비, 기념물이 없는 기념비, 현재의 일상 공간에 '무덤'과 '묘비'를 들여온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등이 대표적입니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말부터 이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있었습니다. 또 여성주의 기념에 대한 논의 역시.
베를린 시내의 걸림돌은 바로 과거를 박제가 아닌 현재의 일상 속으로 들여오는 고민과 모색 과정의 산물입니다. 기념의 기미를 인식하지 않으면서도 인식할 수밖에 없는, 일상 속에 언제나 들어와 있기에 낌새를 느끼지 못하지만 또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걸림돌'인 것이죠.
버스의 소녀상이 으스스하거나 무섭다고 느끼는 것은 첫째로 모든 기념은 박제라는 딜레마의 소산입니다. 동상으로 채워진 '국민학교'에 괴담이 많은 것과 같은 이유이죠.
또 실물 크기 조형물, 즉 박물관이나 분리된 전시 공간에 세워진 기념 형상이 그대로 일상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정형화된 기념물을 일상에 그대로 가져와서는 기념의 일상화는 이뤄지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저 또다른 기념 행사의 연장일 뿐이죠.
4. 마지막 질문
지난 길고 긴 탄핵의 날들, 광화문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이순신 동상이 으스스하다는 문제제기를 한 것을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모든 기념은 박제라서 모든 기념물은 일상에 들어오면 으스스합니다.
동상으로 채워진 낮의 학교가 밤에는 귀신 체험장처럼 느껴지는 이유이죠.
한국의 학교에는 무수한 동상이 있고, 공원에도 무수한 동상이 있고, 가는 곳마다 무수한 동상이 있는데, 그간 이 동상에 대해 이토록 강렬한 비판은 그다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소녀상은 이토록 불편함을 촉발하는 것일까요?(물론 이는 소녀상 자체가 역사수정주의와 한일 외교 마찰이라는 이른바 정치공학의 프레임의 볼모, 인질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제 오늘의 비판은 꼭 이런 차원은 아니고 또 여기서 머무는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가 그만큼 기념의 딜레마를 더 잘 인식하게 되어서일까요?
그렇다면 광화문의 이순신 동상은 괜찮은가요?
기념의 딜레마를 인식하고 감각하는 거기에도 젠더 정치는 이미, 언제나 개입되어있는 건 아닐까요?
물론 저 역시 소녀상에 너무 의존하지 않는 방향으로 위안부 기억 작업이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에서는 하반기에 위안부 피해자분들 '한 명' 한명의 일생을 함께 공부하고 기억하는 연속 강좌와 공부 모임을 기획했다고 합니다. 아직 공지는 뜨지 않았네요.
5. 기사는 위안부 피해 생존자분들을 일일이 만나 남긴 기록입니다. 이정아, 김명진 기자의 이름을 저도 불러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사족.
김숨 작가도 그렇고 최근 만난 분들이 제게 "무서운 분인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너무 놀랐다, 너무 반갑다"는 말씀을 하셔서 좀 어리둥절했답니다. 아마도 제 글 논조가 좀 강해서 그런 것인가 싶기도 하고. 어떤 경로로 형성된 제 "평판"의 영향이 아닐까 합니다. 지방에 있다보니 자주 사람들과 만나지 못해서이기도 하고, 좀 곁을 두지 않고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선을 긋는 것 같은 제 논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뭐 그렇습니다. 괜히 또 "나쁜 평판"에 무게가 더해질 글을 남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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